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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건축물이 대부분 단층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성자현무| 작성시간07.10.27| 조회수1751|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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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내가 풍질(風疾)을 얻은 까닭을 경은 반드시 알지 못할 것이다. 저번에 경복궁에 있을 적에 그때가 바로 한창 더운 여름철이었는데, 한낮이 되어 잠시 2층에 올라가서 창문 앞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더니, 갑자기 두 어깨 사이가 찌르는 듯이 아팠는데 이튿날에는 다시 회복되었더니, 4, 5일을 지나서 또 찌르는 듯이 아프고 밤을 지나매 약간 부었는데, 이 뒤로부터는 때 없이 발작하여 혹 2, 3일을 지나고, 혹 6, 7일을 거르기도 하여 지금까지 끊이지 아니하여 드디어 묵은병[宿疾]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3년(1431년)-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궁궐이지만 참고로 올려봅니다. 잠을 잤다고 했으니까 통층구조는 아니었던 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소요자 작성시간07.10.30 그런데 왜 자꾸 질문의 요지완 상관없는 조선시대를 계속 언급하시는 건가요?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제가 고려시대에 말하는 누각은 도시의 경관을 구성하는 누각을 말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사치나 번성을 표현할 때에 누각이 자주 사용되죠. 이것을 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소요자 작성시간07.10.30 조선시대에도 도시의 경관을 구성하는 누각은 있습니다. 남원의 광한루는 어떤가요? 그리고 밀양의 영남루도 유명하죠. 고려시대의 누각은 사치나 번성을 표현할 때 누각이 자주 사용된다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상대적으로 문화수준이 떨어지는 베트남도 수도의 중심에는 중층건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19세기 초반에 건설한 수도 '훼(hue)'는 면적이 4㎢ 남짓에 불과한 곳이고 베트남은 그리 발달한 곳도 아닙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소요자 작성시간07.10.30 전 베트남을 말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삼국과 고려에 대해 말을 하는겁니다.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조선시대도 500년이 지속된 나라입니다. 전시대를 동일한 문화로 있었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초기도 후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도 건축에 관한 것이나 도시의 경관들이 흔히 떠올리는 조선의 이미지인 조선시대 말기와는 다르다는 뜻이죠.
  • 답댓글 작성자 소요자 작성시간07.10.30 음...질문의 요지를 이해못하시는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높은 건물들도 많았고 2층 3층까지 가옥이 엄연히 존재했었고 ]란 문장에 대한 근거를 묻는게 질문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건물을 묻고 있는게 아닙니다.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명나라의 사신으로 왔던 동월이 쓴 조선부에서도(1488년의 조선을 기록) 옛 백제지역의 집은 사다리를 타고 가야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평양을 그린 월야선유도에서 평양 바깥에 고상식 주거지가 보이지만 예외적인 것임을 감안한다면 초기 조선의 모습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의의 내용이었던 건축에 관해서도 관계가 있는 것들이구요.
  • 답댓글 작성자 소요자 작성시간07.10.30 바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다시 한번 질문의 요지를 파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공경들의 저택이 10리에 뻗쳤는데, 엄청난 큰 누각은 봉황이 춤추는 듯 이무기가 기어 오르듯, 서늘한 마루와 따스한 방이 즐비하게 갖춰 있고 금벽이 휘황하며 단청이 늘어섰네, 비단으로 기둥 싸고 채전으로 땅을 깔고, 온갖 진기한 나무와 이름난 화초들, 봄의 꽃과 여름 열매, 푸른 숲에 붉은 송이, 그윽한 향내 서늘한 그늘이 한껏 곱고 아름다움을 뽐내네 -삼도부-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고려시대 권력가였던 최우도 위세를 표현할 때에 1000명이 앉을 수 있고, 100대의 수레가 놓일 수 있던 누각의 존재를 기록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소요자 작성시간07.10.30 더 이상 말을 하면 서로가 피곤하겠군요. 결국 님은 질문에 대한 답을 하실 수 없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자연스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개경의 면적은 24.7㎢입니다. 로마의 면적은 13.86㎢입니다. 더군다나 개경은 나성 바깥으로도 도시가 확장되었다고 추정하지만 로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만 그것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무런 기반도 없이 황룡사 목탑을 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삼국통일 이전이었던 663년에 신라가 건설한 창고 건물이었던 장창이 초석 기준으로 108m*23m입니다.
  • 작성자 dsagd 작성시간07.10.30 거대한 목탑이 있는 수많은 절들을 지은 것이 삼국시대부터입니다. 그 당시에 이미 여러 대규모 도시들이 건설되었습니다. 사람이 밀집되고 인구밀도가 높아진다면 건물의 높이는 당연히 높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선입견이라고 여겨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소요자 작성시간07.10.30 선입견이란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으시군요. 선입견이란 어떤 대상에 대해 근거도 없이 미리 어떤 결론을 내세우는걸 말하는 겁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람이 밀집되면 건물이 당연히 높아졌을거고 그러니 삼국과 고려시대에 복층건물이 많았을거란 결론을 내리는 님이야말로 바로 선입견에 빠져있는 것이죠. 전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7.11.01 음....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잠시 끼어들겠습니다. dsagd 님의 이야기 중 '사람이 밀집되고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건물의 높이는 당연히 높아진다' 라는 말에 대해 반론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서울은 10~30만 정도가 밀집해 살던 대도시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이는데(물론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인구가 밀집하자 서울은 건물 높이를 높이는 수직 방향으로 발전하기보다는 4대문과 도성의 경계를 넘어서 인근 지역으로 도시가 확장되는 수평 방향으로 발전해 버렸습니다. 최소한 전통사회에서는 높은 인구밀도와 인구집중이 반드시 건물 높이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볼 순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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