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해결해 주실 분도 없고, 저의 너무나 당연스러운 대답을 남당의 상상의 산물이라 하더군요.
신라본기에 있는 해결되지 않는 신라의 기년에 관한 문제를 풀어올리니, 이곳에는 이해할 만한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글이 자꾸 조회수가 올라가면 곤란해지는 분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내물왕,실성왕,눌지왕에 관한 이야기..
◦ 글쓴이: ◦ 조선국왕 인종
◦ 조회수 : 195
◦ 07.03.12 23:45
내물왕 재위 356~402..
흘해왕이 죽고 흘해왕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물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비가 미추왕의 딸이라는 사족을 달아 그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아마 미추왕이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올랐기에 그 힘을 빌리려고 한 것 같고 실제 미추왕 의 딸이 내물왕의 왕비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20세로 본다면 그는 66세까지 살았습니다..
그의 장남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위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죠..
그러나 왕위는 장인인 실성이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물왕부터 소지왕까지 나이를 계산해보니 너무 황당합니다..
내물왕이 20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계산하면 337년생..
눌지왕이 458년까지 살았다는 계산하에 최대한 나이를 낮춰서 377년생..
소지왕의 어머니인 미사흔의 딸이 자비왕과 461년에 혼인했으므로 소지왕은 467년..
그럼 최대한 정상적인 나이로 계산해서 자비왕 417년생..
나이를 심심해서 계산해보니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이들조차 황당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기하게 내물왕도 눌지왕을 나이 사십에 얻었고 눌지왕도 자비왕을 사십에 얻었고 자비왕은 소지왕을 나이 오십에 얻었습니다..
저건 제가 최대한 말이 되게 만드려고 한 거고 실제와 많이 다를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역사책에서도 말하길 눌지왕부터 소지왕까지 부자세습을 완성하였다고 했습니다..
근데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게 아주 고대도 아니고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오는 시기인데..
아 거기다가 자비왕이 40세가 넘어서 혼인한 건 뭐 조선시대도 왕은 나이와 상관없이 재혼할 수 있으니 재혼일 가능성도 있으니 그렇다고 하겠는데 자비왕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촌 미사흔의 딸은 어떻게 되는 거죠?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실 분 없으신가요?
왜 이런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가는지 모르겠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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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 인종님이 신라왕의 계보를 살펴본 일은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신라를 역사를 바로 찾는 첫 걸음이라 하겠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보다도 신라왕의 계보가 밝혀진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는 신라왕의 계보에 문제가 있다고들 추정을 합니다만 저는 계보의 문제가 아니라 기년의 문제로 봅니다. 그저 한 두 분에 한정되면 오탈자로 볼 수도 있으나 계보는 서로 이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기년을 조정해 놓으면 계속적인 문제를 일으키죠.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신라왕의 계보를 추적하여 기년을 의심해보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문제입니다.
아마도 여태 신라본기의 기년에 대해 의심하는 역사학자는 없었으리라 봅니다.
일본서기의 기년을 의심하듯 신라본기의 기년 또한 의심의 대상입니다.
특별히 계보와 기년이 의심되는 곳은 관구검의 침입시기인 조분이사금의 사후 첨해이사금 부터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시기인 내물이사금까지가 대상이 될 것입니다.
기년이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 모아보았습니다.
① 금관가야의 시조왕인 수로왕의 재위년은 서기42-199년까지 158세를 살았다고 했으므로 분명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수로왕은 한명이 아닐 꺼라 하면서 두리 뭉실하게 넘어갑니다. 수로왕의 기사는 신라본기 파사이사금기에 잠깐 나타나기에 신라본기 기년을 의심하는 부분에 추가했습니다.
참조문1) 삼국유사 가락국기
후한(後漢)의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 임인(壬寅; 42) 3월 계욕일(계浴日)에 그들이 살고 있는 북쪽 귀지(龜旨; 이것은 산봉우리를 말함이니, 마치 십붕十朋이 엎드린 모양과도 같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에서 무엇을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중략)
왕후가 죽자 왕은 매양 외로운 베개를 의지하여 몹시 슬퍼하다가 10년을 지난 헌제(獻帝) 입안(立安) 4년 기묘(己卯; 199) 3월 23일에 죽으니, 나이는 158세였다.
참조문2)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23년기사
23년(서기 102년) 가을 8월, 음집벌국과 실직곡국이 국경 문제로 다투다가 왕에게 와서 결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왕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여기고, 금관국 수로왕이 나이가 많고 아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불러와 물었다. 수로가 의견을 내어, 다투던 땅을 음집벌국에 주도록 하였다. 이에 왕은 6부로 하여금 수로왕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도록 하였다. 5부는 모두 이찬으로 우두머리를 삼았는데, 오직 한기부만은 직위가 낮은 자를 우두머리로 삼았다. 수로가 노하여 그의 종 탐하리를 시켜 한기부의 우두머리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보제의 종이 도망하여 음집벌주 타추간의 집에 의탁하였다. 왕이 사람을 보내 그 종을 찾았으나 타추가 돌려 보내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음집벌국을 공격하니, 그 우두머리가 자기의 무리와 함께 스스로 항복하였다.
실직·압독 두 나라 왕이 항복해왔다.
겨울 10월,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이 피었다.
② 신라본기 아달라이사금기에 나오는 비미호와 중국25사에 나오는 비미호의 재위기가 많이 차이가 납니다. 이것도 65년 기년차이가 있는데 무시하고 넘어갑니다.
참조문1) 삼국사기 아달라이사금 20년기사
20년(서기173년) 여름 5월, 왜국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예방해왔다.
참조문2) 삼국지위지동이전 왜전
<景初>二年六月, <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 求詣天子朝獻, 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其年十二月, 詔書報<倭女王>曰: [制詔<親魏倭王><卑彌呼>: <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次使<都市牛利> 奉汝所獻男生口四人, 女生口六人, 班布二匹二丈, 以到. 汝所在踰遠, 乃遣使貢獻, 是汝之忠孝, 我甚哀汝. 今以汝爲<親魏倭王>, 假金印紫綬, 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 其綏撫種人, 勉爲孝順. 汝來使<難升米>·<牛利>涉遠, 道路勤勞, 今以<難升米>爲率善中郞將, <牛利>爲率善校尉, 假銀印靑綬, 引見勞賜遣還.
경초 2년(서기 238년) 6월 '왜여왕'이 대부 '난승미'등을 보내어 군에 이르러, 천자에게 조헌하기를 구하자 태수 '유하'가 서울에 사신을 보냈다. 그해 십이월 조서를 내려 '왜여왕'에게 말하길 ' '친위왜왕 비미호' '대방태수 유하'가 당신이의 대부 '난승미'와 다음사신'도시우리'를 보내와 남자 4명과 여자 육명, 포 두필이장을 받치니 이에 이르렀다. 당신이 있는 곳이 먼데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치니 당신의 충효가 이와 같아, 내가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당신을 '친위왜왕'을 삼는다. 그리고 금으로 만든 인과 붉은 빛 인끈을 봉해서 '대방태수' 에게 보내는 것이니, 당신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힘써 효도하고 잘 순종하도록 하라. 당신이 보낸 사신 '난승미'와 '도시우리'는 길이 먼데 수고가 많았기로, 이제 '난승미'를 솔선중랑장을 삼고, '우리'를 솔선교위를 삼아 은으로 만든 인과 푸른 인끈을 주고 불러 보고 위로한 다음 돌려 보내는 바이다.
③ 신라본기 내물이사금과 실성이사금의 妃가 미추이사금의 딸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도 문제가 있는데 아직까지 답을 하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아마도 불법 탈취된 정권의 합리성을 위하여 거짓으로 갖다 붙였다고도 합니다.
참조문1)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물이사금기
제17대 내물 이사금 (奈勿 尼師今 356~402 재위기간 46년)
내물[나밀이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김씨이고, 구도 갈문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말구 각간이며,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이다. 왕비는 김씨이니 미추왕의 딸이다. 흘해가 죽고 아들이 없었므로 내물이 그 뒤를 이었다.[말구는 미추 이사금의 동생이다.]
참조문2) 삼국사기 신라본기 실성이사금기
제18대 실성 이사금 (實聖尼師今 402~417 재위기간 15년)
실성 이사금 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알지의 후손이며, 대서지 이찬의 아들이다. 어머니 이리부인['伊'를 '企'라고도 한다.]은 석등보 아간의 딸이다. 왕비는 미추왕의 딸이다. 실성은 키가 7척 5촌이요, 총명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식견이 있었다. 내물이 붕어하였으나 그의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백성들이 실성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였다.
참조문 3) 삼국사기 신라본기 미추이사금기
제13대 미추 이사금 (味鄒 尼師今 262~283 재위기간 21년)
미추 이사금[미조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이다. 그녀는 갈문왕 이칠의 딸이다.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이다. 그녀는 조분왕의 딸이다. 미추의 조상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자 탈해왕이 데려와 궁중에서 길렀고, 뒤에 대보로 임명하였다. 알지가 세한을 낳고, 세한이 아도를 낳고, 아도가 수류를 낳고, 수류가 욱보를 낳고, 욱보가 구도를 낳았으니,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첨해가 아들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초가 되었다
④ 신라 흘해이사금은 신라본기에 나아가 어리나 나이 든 사람의 덕이 있다고 하였으나, 흘해이사금의 부친인 우로의 사망을 기점으로 나이를 계산해보면 결코 나이가 어리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첨해이사금과 흘해이사금시기를 모용씨에 의해 신라가 정복당하였다가 그 이후에 김씨가 새로 왕을 새웠다고도 주장합니다. 김씨는 모용씨의 후손이라고도 합니다. 신라에 대해 수많은 說이 난립하게 된 것은 신라본기의 기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조문 1) 삼국사기 신라본기 첨해이사금기
제12대 첨해 이사금 (沾解 尼師今 247~262 재위기간 15년 )
3년 (A.D.249) 여름 4월, 왜인이 서불한 우로를 죽였다.
참조문 2) 삼국사기 신라본기 첨해이사금기
제16대 흘해 이사금 (訖解 尼師今 310~356 재위기간 46년)
흘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나해왕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로 각간이다. 그의 어머니는 명원부인이니, 조분왕의 딸이다. 우로는 임금을 섬기는 데에 공로가 있었으므로 여러 번 서불한이 되었다. 그는 흘해의 용모가 준수하며, 심기가 강직하고 두뇌가 명민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보고 여러 제후들에게 말했다. "내 집안을 흥하게 할 자는 반드시 이 아이다." 이 때 기림이 죽고 아들이 없었다.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흘해가 어리기는 하지만 나이든 사람이 갖출 수 있는 덕을 지녔다"라 하고 그를 받들어 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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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 인종님이 질문을 던졌는데 제가 더 골치 아픈 질문을 올렸군요.
이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년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위의 ①, ②, ③, ④의 문제를 기년으로 풀어드립니다.
예전에 라디오님이 남당 유고집 기년을 올렸었는데 아무도 관심 있게 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당 유고집 vs 삼국사기 기년
1 혁거세 (재위 61년) BC57- AD4
2 남해 (재위 21년) 4- 24
3 유리 (재위 34년) 24- 57
4 탈해 (재위 24년) 57- 80
5 파사 (재위 33년) 126 ~ 158 (재위 33년) 80- 112
6 지마 (재위 33년) 159 ~ 191 (재위 23년) 112- 134
7 일성 (재위 21년) 192 ~ 212 (재위 21년) 134- 154
8 아달라(재위 31년)213 ~ 243 (재위 31년) 154- 184
9 벌휴 (재위 13년) 244 ~ 256 (재위 13년) 184- 196
10 나해 (재위 35년) 257 ~ 291 (재위 35년) 196- 230
11 조분 (재위 18년) 292 ~ 309 (재위 18년) 230- 247
12 첨해 (재위 15년) 310 ~ 324 (재위 15년) 247- 261
13 미추 (재위 25년) 325 ~ 349 (재위 24년) 261- 284
14 유례 (재위 15년) 350 ~ 364 (재위 15년) 284- 298
15 기림 (재위 7년) 364 ~ 370 (재위 13년) 298- 310
16 흘해 (재위 8년) 370 ~ 377 (재위 47년) 310- 356
17 내물 (재위 26년) 377 ~ 402 (재위 47년) 356- 402
18 실성 (재위 16년) 402 ~ 417 (재위 16년) 402-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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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남당 유고의 기년을 보시면 ①, ②, ③은 저절로 풀리고 ④는 다른 각도에서 풀립니다.
①에서 수로왕의 기년이 42-199년이라고 하였는데, 42년과 199년의 수로는 동일한 분이 아닙니다. 파사이사금 시기의 수로는 청예왕으로 妃가 황옥이고 거등왕의 부모입니다. 42년은 가야의 시조왕인 수로임금에 관한 사항이고, 이는 탈해가 신라로 입국한 기년과 따져야 할 사항입니다. 일단 이 부분까지 설명하려면 다시 여러 가지 사항과 맞물려 삼국유사를 다시 들먹여야 하니 다음 기회에 설명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누군가 질문하시면 그 때 답하기로 하지요.
남당 유고 신라사초의 기사를 올려드리오니 비교하시면 고개가 끄덕여 질것입니다.
참조문1) 신라사초 파사이사금 25년 기사
二十五年 正月 加耶世主 遣其三子靑裔 入朝
25년(A.D.150) 정월 가야의 세주(世主)가 그 셋째아들 청예를 보내어 입조하였다.
三月 以吉門爲伊伐飡 茶耶爲稟主 沙乙那愛吉元 而不肯 爲稟主 上許其志 遂以茶耶代之 摩帝爲中外大軍事 美禮爲大軍母
3월 길문을 이벌찬으로 삼고 다야를 품주로 삼았다. 사을나가 길원을 사모하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아 품주로 삼았다가, 왕이 그 뜻을 허락하여 마침내 다야가 대신하게 되었다. 마제를 중외대군사로 삼고 미례를 대군모로 삼았다.
十二月 音汁伐與悉直谷爭界 王命其地老 辨之地 老曰 “加耶王子 靑裔多智 可以立議” 上許之 汗門爲京都兵官 汗兒子也
12월 음즙벌(국)과 실직곡(국)이 국경 문제로 다투었다. 왕이 그 땅의 노인으로 하여금 경계를 변별하도록 하였다. 노인이 말하기를 “가야왕자 청예가 지혜가 있으니 그의 의견으로 정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왕이 그것을 허락하였다. 한문을 경도병관으로 삼았는데 한아의 아들이다.
= 서기 150년에 청예의 나이를 20세로 산정하면, 청예는 69세까지 산 셈입니다. 매우 자연스럽고 아들 거등의 기년도 자연스러워 집니다.
②는 아달라이사금의 기년을 신라사초로 보정하였습니다. 왜 여왕 비미호가 중원에 사신을 보낸 해가 238년이니 6년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요. 설마 중국25사의 기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진 않으시겠죠.
참조문1) 신라사초 아달라이사금 20년 기사
二十年 正月 申公伊伐飡 板羅稟主
20년(A.D.232) 정월 신공(申公)을 이벌찬으로, 판라(板羅)를 품주로 삼았다.
五月 倭女王遣其弟狛比古等 獻其土物 請交易物貨 乃立倭典 與之通聘
5월 왜 여왕이 동생 박비고(狛比古) 등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물품과 재화를 교역하기를 청하여 이에 왜전(倭典)을 세우고, 왜와 더불어 통하여 안부를 묻기로 하였다.
③은 조금 복잡한 내용입니다. 미추이사금의 딸이 어떻게 내물의 비와 실성의 비가 되는 것이냐? 신라사초의 전반을 살피기 곤란하니 구도갈문왕의 계보를 살펴보겠다.
구도(운모) - 옥모(골정) - 조분, 홍모, 녹모
구도(운모) - 옥모(내해) - 첨해, 유모, 중해
구도(녹모) - 말흔(술례) - 말구(휴례) - 내물
구도(녹모) - 말흔(유모) - 대서지(예생) - 실성
구도(술례) - 미추(광명) - 보반, 내류
이분들의 생몰년에 관한 내용이다.
구도(218.4 - 301.2)
운모(생몰미상) - 소문국 출신이다.
옥모(238. . - 311.3)
골정(207. . - 285.3)
조분(254.8. - 329.2)
제11대 조분이사금 (재위 292 ~ 309), 재위에 물러난 후 20년을 더 살았다.
홍모(생몰미상) - 조분의 여동생, 내해의 비, 우로와 아이혜의 어머니
녹모(생몰미상) - 말흔의 어머니
내해(230.4 - 291.3)
제10대 내해이사금 (재위 257 ~ 291)
첨해(274.1 - 324.12.28)
제12대 첨해이사금 (재위 310 ~ 324)
중해(280.1 - 미상) - 석등보의 아버지
말흔(278.8 - 350.12)
술례(256.1 - 338.9) - 미추와 말구의 어머니
말구(297. . - 358.6) - 내물의 아버지
휴례(331. . - 미파악) - 미추의 딸, 내물의 어머니
내물(350. 3 - 402)
제17대 내물이사금 (재위 377 ~ 402)
미추(292. . - 362.10), 구도 갈문왕 75세에 출생, 재위에 물러난 후 13년 생존
제13대 미추이사금 (재위 325 ~ 349)
광명(324.9 - 392.2) - 조분의 딸
보반(360.8 - 미파악) - 눌지의 어머니, 내물의 비
내류(362.9 - 미파악) - 눌지의 비 아노의 어머니, 실성의 비
= 미추이사금의 딸 보반은 내물이사금 겨우 17세로 내물이사금의 妃가 되었고, 실성의 비가 된 내류는 41세에 실성이사금의 비가 되었다. 아마 보면서도 믿지 아니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본인이 거짓말 한다고 할 것이다.
④는 ①, ②, ③과는 약간 경우가 다르다. 흘해이사금이 어리다고 표현한 것은 흘해이사금이 기림이사금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 우로가 죽은 시기가 약간 다르다. 나에게 남당 박창화의 소설에 놀아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얽히고 얽힌 계보인데 거짓으로 장난할 수 있겠는가. 위와 같이 중복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또한 검토바라다.
伐休帝(紫凰) - 伊買帝(內禮) - 奈解帝(紅帽) - 元上帝(命元) - 訖解帝
벌휴(자황) - 이매(내례) - 내해(홍모) - 우로(명원) - 흘해
伐休帝(紫凰) - 骨正帝(玉帽) - 助賁帝(嘉凰) - 乞淑帝(阿爾兮) - 基臨帝
벌휴(자황) - 골정(옥모) - 조분(가황) - 걸숙(아이혜) - 기림
벌휴(189.4. - 256.4)
제9대 벌휴이사금 (재위 244 ~ 256)
자황(미상 - 266.3)
이매(211.7 - 235.4)
내례(186.1 - 263.2), 아달라이사금의 妃
내해(230.4 - 291.3)
제10대 내해이사금 (재위 257 ~ 291)
홍모(생몰미상) - 조분의 여동생, 내해의 비, 우로와 아이혜의 어머니
우로(277.3 - 331.4), 미추의 재위기에 사망, 미추이사금과 여동생 아이혜와 경쟁관계(왜 여왕을 욕한 것이 아니라 여동생 아이혜를 욕한 것이 왜 여왕에게 전달되어 사망), 일본 신공황후에게 사망한 분은 이 분이 거의 확실함. 우로의 사망시기가 뒤로 물러남으로써 신공황후의 기년이 산정이 가능해짐. 331년은 신공황후의 섭정 원년
명원(307.3 - 374.9), 조분과 아이혜의 딸, 광명의 언니
흘해(329.8 - 392. .), 재위에 물러난 후 15년을 생존, 광명을 따라 죽음.
제16대 흘해이사금 (370 ~ 377)
골정(207 - 285.3), 조카 내해이사금이 재위에 오를 때 생존해 있었다.
옥모(238. . - 311.3)
조분(254.8. - 329.2)
제11대 조분이사금 (재위 292 ~ 309), 재위에 물러난 후 20년을 더 살았다.
가황(생몰미상)
걸숙(미상 - 362. .), 아이혜의 사망 시 따라죽음. 조분이사금의 아들
아이혜(286.8 - 362.9)
기림(330.4 - 372.6), 사망시에 본 사람이 없음.
제15대 기림이사금(재위 364 ~ 370), 흘해이사금 보다 연하, 아이혜의 유지를 받아 동복누나 광명이 옹립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해결해 주실 분도 없고, 저의 너무나 당연스러운 대답을 남당의 상상의 산물이라 하더군요.
신라본기에 있는 해결되지 않는 신라의 기년에 관한 문제를 풀어올리니, 이곳에는 이해할 만한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글이 자꾸 조회수가 올라가면 곤란해지는 분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내물왕,실성왕,눌지왕에 관한 이야기..
◦ 글쓴이: ◦ 조선국왕 인종
◦ 조회수 : 195
◦ 07.03.12 23:45
내물왕 재위 356~402..
흘해왕이 죽고 흘해왕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물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비가 미추왕의 딸이라는 사족을 달아 그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아마 미추왕이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올랐기에 그 힘을 빌리려고 한 것 같고 실제 미추왕 의 딸이 내물왕의 왕비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20세로 본다면 그는 66세까지 살았습니다..
그의 장남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위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죠..
그러나 왕위는 장인인 실성이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물왕부터 소지왕까지 나이를 계산해보니 너무 황당합니다..
내물왕이 20세에 왕위에 올랐다고 계산하면 337년생..
눌지왕이 458년까지 살았다는 계산하에 최대한 나이를 낮춰서 377년생..
소지왕의 어머니인 미사흔의 딸이 자비왕과 461년에 혼인했으므로 소지왕은 467년..
그럼 최대한 정상적인 나이로 계산해서 자비왕 417년생..
나이를 심심해서 계산해보니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이들조차 황당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기하게 내물왕도 눌지왕을 나이 사십에 얻었고 눌지왕도 자비왕을 사십에 얻었고 자비왕은 소지왕을 나이 오십에 얻었습니다..
저건 제가 최대한 말이 되게 만드려고 한 거고 실제와 많이 다를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역사책에서도 말하길 눌지왕부터 소지왕까지 부자세습을 완성하였다고 했습니다..
근데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게 아주 고대도 아니고 신화에서 역사로 넘어오는 시기인데..
아 거기다가 자비왕이 40세가 넘어서 혼인한 건 뭐 조선시대도 왕은 나이와 상관없이 재혼할 수 있으니 재혼일 가능성도 있으니 그렇다고 하겠는데 자비왕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촌 미사흔의 딸은 어떻게 되는 거죠?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실 분 없으신가요?
왜 이런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가는지 모르겠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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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 인종님이 신라왕의 계보를 살펴본 일은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신라를 역사를 바로 찾는 첫 걸음이라 하겠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보다도 신라왕의 계보가 밝혀진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는 신라왕의 계보에 문제가 있다고들 추정을 합니다만 저는 계보의 문제가 아니라 기년의 문제로 봅니다. 그저 한 두 분에 한정되면 오탈자로 볼 수도 있으나 계보는 서로 이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기년을 조정해 놓으면 계속적인 문제를 일으키죠.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신라왕의 계보를 추적하여 기년을 의심해보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문제입니다.
아마도 여태 신라본기의 기년에 대해 의심하는 역사학자는 없었으리라 봅니다.
일본서기의 기년을 의심하듯 신라본기의 기년 또한 의심의 대상입니다.
특별히 계보와 기년이 의심되는 곳은 관구검의 침입시기인 조분이사금의 사후 첨해이사금 부터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시기인 내물이사금까지가 대상이 될 것입니다.
기년이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 모아보았습니다.
① 금관가야의 시조왕인 수로왕의 재위년은 서기42-199년까지 158세를 살았다고 했으므로 분명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수로왕은 한명이 아닐 꺼라 하면서 두리 뭉실하게 넘어갑니다. 수로왕의 기사는 신라본기 파사이사금기에 잠깐 나타나기에 신라본기 기년을 의심하는 부분에 추가했습니다.
참조문1) 삼국유사 가락국기
후한(後漢)의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 임인(壬寅; 42) 3월 계욕일(계浴日)에 그들이 살고 있는 북쪽 귀지(龜旨; 이것은 산봉우리를 말함이니, 마치 십붕十朋이 엎드린 모양과도 같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에서 무엇을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중략)
왕후가 죽자 왕은 매양 외로운 베개를 의지하여 몹시 슬퍼하다가 10년을 지난 헌제(獻帝) 입안(立安) 4년 기묘(己卯; 199) 3월 23일에 죽으니, 나이는 158세였다.
참조문2) 삼국사기 신라본기 파사이사금 23년기사
23년(서기 102년) 가을 8월, 음집벌국과 실직곡국이 국경 문제로 다투다가 왕에게 와서 결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왕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여기고, 금관국 수로왕이 나이가 많고 아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불러와 물었다. 수로가 의견을 내어, 다투던 땅을 음집벌국에 주도록 하였다. 이에 왕은 6부로 하여금 수로왕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도록 하였다. 5부는 모두 이찬으로 우두머리를 삼았는데, 오직 한기부만은 직위가 낮은 자를 우두머리로 삼았다. 수로가 노하여 그의 종 탐하리를 시켜 한기부의 우두머리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보제의 종이 도망하여 음집벌주 타추간의 집에 의탁하였다. 왕이 사람을 보내 그 종을 찾았으나 타추가 돌려 보내지 않았다. 왕이 노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음집벌국을 공격하니, 그 우두머리가 자기의 무리와 함께 스스로 항복하였다.
실직·압독 두 나라 왕이 항복해왔다.
겨울 10월, 복숭아와 오얏나무 꽃이 피었다.
② 신라본기 아달라이사금기에 나오는 비미호와 중국25사에 나오는 비미호의 재위기가 많이 차이가 납니다. 이것도 65년 기년차이가 있는데 무시하고 넘어갑니다.
참조문1) 삼국사기 아달라이사금 20년기사
20년(서기173년) 여름 5월, 왜국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 예방해왔다.
참조문2) 삼국지위지동이전 왜전
<景初>二年六月, <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 求詣天子朝獻, 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其年十二月, 詔書報<倭女王>曰: [制詔<親魏倭王><卑彌呼>: <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次使<都市牛利> 奉汝所獻男生口四人, 女生口六人, 班布二匹二丈, 以到. 汝所在踰遠, 乃遣使貢獻, 是汝之忠孝, 我甚哀汝. 今以汝爲<親魏倭王>, 假金印紫綬, 裝封付<帶方>太守假授汝. 其綏撫種人, 勉爲孝順. 汝來使<難升米>·<牛利>涉遠, 道路勤勞, 今以<難升米>爲率善中郞將, <牛利>爲率善校尉, 假銀印靑綬, 引見勞賜遣還.
경초 2년(서기 238년) 6월 '왜여왕'이 대부 '난승미'등을 보내어 군에 이르러, 천자에게 조헌하기를 구하자 태수 '유하'가 서울에 사신을 보냈다. 그해 십이월 조서를 내려 '왜여왕'에게 말하길 ' '친위왜왕 비미호' '대방태수 유하'가 당신이의 대부 '난승미'와 다음사신'도시우리'를 보내와 남자 4명과 여자 육명, 포 두필이장을 받치니 이에 이르렀다. 당신이 있는 곳이 먼데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치니 당신의 충효가 이와 같아, 내가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당신을 '친위왜왕'을 삼는다. 그리고 금으로 만든 인과 붉은 빛 인끈을 봉해서 '대방태수' 에게 보내는 것이니, 당신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힘써 효도하고 잘 순종하도록 하라. 당신이 보낸 사신 '난승미'와 '도시우리'는 길이 먼데 수고가 많았기로, 이제 '난승미'를 솔선중랑장을 삼고, '우리'를 솔선교위를 삼아 은으로 만든 인과 푸른 인끈을 주고 불러 보고 위로한 다음 돌려 보내는 바이다.
③ 신라본기 내물이사금과 실성이사금의 妃가 미추이사금의 딸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도 문제가 있는데 아직까지 답을 하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아마도 불법 탈취된 정권의 합리성을 위하여 거짓으로 갖다 붙였다고도 합니다.
참조문1)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물이사금기
제17대 내물 이사금 (奈勿 尼師今 356~402 재위기간 46년)
내물[나밀이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김씨이고, 구도 갈문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말구 각간이며,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이다. 왕비는 김씨이니 미추왕의 딸이다. 흘해가 죽고 아들이 없었므로 내물이 그 뒤를 이었다.[말구는 미추 이사금의 동생이다.]
참조문2) 삼국사기 신라본기 실성이사금기
제18대 실성 이사금 (實聖尼師今 402~417 재위기간 15년)
실성 이사금 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알지의 후손이며, 대서지 이찬의 아들이다. 어머니 이리부인['伊'를 '企'라고도 한다.]은 석등보 아간의 딸이다. 왕비는 미추왕의 딸이다. 실성은 키가 7척 5촌이요, 총명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식견이 있었다. 내물이 붕어하였으나 그의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백성들이 실성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였다.
참조문 3) 삼국사기 신라본기 미추이사금기
제13대 미추 이사금 (味鄒 尼師今 262~283 재위기간 21년)
미추 이사금[미조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이다. 그녀는 갈문왕 이칠의 딸이다.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이다. 그녀는 조분왕의 딸이다. 미추의 조상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자 탈해왕이 데려와 궁중에서 길렀고, 뒤에 대보로 임명하였다. 알지가 세한을 낳고, 세한이 아도를 낳고, 아도가 수류를 낳고, 수류가 욱보를 낳고, 욱보가 구도를 낳았으니,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첨해가 아들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초가 되었다
④ 신라 흘해이사금은 신라본기에 나아가 어리나 나이 든 사람의 덕이 있다고 하였으나, 흘해이사금의 부친인 우로의 사망을 기점으로 나이를 계산해보면 결코 나이가 어리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첨해이사금과 흘해이사금시기를 모용씨에 의해 신라가 정복당하였다가 그 이후에 김씨가 새로 왕을 새웠다고도 주장합니다. 김씨는 모용씨의 후손이라고도 합니다. 신라에 대해 수많은 說이 난립하게 된 것은 신라본기의 기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조문 1) 삼국사기 신라본기 첨해이사금기
제12대 첨해 이사금 (沾解 尼師今 247~262 재위기간 15년 )
3년 (A.D.249) 여름 4월, 왜인이 서불한 우로를 죽였다.
참조문 2) 삼국사기 신라본기 첨해이사금기
제16대 흘해 이사금 (訖解 尼師今 310~356 재위기간 46년)
흘해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나해왕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로 각간이다. 그의 어머니는 명원부인이니, 조분왕의 딸이다. 우로는 임금을 섬기는 데에 공로가 있었으므로 여러 번 서불한이 되었다. 그는 흘해의 용모가 준수하며, 심기가 강직하고 두뇌가 명민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보고 여러 제후들에게 말했다. "내 집안을 흥하게 할 자는 반드시 이 아이다." 이 때 기림이 죽고 아들이 없었다. 여러 신하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흘해가 어리기는 하지만 나이든 사람이 갖출 수 있는 덕을 지녔다"라 하고 그를 받들어 왕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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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 인종님이 질문을 던졌는데 제가 더 골치 아픈 질문을 올렸군요.
이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년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위의 ①, ②, ③, ④의 문제를 기년으로 풀어드립니다.
예전에 라디오님이 남당 유고집 기년을 올렸었는데 아무도 관심 있게 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당 유고집 vs 삼국사기 기년
1 혁거세 (재위 61년) BC57- AD4
2 남해 (재위 21년) 4- 24
3 유리 (재위 34년) 24- 57
4 탈해 (재위 24년) 57- 80
5 파사 (재위 33년) 126 ~ 158 (재위 33년) 80- 112
6 지마 (재위 33년) 159 ~ 191 (재위 23년) 112- 134
7 일성 (재위 21년) 192 ~ 212 (재위 21년) 134- 154
8 아달라(재위 31년)213 ~ 243 (재위 31년) 154- 184
9 벌휴 (재위 13년) 244 ~ 256 (재위 13년) 184- 196
10 나해 (재위 35년) 257 ~ 291 (재위 35년) 196- 230
11 조분 (재위 18년) 292 ~ 309 (재위 18년) 230- 247
12 첨해 (재위 15년) 310 ~ 324 (재위 15년) 247- 261
13 미추 (재위 25년) 325 ~ 349 (재위 24년) 261- 284
14 유례 (재위 15년) 350 ~ 364 (재위 15년) 284- 298
15 기림 (재위 7년) 364 ~ 370 (재위 13년) 298- 310
16 흘해 (재위 8년) 370 ~ 377 (재위 47년) 310- 356
17 내물 (재위 26년) 377 ~ 402 (재위 47년) 356- 402
18 실성 (재위 16년) 402 ~ 417 (재위 16년) 402-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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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남당 유고의 기년을 보시면 ①, ②, ③은 저절로 풀리고 ④는 다른 각도에서 풀립니다.
①에서 수로왕의 기년이 42-199년이라고 하였는데, 42년과 199년의 수로는 동일한 분이 아닙니다. 파사이사금 시기의 수로는 청예왕으로 妃가 황옥이고 거등왕의 부모입니다. 42년은 가야의 시조왕인 수로임금에 관한 사항이고, 이는 탈해가 신라로 입국한 기년과 따져야 할 사항입니다. 일단 이 부분까지 설명하려면 다시 여러 가지 사항과 맞물려 삼국유사를 다시 들먹여야 하니 다음 기회에 설명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누군가 질문하시면 그 때 답하기로 하지요.
남당 유고 신라사초의 기사를 올려드리오니 비교하시면 고개가 끄덕여 질것입니다.
참조문1) 신라사초 파사이사금 25년 기사
二十五年 正月 加耶世主 遣其三子靑裔 入朝
25년(A.D.150) 정월 가야의 세주(世主)가 그 셋째아들 청예를 보내어 입조하였다.
三月 以吉門爲伊伐飡 茶耶爲稟主 沙乙那愛吉元 而不肯 爲稟主 上許其志 遂以茶耶代之 摩帝爲中外大軍事 美禮爲大軍母
3월 길문을 이벌찬으로 삼고 다야를 품주로 삼았다. 사을나가 길원을 사모하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아 품주로 삼았다가, 왕이 그 뜻을 허락하여 마침내 다야가 대신하게 되었다. 마제를 중외대군사로 삼고 미례를 대군모로 삼았다.
十二月 音汁伐與悉直谷爭界 王命其地老 辨之地 老曰 “加耶王子 靑裔多智 可以立議” 上許之 汗門爲京都兵官 汗兒子也
12월 음즙벌(국)과 실직곡(국)이 국경 문제로 다투었다. 왕이 그 땅의 노인으로 하여금 경계를 변별하도록 하였다. 노인이 말하기를 “가야왕자 청예가 지혜가 있으니 그의 의견으로 정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왕이 그것을 허락하였다. 한문을 경도병관으로 삼았는데 한아의 아들이다.
= 서기 150년에 청예의 나이를 20세로 산정하면, 청예는 69세까지 산 셈입니다. 매우 자연스럽고 아들 거등의 기년도 자연스러워 집니다.
②는 아달라이사금의 기년을 신라사초로 보정하였습니다. 왜 여왕 비미호가 중원에 사신을 보낸 해가 238년이니 6년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요. 설마 중국25사의 기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진 않으시겠죠.
참조문1) 신라사초 아달라이사금 20년 기사
二十年 正月 申公伊伐飡 板羅稟主
20년(A.D.232) 정월 신공(申公)을 이벌찬으로, 판라(板羅)를 품주로 삼았다.
五月 倭女王遣其弟狛比古等 獻其土物 請交易物貨 乃立倭典 與之通聘
5월 왜 여왕이 동생 박비고(狛比古) 등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물품과 재화를 교역하기를 청하여 이에 왜전(倭典)을 세우고, 왜와 더불어 통하여 안부를 묻기로 하였다.
③은 조금 복잡한 내용입니다. 미추이사금의 딸이 어떻게 내물의 비와 실성의 비가 되는 것이냐? 신라사초의 전반을 살피기 곤란하니 구도갈문왕의 계보를 살펴보겠다.
구도(운모) - 옥모(골정) - 조분, 홍모, 녹모
구도(운모) - 옥모(내해) - 첨해, 유모, 중해
구도(녹모) - 말흔(술례) - 말구(휴례) - 내물
구도(녹모) - 말흔(유모) - 대서지(예생) - 실성
구도(술례) - 미추(광명) - 보반, 내류
이분들의 생몰년에 관한 내용이다.
구도(218.4 - 301.2)
운모(생몰미상) - 소문국 출신이다.
옥모(238. . - 311.3)
골정(207. . - 285.3)
조분(254.8. - 329.2)
제11대 조분이사금 (재위 292 ~ 309), 재위에 물러난 후 20년을 더 살았다.
홍모(생몰미상) - 조분의 여동생, 내해의 비, 우로와 아이혜의 어머니
녹모(생몰미상) - 말흔의 어머니
내해(230.4 - 291.3)
제10대 내해이사금 (재위 257 ~ 291)
첨해(274.1 - 324.12.28)
제12대 첨해이사금 (재위 310 ~ 324)
중해(280.1 - 미상) - 석등보의 아버지
말흔(278.8 - 350.12)
술례(256.1 - 338.9) - 미추와 말구의 어머니
말구(297. . - 358.6) - 내물의 아버지
휴례(331. . - 미파악) - 미추의 딸, 내물의 어머니
내물(350. 3 - 402)
제17대 내물이사금 (재위 377 ~ 402)
미추(292. . - 362.10), 구도 갈문왕 75세에 출생, 재위에 물러난 후 13년 생존
제13대 미추이사금 (재위 325 ~ 349)
광명(324.9 - 392.2) - 조분의 딸
보반(360.8 - 미파악) - 눌지의 어머니, 내물의 비
내류(362.9 - 미파악) - 눌지의 비 아노의 어머니, 실성의 비
= 미추이사금의 딸 보반은 내물이사금 겨우 17세로 내물이사금의 妃가 되었고, 실성의 비가 된 내류는 41세에 실성이사금의 비가 되었다. 아마 보면서도 믿지 아니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본인이 거짓말 한다고 할 것이다.
④는 ①, ②, ③과는 약간 경우가 다르다. 흘해이사금이 어리다고 표현한 것은 흘해이사금이 기림이사금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 우로가 죽은 시기가 약간 다르다. 나에게 남당 박창화의 소설에 놀아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얽히고 얽힌 계보인데 거짓으로 장난할 수 있겠는가. 위와 같이 중복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또한 검토바라다.
伐休帝(紫凰) - 伊買帝(內禮) - 奈解帝(紅帽) - 元上帝(命元) - 訖解帝
벌휴(자황) - 이매(내례) - 내해(홍모) - 우로(명원) - 흘해
伐休帝(紫凰) - 骨正帝(玉帽) - 助賁帝(嘉凰) - 乞淑帝(阿爾兮) - 基臨帝
벌휴(자황) - 골정(옥모) - 조분(가황) - 걸숙(아이혜) - 기림
벌휴(189.4. - 256.4)
제9대 벌휴이사금 (재위 244 ~ 256)
자황(미상 - 266.3)
이매(211.7 - 235.4)
내례(186.1 - 263.2), 아달라이사금의 妃
내해(230.4 - 291.3)
제10대 내해이사금 (재위 257 ~ 291)
홍모(생몰미상) - 조분의 여동생, 내해의 비, 우로와 아이혜의 어머니
우로(277.3 - 331.4), 미추의 재위기에 사망, 미추이사금과 여동생 아이혜와 경쟁관계(왜 여왕을 욕한 것이 아니라 여동생 아이혜를 욕한 것이 왜 여왕에게 전달되어 사망), 일본 신공황후에게 사망한 분은 이 분이 거의 확실함. 우로의 사망시기가 뒤로 물러남으로써 신공황후의 기년이 산정이 가능해짐. 331년은 신공황후의 섭정 원년
명원(307.3 - 374.9), 조분과 아이혜의 딸, 광명의 언니
흘해(329.8 - 392. .), 재위에 물러난 후 15년을 생존, 광명을 따라 죽음.
제16대 흘해이사금 (370 ~ 377)
골정(207 - 285.3), 조카 내해이사금이 재위에 오를 때 생존해 있었다.
옥모(238. . - 311.3)
조분(254.8. - 329.2)
제11대 조분이사금 (재위 292 ~ 309), 재위에 물러난 후 20년을 더 살았다.
가황(생몰미상)
걸숙(미상 - 362. .), 아이혜의 사망 시 따라죽음. 조분이사금의 아들
아이혜(286.8 - 362.9)
기림(330.4 - 372.6), 사망시에 본 사람이 없음.
제15대 기림이사금(재위 364 ~ 370), 흘해이사금 보다 연하, 아이혜의 유지를 받아 동복누나 광명이 옹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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