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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볍씨가 세계 最古?

작성자율력도제仁熊君|작성시간02.04.30|조회수107 목록 댓글 0
우리나라 볍씨 “세계 最古”국제공인 /대한매일 2001. 1. 18. 1면

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출토된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국제학술회의에서 인정받았다.

농촌진흥청은 17일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가 지난해 말 세계 28개국 500여명의 학자들을 초청해 개최한‘제4회 국제 벼 유전학술회의’에서 이같이 공인됐다고 밝혔다.

학술회의에서 소로리 볍씨는 DNA 분석결과 1만3,000년 전 것으로 확인돼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왔던 중국 후난(湖南)성 출토 볍씨보다 3,000년이나 앞선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kdaily.com[주-재배벼인지 야생벼인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쌀농사 시작은 언제 3000년전? 반만년전?

2000년 08월 07일월요일 09:00[최영창 기자] 문화일보

국립중앙박물관 '도작문화 3000년'展 계기논란 재연
우리나라에서 벼(쌀)농사가 시작된 시기는 언제일까.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지건길)이 오는 9월17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겨레와 함께 한 쌀-도작문화(稻作文化)3000년’전을 계기로 학계 일부에서 “반만년 역사를 얘기하면서 우리 도작문화를 3000년으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문제제기를 하는 등 우리 역사에서 벼의 재배시기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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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충북대 이융조 교수가 발견한 13,000년전 볍씨

이 교수는 1998년 3월 충북 청원에서 발견된 이 볍씨에 대해 방사성 탄소연대측정과 DNA분석을 통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하였으며 하부 토탄층에서 17,300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유사 벼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출처 - 조선일보 8월 3일자[방주인 주석]

이 볍씨는 2001. 1. 17일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 4회 국제 벼 유전학술회의'에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인정받았던 중국 호남성의 볍씨보다 3,000년 더 오래된 13,000년전 볍씨로 공인 받았다고 대한매일신문(2001. 1. 18. 1면)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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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문제제기를 하는 쪽은 지난 91년 일산 신도시 건설을 앞두고 실시된 가와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에 참여해 4000∼5000여년전 토탄층에서 볍씨를 찾아낸 손보기(孫寶基)단국대 석좌교수와 이융조(李隆助)충북대교수 등이다.이에 반해 10여년전 김포 가현리 일대의 4000여년전 신석기시대 니탄(토탄)층에서 볍씨를 발견했던 임효재(任孝宰)서울대교수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충북대박물관이 최근 펴낸 ‘청원 소로리 구석기유적 조사보고서’를 통해 미국 지오크론사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 1만3000∼1만4800여년전 형성된 유기질 점토층(토탄층)에서 고대 벼가,1만7300여년전 토탄층에서는 ‘유사벼’가 각각 발견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DNA분석결과 현재의 벼와 유전적 유사성이 평균 39.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볍씨의 연대가 토탄층의 연대측정 결과와 일치한다고 가정한다면 ‘소로리 볍씨’는 지금까지 세계 학계에 보고된 사례중 가장 오래된 벼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고고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재 매우 비판적이다.고대 벼에 대해 연구해온 농학자인 허문회(許文會)서울대 명예교수도 “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유적의 층위에서 나온 볍씨들의 경우 현재까지 나온 자료만 가지고는 재배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허교수와 농경을
전공하는 한 고고학자는 신석기시대 벼농사가 개시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가까운 중국의 경우 9000여년전부터 벼가 재배됐고 양자강 유역의 하모도(河姆渡)유적에서 기원전 5000여년전 도작이 시작됐다면 우리의 벼농사 개시연대도 올라갈 수는 있다는 것이다.도작문화의 개시와 관계된 문제들을 쟁점별로 살펴보자.

◆1만3천여년전 소로리 고대 벼=고고학계 일반은 이들 볍씨가 어느 층위에서 나왔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이다.무엇보다 지난 1998년 현장설명회 당시 볍씨가 나온 토탄층이 간빙기층 아래에서 발견됐다며 이의 연대를 12만5000년전으로 끌어올려 발표했던 사실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고고학계에서는 발굴단이 간빙기층으로 주장했던 붉은 퇴적층에서 20세기 만들어진 비닐과 조선시대 백자편이 나왔다는 얘기까지 떠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곳을 찾았던 한 고고학자는 “요즘 볍씨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며 “서해안 지역의 토탄층에 대한 조사가 축적돼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허문회 교수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소로리의 토탄층을 다시 조사해 볍씨가 계속해서 나온다면 본격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발굴조사단 단장이었던 이융조교수는 토탄층이 나온 2000여평은 보존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한반도에서 벼농사의 개시연대는=허문회 교수는 일산 가와지유적이나 김포 가현리 일대의 4000∼5000여년전 토탄층에서 나온 볍씨만 가지고 재배여부를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산봉우리 집터에서 발견된 여주 흔암리 출토 탄화미에 대해서도,강 건너편이면 몰라도 주변에서 경작지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야생벼를 채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허교수는 부여 송국리와 충주 조동리,단양 수양개,광주 신창동 유적 등지에서 나온 벼의 경우 재배했던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고고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도 일치한다.그러나 이융조교수는 “일산 가와지유적의 볍씨의 경우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재배됐던 것이 확실하다”며 “무작정 반대하기 보다는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작문화 3000년’전에 대해=고고학계는 이번 전시에 대한 이의 제기에 대해,중립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국립박물관의 입장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한 고고학자는 “전시도록 11쪽에서 확증할 수는 없지만 기원전 2000년경에는 벼가 한강 하류 유역에서 재배됐을 개연성이 높아졌다고 적고 있다”며 “이 정도면 100%는 아니더라도 70∼80%는 손보기·이융조교수의 의견을 수용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처음에는 일산 가와지유적 볍씨에 대해 무시하던 분위기에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볼 수 있듯 시간이 지나고 자료가 축적될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지건길 관장은 “손보기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모든 국민에게 공인된 지식을 전해야 되는 박물관의 입장에서는 학계의 통설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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