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주에 있는 세력을 왜라고 보는 이희근, 이덕일의 주장에 대해서 그 생각의 신선함에는 박수를 칩니다. 임나일본부는 한국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 강박관념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래 왜가 한반도에 있으면 어때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선하지요.
하지만 지금 그들의 주장에는 몇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나주지역의 왜라고 할 때 왜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즉 나주의 왜와 구주의 왜, 기내(오사카 방면)의 왜에 대한 연결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구주의 왜, 기내의 왜와 나주의 왜가 하나의 연합세력이고 같은 정권의 단일 지배를 받았다고 본다면 그것은 단연코 그들의 주장이 옳을 수가 없습니다.
또 서로 다르다면 어느 것이 선후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나주의 왜가 이동하여 구주의 왜, 기내의 왜로 이동했다면 5세기 후반의 나주지역에 나오는 옹관묘 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말해야 합니다. 또한 마한이 왜라고 볼 수도 없는데, 마한세력은 어떻게 해야 서술해야 할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아울러 나주세력이 왜라면 백제와의 관련성 문제도 물론 밝혀야 하지요. 그리고 나주지역이 백제와 정말 무관한 것인지도 밝혀야 하며, 왜가 그 지역이라고 했을 때 생기는 문헌사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명도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나주의 왜설은 소설적 상상력에 불과합니다. 나는 이덕일, 이희근 선생의 설을 아직까지는 크게 설득력이 없는 하나의 발상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신한 생각은 좋지만 여러 가지 추가되어 연구되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주의 독특한 고고학적 유물들이 백제 지배하의 나주 지역문화라고 생각하지 그것이 곧 정권을 달리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세력으로는 볼 수 없다고 봅니다.
--------------------- [원본 메세지] ---------------------
이덕일·이희근님이 주장하기 시작한 한반도 왜설이 요즘 점점 공론화되는 듯하군요. 그러나 그 주장을 주장하기 앞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왜가 설사 나주 부근에 진을 치고 광개토 태왕의 공격에 밀려 일본열도로 밀려난 것이 맞다고 해도, 그들의 세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488년 만들어진 송서를 보면 왜의 위치에 대해 이것 하나만 기재합니다.
'왜는 대방군 남쪽 큰 바다 속에 있다'
이는 270년대에 만들어진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도 나오는 글귀인데, 위지동이전에서는 '왜'의 위치에 대해 다음 두 개를 설명합니다.
1.대방군 남쪽 큰 바다 속-왜인전
2.마한 남쪽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마한전
이 두 개의 위치 중 1번만 인용한 것으로 보아 필시 488년 이후에 '왜'는 일본열도로 넘어갔다는 소리겠지요.
488년 전으로 왜의 일본열도 상봉 시기를 잡고, 기타 양서나 자치통감 등을 따지면 왜의 일본열도 상봉 시기는 420년 이전이 됩니다.
호태왕릉비를 이덕일 선생님의 해석에 따르자면, 왜는 400년부터 일본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400년부터 420년까지 불과 20년 사이에, '고구려와의 객관적 전력 열세'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열도로 이주했다는 점 하나만으로 벌써 왜는 뿌리깊은 고대국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나주 반암면 고분의 출토유물들은 가장 빨리 생성된 것이자 가장 극소수에 속하는 유물들이 4세기 중반, 나머지는 모두 5세기 때 유물들이라고 합니다.
불과 20년 만에 초강대국과의 객관적 열세라는 이유만으로 세력의 중심지를 옮긴 국가가, 작은 것이 무령왕릉의 2배나 되는 엽기적인 규모의 고분을 30여개나 만들었다라...참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일본 것과 많이 닮았다고들 하는데, 반암면 신촌리 고분군의 안장실은 엄연히 백제 고분에서 흔히 나타나는 석실분 형태를 띄고 있고, 백제 유물 중 꼭 일본것과 닮은 것을 찾자면 나주 고분 외에도 깔리고 깔렸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한반도에서는 선례를 찾아볼 수가 없고 일본 천왕릉에서는 많이 발견되는 '규두대도'나 '주구'를 예로 드시는 분도 계시지만, 30여개는 나주고분 중 규두대도와 주구를 소장한 고분은 극히 소수입니다. 30여개는 고분들은 크기나 소중 물품들이 모두 틀립니다. 즉, 백제나 백제에게 복속된 마한 연맹 출신 귀족들의 대형 고분단지로서 나주 고분 30여개에는 모두 각각 마한 소국 특유의 문화가 반영되었고, 이 중 일본인들이 멋있는 것만 골라갔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한반도 왜 세력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덕일·이희근님의 한반도 왜설이 맞다고 하더라도 왜는 백제의 충실한 꼬봉이었고, 나주 고분은 분명히 백제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주장에는 몇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나주지역의 왜라고 할 때 왜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즉 나주의 왜와 구주의 왜, 기내(오사카 방면)의 왜에 대한 연결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구주의 왜, 기내의 왜와 나주의 왜가 하나의 연합세력이고 같은 정권의 단일 지배를 받았다고 본다면 그것은 단연코 그들의 주장이 옳을 수가 없습니다.
또 서로 다르다면 어느 것이 선후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나주의 왜가 이동하여 구주의 왜, 기내의 왜로 이동했다면 5세기 후반의 나주지역에 나오는 옹관묘 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말해야 합니다. 또한 마한이 왜라고 볼 수도 없는데, 마한세력은 어떻게 해야 서술해야 할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아울러 나주세력이 왜라면 백제와의 관련성 문제도 물론 밝혀야 하지요. 그리고 나주지역이 백제와 정말 무관한 것인지도 밝혀야 하며, 왜가 그 지역이라고 했을 때 생기는 문헌사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명도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나주의 왜설은 소설적 상상력에 불과합니다. 나는 이덕일, 이희근 선생의 설을 아직까지는 크게 설득력이 없는 하나의 발상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신한 생각은 좋지만 여러 가지 추가되어 연구되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주의 독특한 고고학적 유물들이 백제 지배하의 나주 지역문화라고 생각하지 그것이 곧 정권을 달리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세력으로는 볼 수 없다고 봅니다.
--------------------- [원본 메세지] ---------------------
이덕일·이희근님이 주장하기 시작한 한반도 왜설이 요즘 점점 공론화되는 듯하군요. 그러나 그 주장을 주장하기 앞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왜가 설사 나주 부근에 진을 치고 광개토 태왕의 공격에 밀려 일본열도로 밀려난 것이 맞다고 해도, 그들의 세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488년 만들어진 송서를 보면 왜의 위치에 대해 이것 하나만 기재합니다.
'왜는 대방군 남쪽 큰 바다 속에 있다'
이는 270년대에 만들어진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도 나오는 글귀인데, 위지동이전에서는 '왜'의 위치에 대해 다음 두 개를 설명합니다.
1.대방군 남쪽 큰 바다 속-왜인전
2.마한 남쪽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마한전
이 두 개의 위치 중 1번만 인용한 것으로 보아 필시 488년 이후에 '왜'는 일본열도로 넘어갔다는 소리겠지요.
488년 전으로 왜의 일본열도 상봉 시기를 잡고, 기타 양서나 자치통감 등을 따지면 왜의 일본열도 상봉 시기는 420년 이전이 됩니다.
호태왕릉비를 이덕일 선생님의 해석에 따르자면, 왜는 400년부터 일본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400년부터 420년까지 불과 20년 사이에, '고구려와의 객관적 전력 열세'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열도로 이주했다는 점 하나만으로 벌써 왜는 뿌리깊은 고대국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나주 반암면 고분의 출토유물들은 가장 빨리 생성된 것이자 가장 극소수에 속하는 유물들이 4세기 중반, 나머지는 모두 5세기 때 유물들이라고 합니다.
불과 20년 만에 초강대국과의 객관적 열세라는 이유만으로 세력의 중심지를 옮긴 국가가, 작은 것이 무령왕릉의 2배나 되는 엽기적인 규모의 고분을 30여개나 만들었다라...참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일본 것과 많이 닮았다고들 하는데, 반암면 신촌리 고분군의 안장실은 엄연히 백제 고분에서 흔히 나타나는 석실분 형태를 띄고 있고, 백제 유물 중 꼭 일본것과 닮은 것을 찾자면 나주 고분 외에도 깔리고 깔렸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한반도에서는 선례를 찾아볼 수가 없고 일본 천왕릉에서는 많이 발견되는 '규두대도'나 '주구'를 예로 드시는 분도 계시지만, 30여개는 나주고분 중 규두대도와 주구를 소장한 고분은 극히 소수입니다. 30여개는 고분들은 크기나 소중 물품들이 모두 틀립니다. 즉, 백제나 백제에게 복속된 마한 연맹 출신 귀족들의 대형 고분단지로서 나주 고분 30여개에는 모두 각각 마한 소국 특유의 문화가 반영되었고, 이 중 일본인들이 멋있는 것만 골라갔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한반도 왜 세력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덕일·이희근님의 한반도 왜설이 맞다고 하더라도 왜는 백제의 충실한 꼬봉이었고, 나주 고분은 분명히 백제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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