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강감찬작성시간07.02.08
계백과 비슷한 경우로는 당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때 봉상청에게 주어진 낙양이 안록산 군에게 패한 후, 당 현종이 급히 자신의 여섯번째 아들인 태자 이완을 정토원수로 삼고, 고선지를 토적부원수로 임명했습니다만, 진압군에게 주어진 군대는 고선지가 모두 이끌었습니다.
작성자돌부처작성시간07.02.09
대야성함락전 40여성 함락시켰죠. 게다가 대야성까지 함락된 상황이면 의자왕초에 신라피해가 엄청났을겁니다. 이후 그나마 호각지세를 보인건 오로지 김유신의 활약이 컸지요. 그나마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결정적으로 30여개 성을 빼앗겼으니, 전체적으로 보자면 결국 신라는 백제에 압도당했다고 봄이 맞을듯 싶네요.
작성자신농작성시간07.02.09
백제는 6세기에 신라에 의해 왕이 죽임을 당하는 등의 수모를 겪었지만, 이 시기를 제외하면 크게 신라에게 눌렸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 이전 백제와 신라의 국력은 비교가 되지 않았지요. 백제는 일찍이 4세기부터 고구려와 동방의 패권을 놓고 다퉜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무왕, 의자왕 대에 와서도 신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합니다.
작성자신농작성시간07.02.09
그런 백제였기에 신라를 굳이 멸망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멸망시킨다면 백제에겐 더이상 목표물이 존재치 않아 고구려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실상 고구려도 신라가 망하기보다는 백제와 대치하는 상황이 지속되기를 원했을 겁니다.
작성자신농작성시간07.02.09
그에 비해 신라는 고구려, 백제를 모두 적으로 두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멀리 있는 당나라와 적극적으로 동맹을 맺으려 한 것도 작금의 상황을 국가적 위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백제에게는 적당히 신라를 압박하면 될 문제였지만, 신라로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황이 달랐으니 이 두 나라가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