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부원구>에 쓰여진 내용은 모릅니다만 700년 설과는 다른 설이 있다고 하셨죠?? 그렇다고 그게 곧 900년 설이 되는 것 같지는 않군요.
그리고 900년이라고 한 것은 당나라 신하 누구던가..가언충인가?? 하는 사람이 <고려비기>라는 책에 나오기를 고구려가 건국된지 900년 되는 해에 80먹은 노장한테 멸망한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면서 그 참언이 맞었다는 둥 하는 내용이 당서인지 뭔지에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구려 역사 900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 고려비기 운운한 것 정도고..나머지는 정황상...고구려현이라는게 먼저 있었다는 점, 광개토대왕의 세계와 대수가 기존 역사와 틀리다는 점, 등등등의 자료가 900년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혹은 구려 역사 200년과 고구려 역사 700년을 합쳐 900년이라는 설
졸본부여 200년에 고구려 700년을 합쳐 900년이란 이야기 등등 이 있지만 900년설이라는게 확실히 정립되어 있는 것도 아닌거라고 생각되고요..
또한 늘어난 200년이라는 시간적 공간을 어떤 역사로 채울 것인가, 잊었던 200년 역사를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찾을 것인가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무턱대고 무작정 200년을 늘려 900년 고구려 역사라고 이해하는 것도 무책임하고 부적절해 보입니다.
고구려 역사 705년이라고 하는 고구려인의 직접적인 1차 사료의 언급까지 있는 이상 저는 700년설을 믿는 편이고요..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 할 때에 여러가지 古記류의 서적들을 인용하고 우리 기록과 중국 기록을 비교한 논찬들도 많습니다. 이 가운데 김부식은 700년설이 더 정확하다고 봤기 때문에 오늘날의 삼국사기가 이렇게 지어졌다고 생각하구요..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정설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은게 아니라 900년 설과 비교해 봤을 때 고구려역사가 700년으로 보는 인식이 보다 설득력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900년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구려역사 200년이나 졸본부여 역사 200년과 고구려 역사 700년을 더하는 것과는 좀 다르죠.
졸본부여의 경우에는 연타(취)발이 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라고 했고.기원전 2세기 경까지의 적석총도 있다고 하니 졸본부여의 역사가 꽤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보자면 하다못해 차라리 졸본부여 200년+고구려 700년이라는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고구려 900년설은 저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편입니다.
정설을 믿으면 앞뒤 생각없이 무턱대고 믿는 것입니까?
정설도 엄정한 검증을 거쳐 성립된 것이니 만큼 까닭이 있어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900년이라고 한 것은 당나라 신하 누구던가..가언충인가?? 하는 사람이 <고려비기>라는 책에 나오기를 고구려가 건국된지 900년 되는 해에 80먹은 노장한테 멸망한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면서 그 참언이 맞었다는 둥 하는 내용이 당서인지 뭔지에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구려 역사 900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 고려비기 운운한 것 정도고..나머지는 정황상...고구려현이라는게 먼저 있었다는 점, 광개토대왕의 세계와 대수가 기존 역사와 틀리다는 점, 등등등의 자료가 900년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혹은 구려 역사 200년과 고구려 역사 700년을 합쳐 900년이라는 설
졸본부여 200년에 고구려 700년을 합쳐 900년이란 이야기 등등 이 있지만 900년설이라는게 확실히 정립되어 있는 것도 아닌거라고 생각되고요..
또한 늘어난 200년이라는 시간적 공간을 어떤 역사로 채울 것인가, 잊었던 200년 역사를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찾을 것인가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무턱대고 무작정 200년을 늘려 900년 고구려 역사라고 이해하는 것도 무책임하고 부적절해 보입니다.
고구려 역사 705년이라고 하는 고구려인의 직접적인 1차 사료의 언급까지 있는 이상 저는 700년설을 믿는 편이고요..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 할 때에 여러가지 古記류의 서적들을 인용하고 우리 기록과 중국 기록을 비교한 논찬들도 많습니다. 이 가운데 김부식은 700년설이 더 정확하다고 봤기 때문에 오늘날의 삼국사기가 이렇게 지어졌다고 생각하구요..
또한 저는 개인적으로 정설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은게 아니라 900년 설과 비교해 봤을 때 고구려역사가 700년으로 보는 인식이 보다 설득력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900년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구려역사 200년이나 졸본부여 역사 200년과 고구려 역사 700년을 더하는 것과는 좀 다르죠.
졸본부여의 경우에는 연타(취)발이 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라고 했고.기원전 2세기 경까지의 적석총도 있다고 하니 졸본부여의 역사가 꽤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보자면 하다못해 차라리 졸본부여 200년+고구려 700년이라는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고구려 900년설은 저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편입니다.
정설을 믿으면 앞뒤 생각없이 무턱대고 믿는 것입니까?
정설도 엄정한 검증을 거쳐 성립된 것이니 만큼 까닭이 있어서 믿는 것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