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읽은 김용만 선생님의 글을 생각하며 몇 자 적어봅니다. 흔히 삼국 시대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삼국 시대는 가야가 멸망한 서기 562년부터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98년간에 불과했습니다. 서기 494년까지는 부여가 있었고, 562년까지는 가야가 있었던 것지요.
중앙 집권 국가여야만 발전된 것이고 가야 연맹같은 국가 형태는 후진성을 띠고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는 김용만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가야는 분명, 신라보다 문화 수준이나 국력이 앞선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가야 연맹의 맹주는 금관 가야였는데 언제부턴가 대가야로 바뀝니다. 언제?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서기 400년. 백제-가야-왜 연합군이 신라 금성을 공격하여 성은 함락 직전에 놓입니다. 그 때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구원군이 질풍처럼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멸망 직전에 놓였던 고구려의 속국 신라를 구원하고 삼국 연합군을 궤멸시킵니다. 고구려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가야의 심장부인 김해까지 내달립니다. 결국 백제의 부용국으로 전투에 참전한 금관 가야는 '슈퍼 고구려'에 대항한 죄로 무참하게 깨지고 맙니다.
이전까지는 분명히 신라에 국력이 앞서 있었던 가야 연맹은 맹주 금관 가야가 사실상 멸망에 다름없는 상태에 이르면서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고, 이후 대가야를 새 맹주로 삼아 160여년을 버티지만 결국 신라에 병합되고 말았습니다.
가야가 신라에 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광개토대왕의 남진과 금관 가야 진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구해준 고구려의 속국 신라가 훗날, 화근이 되어 대당 청병 외교를 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다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앙 집권 국가여야만 발전된 것이고 가야 연맹같은 국가 형태는 후진성을 띠고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는 김용만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가야는 분명, 신라보다 문화 수준이나 국력이 앞선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가야 연맹의 맹주는 금관 가야였는데 언제부턴가 대가야로 바뀝니다. 언제?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서기 400년. 백제-가야-왜 연합군이 신라 금성을 공격하여 성은 함락 직전에 놓입니다. 그 때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구원군이 질풍처럼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멸망 직전에 놓였던 고구려의 속국 신라를 구원하고 삼국 연합군을 궤멸시킵니다. 고구려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가야의 심장부인 김해까지 내달립니다. 결국 백제의 부용국으로 전투에 참전한 금관 가야는 '슈퍼 고구려'에 대항한 죄로 무참하게 깨지고 맙니다.
이전까지는 분명히 신라에 국력이 앞서 있었던 가야 연맹은 맹주 금관 가야가 사실상 멸망에 다름없는 상태에 이르면서 국력이 기울기 시작했고, 이후 대가야를 새 맹주로 삼아 160여년을 버티지만 결국 신라에 병합되고 말았습니다.
가야가 신라에 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광개토대왕의 남진과 금관 가야 진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구해준 고구려의 속국 신라가 훗날, 화근이 되어 대당 청병 외교를 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다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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