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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12.27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라가 당나라의 관복등을 도입한 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으로 봐야 합니다..당은 이미 신라에 비해 여러 문물이 들어온 선진 문화국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관직과 관복을 당나라의 것으로 동일시하게 맞추었다면 일단 그품계와 관복으로 당나라와 접촉시(=사신)에 당나라 조정의 그품계와 동등한 인식과 함께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즉 소국이라하여 정3품급이 사신을 갔는데도 당나라에서는 종5품급 대우도 안해주는 비극은 최소한 없앨 수 있는 효과를 낼수가 있다는 것이지요..자주적인 문제가 아닌 실리적인 즉 대국의 선진 다문화를 빠르게 도입하고 모방, 흡수시켜 나가는 정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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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12.27 우선 신라왕은 당의 관복을 입을 수가 없었다고 보여집니다..첫째는 신라왕이 입을 수 있는 관복이 해당되는 직급이 없어 그에 따른 관복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렇다고 당황제가 입는 관복을 그대로 똑 같이 입을 수도 없기 때문에 신라왕은 고유복장 그대로 이거나 당나라에서 수입된 비단정도로 디자인해서 입는 정도 이겠지요..물론 비단자체도 신라 자체생산품 보다도 질이 좋을 경우에 해당되겠지요...선진문화와 문물 도입에 자존심을 걸고 쇄국정책을 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보면 별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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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고구려벌판 작성시간09.12.29 역사님/신라의 도시 문명이 당의 도시 문명보다 뛰어났다? 일단 도시 문명이라는 말 자체부터 조금 맞지 않는 말이라 보이는군요. 역사님께서는 도시 문명을 '도시 발전 정도'로 쓰신것 같습니다만 현재 학계에서 도시 문명이란 도시를 중심으로 문명이 탄생한 문명권을 지칭합니다. 예를 들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그리스 문명이 있겠지요.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도 도시는 존재했으나 그리스 문명의 도시와는 다른 행정적, 군사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습니다. 경제, 문화적 성격은 부차적인 것이었죠. 두 번째로 그 당시 신라 도시 발전도가 당의 도시와 견주어졌거나 혹은 더 뛰어났다는 역사님의 주장에도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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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고구려벌판 작성시간09.12.29 중국에 있어 도시의 역사는 상 시대의 읍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도시라 부를 수 있는 성읍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그 속에서 도시문화라는 것이 발전하게 된 것은 춘추전국시대라고 보여집니다. 전국시대 말부터 도시가 중앙집권체제에 편입되게 되고 진한시대에 이르게 되면 중국의 도시들은 고도로 발전한 행정체제에 의해 황제가 거주하는 도읍을 정점으로 편제되게 됩니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경제력의 발달, 유목민의 개방적 성격으로 행정, 군사적 도시 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까지 갖춘 도시의 면모를 보이지만 근대 이전의 중국 도시는 여전히 행정, 군사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중국의 도시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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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고구려벌판 작성시간09.12.29 언급하였듯이 중앙집권체제와 고도로 발달한 행정관료체제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라에서 도시가 계획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당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부터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서라벌의 모습입니다. 물론 앞에서 잠깐 언급한 그리스의 예처럼 도시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과 가능성은 많습니다만, 역사님님의 말씀대로라면 당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이전, 거대했던 서라벌의 모습을 묘사한 사료가 존재해야 하는데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는 없습니다. 혹시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