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그림은 1780 년 연암이 열하를 다녀온 노정을 추정한 지도입니다.
그림 - <연행록연구총서에 실린 연암 박지원의 연행로 추정 지도- 손용택>
당시 후조선 한양에서 청나라 경사까지는 대략 3100 리였는데, 연암은 지나온 길에 대한 상세한
리수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656 년 후조선 효종의 친동생인 인평대군의 <연도기행>에는 한양에서 경사까지의 로정을 일기식으로 기록하여 남겼고,
매일의 로정을 지명과 리수를 기록하여 남겼습니다.
문제는
귀로의 기록입니다.
1656 년 10월 29일 청나라 경사를 떠나는데,
11월 3일 옥전현 도착, 경사에서 270 리
11월 4일 풍윤현 도착, 경사에서 350 리
11월 6일 영평부 도착, 경사에서 510 리, 난수의 3 류를 모두 출교로 건넜다.
11월 8일 산해관 도착, 경사에서 680 리, 누밖의 호탕한 물결은 원래 발해가 아니고 구하가 둘러빠진 곳이다.
11월 16일 광녕위 도착, 경사에서 1115 리
11월19일 오시에 얼음 위로 삼차하를 건너고 저녁에 우가장에 도착, 경사에서 1390 리
자, 그렇다면
지금의 북경에서 1390 리 떨어져 있다는 삼차하와 우가장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요?
지금의 요하이며 해성 부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