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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물전사 작성시간11.12.25 사극으로 만들어진다면 고려판 수양대군인 숙종의 찬탈로부터 삼국사기 편찬까지의 고려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시대를 관통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겠죠. 요새 사극은 뭐 판타지야 약과인데 척준경도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기는 식은죽 먹기입니다. 조만간 척준경이라는 제목으로 분명 사극 하나 뽑아낼겁니다. 더구나 세계사에서 기록상 최고의 무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니 여러모로 매력적인 소재인 것인것은 분명합니다. 척준경의 격투씬이나 전투씬을 아킬레스급으로만 묘사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겠죠. ㅋ 그런데 진짜 세계사에서 정식으로 인정되는 사서 중 척준경만한 무용을 보인 인물이 있기나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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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다물전사 작성시간11.12.25 글쎄요...척준경의 행실이 꼭 나쁘다고 볼 적극적인 증거도 없지요. 뭐 승자가 역사를 쓰는거니...이자겸이 좀 멍청한 척준경을 같이 끌어들여서 같이 역적이 되었는지도 모르고...척준경 입장에선 왕이 자기 아우와 아들을 죽였으니 눈이 뒤집힐만도 하지요. 게다가 이자겸과는 사돈지간이니...그럼에도 나중에 마음을 돌려 이자겸에게 칼을 겨눈것도 대단한 충성심의 발로라고 생각합니다만...아니면 뭐 정세가 불리해져 말을 갈아탄건지 ㅋ근데 싸움을 잘하는것도 어느 정도 머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쨌든 흥미로운 인물인것만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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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都巡檢使 楊規 작성시간11.12.25 제가 보기엔 척준경은 정치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냥 장수에만 머물렀다면 마땅히 칭송을 받았을 위인인데 이자겸과 엮이며 정치에 개입함으로써 그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가 동북9성을 개척한 공로는 있지만 이자겸이 일으킨 난에 가담하며 궁궐을 불태운 과도 있으니 이 점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말년에 인종의 명을 받아 이자겸을 제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서경귀족들이 자신을 탄핵할 때 순순히 왕명을 따른걸 보면 역적은 아니라고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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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사인 작성시간11.12.25 제 기억상으로는 척준경이 재조명되기 시작된 것은 임용한선생님의 『전쟁과 역사 2』에서부터 인거 같습니다. 그 책에서 척준경에 대해서 이자겸의 난에 가담하였던 반란자가 아닌, 오직 무인으로서 평가를 하였고, 그가 정치적으로 휘말리게 된 점에 대해서는 싸움밖에 못하는 순진한 사람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그렇지요. 그 책이 인기를 끌면서 이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척준경에 대해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번 기회가 된다면 그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척준경은 물론이거니와 고려시대 전쟁사에 대해서도 흥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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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리운길 작성시간11.12.26 글세요...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한 시대의 초기 말기때는 동적인 사건들이 발생하여..흔히 말하는 사회신분상 미천한.가난한 사람들의 사회 성공이 있지만...한 시대의 중기..특히 고려시대, 조선시대는 정적인 사회였고..그 시대에서 그 사회의 중기는 사회시스템이 거의 제도화 되었고..사회적으로 어떠한 배경없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흔하지 않을뿐더러..척준경처럼 고려의 문인시대와 무인시대의 중간점에 있는 인물은..흔하지 않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의 평가를 고려해볼때..영웅으로..변모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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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2.01.01 앞에서 스토리텔러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척준경에 대한 관심은 주로 그의 '무용담' 에 치우져 있습니다. 사서에 기록된 윤관의 동북9성 정벌시의 그의 행적은 인간같지 않은 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그과 과연 존경해야 할 위인인가에 대해서 긍정적 답이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척준경의 일대기를 여진정벌시기를 1기로 보고, 이후 중앙 정계에서 정치가로서 활동하던 시기를 2기로 본다면 요즘에 그를 찬양(?)하는 목소리는 주로 1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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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2.01.01 아래는 고려사의 윤관열전에 나오는 척준경의 무용담 중 일부입니다. (척준경 열전보다 윤관열전에 척준경 기사가 더 자세히 나온다는...)
- 석성 전투: 여진족의 저항이 거세어 고려군이 진공할 수 없자 척준경이 갑옷과 방패를 갖고 석성 아래로 진격하여 여진족 추장을 참살하자 고려군이 진격하여 승리
- 가한촌 병목 전투: 윤관 등이 데리고 간 8천 군사가 여진족의 매복에 걸려 십여명만 남을 정도로 궤멸되고 윤관이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척준경이 10여명을 데리고 선발대로서 구원하러 가서 여진족을 기습하고 뒤이어 고려군 본대가 급습하여 윤관 구출 성공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2.01.01 그런데 여진정벌시 척준경이 보이는 많은 행태들은 다분히 '협객' 들이 보이는 의리 중심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자신을 인정해 준 윤관을 위해 목숨을 건다거나, 국가의 녹을 받았으니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식의 발언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자신을 만류하는 동생에게 척준경은 '나는 국가를 위해 의리상 목숨을 걸겠으니 너는 돌아가 아버지를 봉양하라' 면서 효보다 충을 앞세우는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척준경이 여진정벌전이 끝날 무렵에 바로 사망하였다면 이후의 정치적 행로 비난받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