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고려 토론방

시무 28조에서 암시하는 한국의 기층문화

작성자김준수|작성시간05.12.02|조회수535 목록 댓글 0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회원 여러분.

 

그 동안 나름대로 바쁜 생활이라면 바쁜 생활을 하느라 회원분들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군요.

 

중요한 시간을 앞두고 우선 기초라면 기초 상식이나마 회원분들과 나누고자  글 올립니다. 

 

 

 

華夏之制不可不遵. 然四方習俗 各隨土性 似難盡變.
(화하지제 불가 불준. 연 사방습속 각 수 토성 사난진변.)

[ 화하(지나-차이나)의 (선진문물) 제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사방의 습속(풍속)은 각기 지방마다의 특성에 따르는 것이므로 (고려의 모든 풍속을 지나의 것과) 같이 다 변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其禮樂詩書之敎 君臣父子之道 宜法中華 以革卑陋 其餘車馬衣服制度 可因土風 使奢儉得中 不必苟同. 
(기 예악 시서지교 군신부자지도 의 법 중화 이혁 비루 기 여 거마 의복제도 가인 토풍 사 사검 득중 불필구동.)

 

[ (다만) 그 예절과 음악, 시경과 서경의 가르침(-유교정치원리)[과]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의 도리는 마땅히 중화를 본받음으로서 (우리의) 비루함을 고치고 그 나머지 수레와 말, 의복제도(-일상생활 관련)는 우리 풍토를 따르되 사치와 검약을 알맞게 하도록 하고 구차하게 (지나와) 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  

『高麗史』93卷「列傳6-崔承老-009」

 

 

遵 총 16획 좇을 준  ㉠좇다 ㉡따라가다 
습속(習俗)[―쏙][명사] (어떤 사회나 지역의) 예로부터 내려오는 습관들이 생활화된 풍속.
隨 총 16획 따를 수  ㉠따르다 ㉡따라서 ㉢발 ㉣괘 이름   
似 총 7획 같을 사  ㉠같다 ㉡닮다 ㉢비슷하다 ㉣흉내내다 ㉤잇다 ㉥상속하다 ㉦보이다 
예악(禮樂)[명사] 예절과 음악. 예절은 언행을 삼가게 하고, 음악은 인심을 감화시키는 것이라 하여,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매우 중요시하였음.
시서 (詩書) [명사] 1. 시경(詩經)과 서경(書經). 2. 시와 글씨. ¶ 시서를 다 잘하는 선비.
法 총 8획 법도 법  ㉠법 ㉡방법 ㉢불교의 진리 ㉣모형 ㉤꼴 ㉥본받다 
卑陋 비루 비루(鄙陋). ①(행동(行動)이나 성질(性質)이)더럽고 추저분함 ②행실이 야하고 더러움
車馬 차마 차량(車輸)과 말. 거마(車馬)
가ː히 ‘-ㅁ직하다’ 따위와 호응하여》 ‘능히’, ‘넉넉히’, ‘크게 틀림없이’의 뜻을 나타냄. ¶한글의 우수성은 가히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자식 잃은 자네 슬픔은 가히 짐작할 수 있겠네. 2. 《주로 ‘못하다’·‘없다’·‘아니하다’.
土風 토풍 그 지방(地方)의 풍속(風俗), 습관(習慣), 그 지방(地方) 사람의 기풍(氣風)
奢 총 12획 사치할 사  ㉠사치하다 ㉡과분하다 ㉢오만하다 ㉣넉넉하다 ㉤사치 
苟 총 9획 진실로 구  ㉠진실로 ㉡참으로 ㉢겨우 ㉣간신히 ㉤조금 ㉥구차하다 ㉦미봉하다 
구ː차 (苟且) [명사] [하다형 형용사] [스럽다형 형용사] 1. 살림이 매우 가난함. ¶집안이 매우 구차하다 . 2. 말이나 행동이 떳떳하거나 버젓하지 못함. ¶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다. 구차―히 [부사] . 구차스레 [부사] .
不必 불필 필요(必要)가 없음
必要 필요 ①꼭 소용(所用)이 됨 ②없어서는 아니 됨

 

 

위의 본문이야 어떻든 국사 교과서를 통해서라도 최승로의 시무 28조라는 말은 들어보신 기억이 있으실 줄 압니다.

 

회원분들께서 잘 아시는 대로 최승로는 당시 신라 6두품 출신의 지식인이며 진골 귀족을 도태시킨 지방 호족과 더불어 고려 귀족의 반열에 오른 사람 중 하나이지요.

 

최치원의 경우에서 보듯 신라 6두품 출신 지식인들은 다분히 지나적인 세계관에 기울어진 모습을 적지 않이 보여주고 있지요.

 

최승로도 이러한 경향에서 유난한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 조차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기층문화의 전통이 여전히 뿌리 깊었다는 한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관념적인 제도야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더라도 물질문명에 있어서는 굳이 지나화를 지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만사를 주자에 맞추고 심지어 주자가 앓았다는 눈병까지 닮고자 했던 어느 왕조의 정치기술자와는 분명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려의 정치제도를 가만 살펴보면 거기에서조차 은근히, 아니 어떤 면에서는 노골적으로 기층문화적 '요소'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도병마사(都兵馬使)와 식목도감()이라 하는 것이지요.

 

도병마사라는 말은 물론 지나에서 차용한 말이기는 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지나에서의 도병마사는 '벼슬' 이름입니다.

 

한데 고려에서의 도병마사는 국방회의기구()를 의미하지요.

 

고려시대 이전의 어느 왕조인들 아니 그렇겠습니까만 고려의 경우도 지나식 칭호는 그대로 놓아두고 알맹이를 바꾼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식목도감의 경우는 지나적 세계관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는 한 술 더 뜹니다.

 

식목이라는 말과 도감이라는 말이야 물론 지나측 자료에도 보이는 것이지만 식목도감이라는 기구나 그러한 말 자체는 아예 전례가 없다시피 하지요.

 

참고로 식목도감은 고려시대 법제() 및 격식() 제정에 관한 문제를 의논한 재신()과 추신()의 회의기관입니다.

 

다들 아시는 대로 고려의 관제는 후삼국 통일 후 태봉과 신라의 관제를 병용하였는데, 당(唐)·송(宋)나라와 고려의 독자적인 제도도 섞여 있었지요.

 

이러한 관제는 6대 성종 때에 정비되기 시작하여 문종에 이르러 일단 완성되었습니다.

 

체제의 특징을 보면 2성 6부는 당제(唐制)에 가깝고, 중추원(中樞院)과 삼사(三司)는 송제(宋制)를 채용한 것이며, 도병마사(都兵馬使)와 식목도감(式目都監)은 고려 자체의 필요성에서 생긴 것입니다.

 

매사가 지나화의 연속일 듯한 지배층조차도 현실적 사정을 무시할 처지는 못 되었다는 한 방증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고려 귀족들이 민중지향적이었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단지 시대에 상관 없이 '지나화'를 구태여 강요 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이겠지요.

 

어떻든지 기층문화의 생명력은 여기까지도 미쳤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역사문의 김 모가 썼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