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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토론방

회원분들의 좌담(!)

작성자김준수|작성시간05.08.24|조회수118 목록 댓글 0
이 글은 미나모토노 요시쓰네님, 신농님, 연개소문1님, 그리운 길님 등이 참여하셔서 각자의 생각을 논의하셨던 꼬리말들을 모은 글들입니다.

꼬리말 원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므로 부득불 정리합니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나름의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의미가 있는 글들이라 봅니다.

운영자의 교통정리를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미나모토노 요... 신라가 200년간 성장이 멈추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국가성장이 곧 정복활동이나 영토확장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지요. 신라는 내부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됩니다. 착취대상이 대폭 확대되었고, 전란이 줄었으니 지배층이나 피지배층이나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다만 신라는 200년간 사회모순을 지속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쇄신을 하지 못한 결과 안정된 평화의 늪에 빠져 버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년 평화는 한 국가가 스스로 몰락할만한 충분한 시간입니다. 2005/08/09

연개소문1 역사는 잊을 때 재현된다고 누가 말했는데... 후일 조선조 개국 200년 동안 평화를 구가하다 임진년을 맞이했으니.. 굳이 발전보다는 그냥 역사를 이어 간 것으로 봐야 ........... 2005/08/10

신농 고구려가 관망만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 멸망의 이유를 표면적인 국제정세로만 파악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이유라면, 중국은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신라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이미 지적한 바처럼 통일 이후 신라인들이 고구려인과 백제인에 대해서조차 포용력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시될 따름이지요.

그리운 길 역사는 선택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면 과연 김춘추의 행위가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요..아님, 신라을 위한 것이었을까요..신라는 삼국을 아우를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어부지리로 얻은 것이기에…. 200년 동안 평화가 아닌 자기만족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지요.

200년 동안 평화라뇨..그럼 후삼국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신라는 명분이나 생존권보다도..김춘추와 그 일당의 권력과 신라의 기득권 변화를 위해서 당을 끌어들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김춘추가 구조요청을 할 당시 신라는 국가의 흥망이 좌우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닌 걸로 아는데요.

연개소문1 어쨋든 김춘추의 외교마인드와 외교술은 거의 제로에 가갑습니다. 도대체가 외교에 외자라도 알고 간것지.. 아이큐 두자리가 아니고서야 ...원 2005/08/18

그리운길 윗글들 읽다보면 민족과 동족이 상반된 개념으로 인식 되는데.....그리고, 삼국이 견제하기 위해서 이민족을 끌여들이는 것과 멸망시키기 위해서 이민족을 끌어들이는 건 차원이 다르지 않나여..또한,예나 지금이나 개혁과 변화의 1차적인 당사자는 최하층이죠 생존권이 걸려있기에.

신농 김춘추는 외교적으로 등신은 결코 아닙니다. 신라가 당과의 관계에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계기도 김춘추에서 비롯된 만큼, 결코 그를 비하해서는 안됩니다. 그가 외교적 등신이라면, 그에 관한 기록을 보여주십시오. 저는 그런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태왕의 후예님 말씀처럼 신라에겐 최대의 위기상황이었고, 김춘추가 생존을 위해 고구려나 당 등과 연합하려고 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김춘추가 개인적 원한이 있었음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백제와 신라는 성왕 전사 이후로 결코 친할 수 없었으며, 신라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2005/08/19

미나모토노 요... 당과의 연합은 김춘추 개인의 선택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 사유도 존재하였지만 국가적 선택이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하겠지요. 과거 선덕여왕 시에 무조건적인 구원을 바라던 것과는 달리 춘추는 보자마자 걸병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황제가 먼저 원하는 바를 묻도록 유도하였지요. 그것이 춘추의 외교력입니다.

미나모토노 요... 흔히 'XXX을 긁어준다'고 하지요. 제도모방, 숙위 등의 카드로 적당히 긁어 주며 상대가 내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든 것..그것이 외교지요. '세치 혀'란 속임수가 아닌 이해관계에 대한 설득력입니다.

연개소문1 본인이 김춘추에 외교 등신론을 말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만이 아닙니다.. 신라에 상황가지고 말하는 것도 아니지요 다만 외교 그 자체 입니다. 증거 증거하는데 그런 증거들을 제시해도 다 받아들일 자세가 되있는지 의문입니다. 당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굴욕을 스스로 감당했을까요. 갔든 안 갔든.. 2005/08/20

그리운 길 군사파병요청이 무얼의미하시는 아시나여..광개토호태왕과 내물왕의 관계을 보면 아실겁니다..의자왕이 공격한 지역은 옛가야지역과 옛 백제땅이었읍니다..사서들을 보면 진흥왕이후 한반도내에서 신라의 군사력은 백제의 군사력을 앞섭니다.의자왕이 공격할때 신라는 적극적방어가 아닌 수동적방어였읍니다. 그 당시 의자왕이 공격할 당시, 김춘추는 신라의 중심세력에서 밀려났었죠.

당나라에서 돌아온 이후 김춘추는 신라에서 신라의 중심세력들을 몰아내고 자신이 중심세력으로 등장한 겁니다. 백제는 경제력과 문화적으로 뒤쳐진 신라을 멸망시킬 의도는 없었을 뿐더러 백제의 관심사는 내부의 문제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백제의 공격 때문에 당에게 구원요청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자기자신의 세력을 위한 것이었지. 자신과 자신의 세력들을 키우기 위해 국가, 또는 민족을 배반하는 외교는 외교라고 할 수가 없죠. 오히려 당과 신라에서 당이 신라의 도움이 더 절실히 요구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김춘추는 고개를 숙인거구여.

미나모토노 요... 김춘추가 자신과 자기자신의 세력을 위하여 청병하러 개인자격으로 당에 갔던가요? 아니지요. 국가사신자격으로 국왕의 명으로 갔습니다. 당에 대한 청병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도되어 왔던 신라의 국가정책입니다. 그간 얻어내지 못한 것들...원하는 바를 상대로부터 얻어내는 것 이것이 외교지요. 2005/08/22

연개소문1 김용만 선생님 저서에는 김춘추가 간것이 아니라 다른사람이 간것으로 나오던데요.. 수준이 훨씬 못 미치는 사람이.. 2005/08/23

미나모토노 요... 그러니까 청병외교가 김춘추의 1회에 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시도되었던'신라 국가정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신라의 청병이 당나라로부터 한 번에 ok사인을 받은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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