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군이 백제 멸망시에 동원한 함선에 관한 의문입니다.

작성자★明治好太王★|작성시간06.08.04|조회수259 목록 댓글 0

삼국사기 태종 무열왕

3월에 당고종이 좌무위대장군 소정방으로 신구도행군대총관을 삼고 김인문으로 부대총관을 삼아, 좌효위장군 유백영 등 수륙군 13만명을 거느리고 가서 백제를 치게 하는 동시에 왕(무열왕)으로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응원하게 하였다.

소정방은 협주(莢州)에서 출발하여 1,000리를 잇는 축로(舳艫)를 거느리고동쪽을 향하여 물길을 따라서내려왔다.

21일에 왕이 태자 법민과 으로 병선 100척을 이끌고 덕물도에서 소정방을 맞게 하였다.

* 축로(舳艫): 배의 고물과 이물, 선미(船尾)와 선수(船首)

* 협주(莢州): 지금의 산동성 액현(掖縣)

+ 덕물도(德物島): 지금의 경기만 밖의 덕적도

 

삼국유사

고종이 좌무위대장군 형국공 소정방을 신구도 행군총관으로 삼아, 죄위장군 인원 유백영과 좌무위장군 풍사귀와 좌무위장군 방효공 등을 거느리고 13만을 통솔해 피게 했다.(이 지방의 기록에는 '군사가 12만 2천 7백 11인이며 배가 1천 9백척이라고 하나 당사에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신라왕 춘추는 우이도행군총관을 삼아 그 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함께 힘을 모으게 하였다.

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에서 바다를 건너 신라 서쪽 덕물도에 이르렀다.

*성산이 어디인지 모르겠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당의 소정방은 산동의 협주(혹은 성산)에서 13만 대군(혹은 12만 2천 7백11명)을 1900척의 함선에 태우고 경기만 앞바다의 섬인 덕물도에서 신라군과 합류합니다.

참고로 수나라가 사용한 황룡이라는 배는 대게 100명을 태울 수 있었으므로, 13만 병력과 군량, 장비를 태운 함선의 숫자로 1900척은 실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김용만선생님께서는 저서에 적으셨습니다.(길이는 100척, 너비 50척이나 되는 비교적 큰 배임.)

 

그런데 의문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당나라 때의 산동에 협주(혹은 성산)이라는 곳은 과연 1900척이나 되는 함선이 한꺼번에 집항할 수 있는 항구 존재여부와 소정방의 대군과 신라군이 합류했다는 덕물도는 즉 경기만 일대에 1900척이나 되는 대규모의 함선을 정박시킬 수 있는 곳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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