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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토론방

Re:대마도는 우리 땅 - 우리도 주장해야 한다.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2.05.17|조회수157 목록 댓글 0
대마도는 우리 땅이었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마도는 일본 땅이었고, 지금도 일본 땅이다. 이것도 사실입니다. 자 지금 대마도 사람들에게 귀속문제를 물어본다면 물론 그들은 일본으로 귀속을 요구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946년 미국 군정시기이지만, 과도정부의 입법의원회에 정식으로 "대마도는 본시 우리의 영토이니 대일강화회의에서 반환요구를 해야 한다"는 허간용 의원의 제안으로 입법의원 60명이 서명 날인하여 찬동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의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대마도를 완전히 남의 땅으로 잊고 있는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영토란 가변적입니다. 우리가 간도를 언제가는 찾아야 할 땅으로 여기고 있듯이 대마도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당장 무력 점령이 아니라, 여러가지 협상의 카드로 일본에게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나는 대마도는 일본땅, 하와이는 미국땅, 독도는 우리땅이란 가사를 싫어합니다. 대마도는 결코 일본만이 우리에게도 연고권이 있으며, 하와이는 하와이 원주민의 땅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연고를 우리 스스로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원본 메세지] ---------------------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한 우리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사 교과서에 대마도란 단어는 단 한마디도 없죠.

없는 사실도 꾸며 만드는 일본의 역사와 비교하면 정당한 사실도 일본눈치를 보며 숨기는 우리 국사는 대조적입니다.


다음은 세종2년(1420년)윤정월 기묘조에 대마도주 도도웅이

조선 예조에 보고.한 내용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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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토지가 척박하여 살기가 실로 어려운 곳입니다.

바라건데 섬사람들을 가야산(대마도의 산이름)등에 보내어

귀국의 변리(영토)가 되게 하시고, 인민들을 입도시켜 안심

하고 경작하게 하되 그 전세를 저희가 저희들이 쓸수 있도

록 분급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두려워하는 족인들이 대마도

의 수호지위(도주)를 빼앗아 아직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이

섬을 귀국 영토의 주와 군처럼 삼고 인신(인장)을 하사해 주

시면 마땅히 신하의 절로써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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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판서 허조의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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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하가 성심으로 회오하고 신복이 되고자 포로를 송환 하며

예물을 진헌하면서 알리는 바가 상세하여 왕께서도 모두 이를

윤허하셨으니 한 섬의 복이로다.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 했으

니 모든 보고는 반드시 경상도 관찰사에 알려서 시행하고 예조

에 직접 전할수 없다. 잎으로는 족하가 친서한 서계를 가지고

와야 예접을 허락할 것이니 도장을 종씨도도웅환이라 하라

대마도는 원래 고구려을 거처 신라에 소속됐던 섬이었다고 한다.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었기에 옛날 우리 지도에는 대마도를 일본 본섬보다 더 크게 그려넣었다. 또한 일본보다 대한민국에 매우 가까이 있다. 여기에 일본인이 살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 조상중 경상도에 살던 일부가 대마도에 살았고 고구려와 신라가 다스렸던 영토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 중국 대륙쪽으로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대마도 관리에 소홀해졌고, 그 틈을 타서 왜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일본 땅이 돼버렸다는 것.

일본 역대 장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반쇼인(万松院)의 감나비(부도)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사리탑으로 우리나라
의정부에 있는 무학대사 것과 닮았다.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5개의 도리(문)를 세워 용왕의 신화를 연상케해주는 와타즈미신사의 뒷 숲에 있는 남근석도
일본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문화 유산. 대마도에는 또 우리 역사속의 인물들의 발자취도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특히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섬을 왕래했던 조선통신사들은 끊을 수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1703년엔 우호사절로 부산을 떠났던 108명의 통신사들이 대마도를 바로 눈앞에 두고 모두가 조난당하기도 했다.
부산이 가깝게 보이는 한국전망대 옆에는 그 당시의 조선통신사들의 순국을 기리는 위령비가 서 있다.

구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도 일본군에 의해 대마도 이즈하라에 연금당해 있던 중 단식으로 항거하다 순국했다. 그를 기리는 순국비는 백제 스님이 건너와 창건했다는 이즈하라시내의 스이젠지(修善寺)에 서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했던 조선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도 대마도에 뿌리가 내려져 있다. 1912년에 태어난 덕혜옹주는 쓰시마 도주인 쇼다케시백작과 정략 결혼을 했으나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해 끝내 신경질환까지 앓고 이혼당했다.


이즈하라시 반쇼인에는 덕혜옹주와 대마도주의 결혼 기념비도 이들의 비극을 상징하듯 쓰러져 있으며,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입구에는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대마도주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이밖에도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사고마을엔 신라때의 충신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백악산 고려산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지명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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