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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근대 토론방

송도기이에서 우왕과 창왕에 관한 부분

작성자산중호걸|작성시간06.11.17|조회수161 목록 댓글 0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은 우왕과 창왕을 폐위할때 내세웠던 명분이 그들은 공민왕의 자손이 아닌 신돈의 자식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송도기이에 이와 관련된 부분이 있어 올립니다.

 

고려의 우(禑)ㆍ창(昌) 부자를 왕씨(王氏)라고 결정지어 말한 것은 관동(關東)의 높은 선비 원천석(元天錫)이 지은 야사(野史)에 자세히 기록되었고,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이 풍유한 비사(秘史)에 신빙성있게 전한다. 최비(崔妃)가 용의 비늘을 보고 울었으며, 목은(牧隱)은 우(禑)의 어머니를 사당에서 내쫓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 그 밖에도 전기(傳記)에 나온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니, 우(禑)는 실상 공민왕(恭愍王)의 아들인 것이 의심없다. 고려의 운수가 장차 다 되자 왕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장수와 정승은 패를 갈라 각각 자기들의 사적인 군사를 기르게 되니, 국가의 형세가 바야흐로 위태로웠다. 이럴 때 저 조준(趙浚)ㆍ정도전(鄭道傳)의 무리가 부귀(富貴)에 급급하여 왕을 바꾸어 놓을 음모를 세우게 되었다. 그들은 생각하기에, ‘5백 년이나 내려온 종사(宗社)이므로 계통이 이미 오래 되었으니 만일 비상(非常)한 악을 군부(君父)에게 가해서 백성들의 듣고 보는 것을 현혹시켜 놓지 않는다면,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처음에는 애매한 말을 퍼뜨리다가 드디어는 성(姓)을 바꾸어 놓는 추한 일을 이루어, 마침내 20년 동안이나 신하로서 섬긴 임금 부자를 머리를 나란히 하고 죽게 했으니, 사람의 도리가 없어졌다 하겠다.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우리 태조 대왕(太祖大王)은 신무(神武)하심이 세상에 드날리고 동서로 정벌하여 그 공이 삼한(三韓)을 덮었다. 그리하여 의리를 주창하여 회군(回軍)함으로써 나라를 다시 만들었으나, 여전히 당시의 일이 어려움이 많아 ‘이 나라가 언제 망할까’ 하는 탄식이 한창 극에 달했었다. 이러한 때에 온 나라가 추대한 것은 천명이 돌아간 것이지, 어찌 사람의 계획으로 된 것이겠는가? 예로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하필 그 임금의 성을 바꾼 뒤에라야 혁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옛날에 진황(秦皇)의 성을 여(呂)로 바꾸고 진제(晉帝)의 성을 우(牛)로 바꿨는데도 진(秦) 나라와 진(晉) 나라가 망할 때까지 누구 한 사람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으니, 어찌 신하된 분의(分義)로서 분명하지 못한 일을 가지고 그 임금을 더럽힐 수 없어서가 아니겠는가? 후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진(呂秦)ㆍ우진(牛晉)의 설(說)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 우(禑)와 창(昌)의 녹(祿)을 먹은 사람이 도리어 당일에 임금을 모함한단 말인가? 고려 말년에 변절한 무리들은 족히 천고(千古)의 분격을 일으키게 한다. 간사한 의논이 한 번 일어나자 지금까지도 이것을 의심하기도 하고 믿기도 하여 후세에 와서는 문자에 반드시 신우(辛禑)ㆍ신창(辛昌)이니, 양자(養子)니 가자(假子)니 하여 잘못을 답습하고 거짓을 전하여 다시 의심을 하지 않으니, 만일 우(禑)나 창(昌)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어찌 무궁한 원통함을 갖지 않겠는가? 근래에 상국(相國) 윤근수(尹根壽)가 일찍이 말하기를,


“우(禑)는 왕씨(王氏)인데 간신들이 다른 성을 뒤집어 씌웠다.”

했으며, 문정공(文貞公) 신흠(申欽)의 문집에도 말하기를,


“목은(牧隱)이 마땅히 전왕(前王)의 아들을 세워야 한다고 한 것은 진실로 대신이 할 일이다.”

했다. 여기에 전왕(前王)이란 우(禑)의 아들을 가리킨 것이니, 곧 창(昌)을 말한 것이다. 두 공은 모두 문장이 훌륭한 분들로서 지금과 옛날 글을 널리 보았으니, 반드시 상고하고 본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을 마땅히 실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일찍이 《고려사(高麗史)》를 보고나서 항상 분해하고 탄식하는 마음을 품었으므로 이제 내 뜻을 책 끝에 붙여서 능히 분별할 군자를 기다리는 바이다.

 

이 부분은 조금 고개가 갸우뚱 거려졌습니다. 아무리 정도전이 태종의 반대편에 서다가 죽었다고는 해도 조선 건국의 주역인데 이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의 자리에서 보면 천고의 분격을 일으키는 변절한 무리일지라도 조선의 입장에서는 창업의 공신인데 그들이 부귀에 급급한 간신이라면 그들과 함께 했던 이성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칫하면 조선건국의 정당성 까지도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을 이덕형은 왜 쓴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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