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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토론방

이사지왕이 누구인가 1 -발음

작성자이용현2|작성시간14.07.12|조회수662 목록 댓글 2

어제 중박에서 이사지왕 관련 심포가 열렸습니다. 그건에 대해 금후 하나하나 짚어가며 고수들과 의견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금관총과 이사지왕의 관계입니다.

칼에 이사지왕이라고 새겨져 있는 사실꽈 무덤의 주인공이 이사지왕인가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경우1 양자가 일치할 수 있다.

경우2 양자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둘 다 고려해야합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의견통일정리가 불가합니다.


고고쪽에서는 최병헌,박광렬 선생이 발표했습니다. 원래 김용성 선생 발표 예정이었으나, 집안일로 급거 박광렬 선생이 나섰다고 하네요


고고쪽의 발표 내용역시 하나 하나 집어갈 예정입니다.

우선 고고쪽에서 최병헌 선생은 금관총의 주인공을 자비왕으로 보는 듯 합니다.

박광렬 선생은 누군가 왕의 배총으로 봅니다. 배총이란 주총(주가 되는 무덤)에 대해 부수적인 딸린 무덤입니다.

여기에는 부인 혹은 동생 등 혈연관계의 사람이 뭍힌다고 상정하는 모양입니다.


고고학 논고를 몇 개 읽어보았는데

신라 경주의 무덤에 대한 편년이 십인십색입니다.

같은 무덤에 대해 편년이 대략 3가지 이상입니다. 연대폭이 대략 사분기(25년단위)로 잘리는데

금관총의 경우는 5세기3사분기, 5세기4사분기 설이 주류인 듯 합니다.

혹은 6세기초설도 생긴 듯 하구요.. 이건은 달리 논의드리지요.


박광렬 선생은 오랫동안 경주지역에서 발굴에 종사하셨습니다. 경북대를 나오시고 지금은 성림문화연구원이란 발굴회사 오너입니다.

연세는 61년생이신 모양입니다. 경북대 이성주선생과 동기인 모양입니다. 경주에 대해 환히 잘 아는 여러 분 중의 한 분입니다.


사실 김용성선생(한빛문화재연구원)이 이 분야에 이희준선생(경북대)와 쌍벽이라 그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달리 금후 전화라도 드려 여쭤볼 예정입니다. 또 의견 주시면 공지드리지요.


두번째로는 칼의 부장 상태입니다. 칼은 보고서에 따르면 부장곽에서, 또 시신의 좌, 우, 아래에 있었다고 나옵니다.

보고서는 일제시대에 나왔는데, 경주문화재연구소 자료마당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번역해서 공유시켜놓았거든요.

이 사실은 의외로 고대사하는 전문가들도 거의 모릅니다.


그 보고서는 완간되지 못하여서, 대도 분야는 서술이 적습니다. 도면이 하나 있는데  도면에 입각해 보면

이사지왕명 대도는 시신의 머리 위 멀찌감치 부장곽, 즉 귀중한 물건 들 - 솥,초두,칠기그릇 들과 함께 놓여있었습니다.

제가 관련 보고서를 본 직감적으로 이 그릇들에는 내세에서 먹을 음식들이 들어있었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고고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칼이 장착용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보통 매장상태에서 시신의 왼쪽 허리춤에서 나오면 장착용입니다.

그런데 금관총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울러, 이희준 선생에 따르면(보다도 대체적인 고고학자들의 인식기준입니다만) 무덤에서 대도가 나오면 남성

태환이식(귀걸이인데 고리가 두꺼운 것:여성용입니다)이 나오면 여성으로 판단합니다


이 기준에서 금관총은 대도가 나오긴 하지만 주인공이 부착한 것이 아니고,여성의 지표가 되는 태환이식이 나오므로

주인공은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지왕은 남자이름이므로 무덤의 주인공과 칼에 새겨진 이름 이사지는 별개가 되게 됩니다.


즉 이사지왕칼은 누군가가 무덤의 주인공에게 준 것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카페에서의 논의는 먼저 그 점이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과연 무덤주인공과 이사지왕은 어떤 관계였을까


물론 그경우 이사지왕이 누구인가가 선결조건입니다만.


그에 대해서

발표자의 한사람이었던 김재홍(국민대교수)씨는 소지왕이라고 보았습니다.

             음운적으로 소지왕과 이사지왕은 전혀 맞지가 않습니다. 그 점에서 out입니다.

저는 매금왕도, 갈문왕도 아닌, 다른 왕들로 보았습니다.

               다른 왕들이란, 냉수리비에 보시면, <차칠왕등=이(위의) 일곱 왕 들>이란 어구가 있고

               이것에 대해서는 갈문왕과 6명의 귀족이 함께 논의하여 <교=국왕이 내리는 명령>를 내리고 있는데요

               6명의 귀족은 탁부2인, 사탁부2인, 다른 부에서 2인입니다.

               즉 이들은 각 부의 top 부장급입니다. 탁부와 사탁부에 인원이 더 많은 것은

                              그들이 주류였기 때문이죠

               바로 그들과 같은 그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고고학에서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로 보는 의견

이사지왕이 누구인가하는 논의는

이율배반적이지만, 절차상은 다른 논의입니다. 이 점이 혼동되면 안되겠지요.


마립간에서 왕으로 칭호를 503년에 바꾸게 됩니다. 국호도 신라로 확정을 하게 되구요

여기에 대한 해석도 여러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또 그에 대한 사적 평가도 새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만

즉 이 기사를 대단히 중요시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그와 같이 보면, 503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왕이라고 칭하게 되었던 것이 됩니다.


물론 <此七王等>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종래 통설은 <이 일곱 왕 들> 즉 왕이 일곱이 된다.왕이 일곱명이 되게 됩니다.

다른 의견은 <왕 한사람과 대신 6사람>입니다.

실제 후자를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김태식 연합뉴스 대기자, 전미희, 이희관 선생님)


이상이 대체적인 tip 정보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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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과제1 이사지왕이 누구인가 : 음운적으로 문헌적으로만.


1.자비왕설

2.소지왕설

3.눌지왕설

4. 이사부설


등이 있을 수 있거나 실제 인터넷상에서 주장되고 있습니다.


음운적으로 볼 때는 3인 가장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이건 아래쪽에서 <카리바타르님>설입니다.


1 자비왕설은 자비와 이사지 맞지 않습니다.

2 소지왕설, 소지는 비처왕의 이칭인데, 비처=비추다, 이런 음을 한자 炤을 따다가 지은 것이므로

  소의 음을 이사지왕의 <사>와 일치시켜 비정하는 건 넌센스입니다. 이사지왕은 모두 음차입니다.

4 이사부설. 이사부의  異(伊)자 i 와 이사지왕의 尔 er는 음가가 전혀 틀립니다.

3.訥祇 다른 표기는 乃智인데 nai,nei와 er는 비슷한 듯 하기도, 그렇지 않은 듯 하기도 합니다.음...


우선은 위의 발음면에서 볼 때 위주로 님들의 의견구합니다.

발음이 그러시면, 그냥 의견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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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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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용만 | 작성시간 14.07.12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보겠습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많은 신라 무덤이 발굴되어야만 이 문제의 해답이 명확한 나오리라고 봅니다.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굴되었기 때문에 금관총이 왕릉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무덤을 발굴한다면, 금관은 더 많이 출토될 가능성도 있고, 4-6세기 신라 왕들의 숫자를 넘어선 금관이 출토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록에 나타난 왕이 아닌 신라 여러 부의 리더의 무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억지로 음차로 소지왕이니 이사부라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 작성자정성일 | 작성시간 14.07.14 금관총 피장자의 나이나 키 등 신상정보를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유물에 기록된 이름만으로 피장자를 판별하기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남당유고(학계에서는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음)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몰년은
    눌지왕 (387-458, 72세)
    자비왕 (414-479, 66세)
    소지왕 (436-500, 65세)
    이사부 (484-562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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