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여, 서부여, 남부여, 북부여 정리
자, 동서남북 부여를 한번 살펴볼까요. 북부여는 해모수가 건국한 게 북부여예요. 왜 북부여라 그랬습니까? 남쪽에는 그 당시 대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북부여라고 했습니다. 남쪽에는 대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오가가 공화정을 펼치고 47대 고열가 단군이 다스리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북부여라고 했고,
그 북부여가 그 뒤에 쭉 내려오다가 고두막한이 졸본에서 일어나면서 고두막한이 BC 108년~87년 까지를 졸본부여 또는 동명부여라고 했다. 그리고 북부여를 5대 단군으로 계승해서 북부여라고 했다.
그런데 해우루의 동생 해부루가 통하현 분릉으로 도망을 가서 동부여라고 했다. 그것을 가섭원 부여라고도 한다. 그것은 BC 87년~ AD 22년까지 지속이 되었다. AD 22년에 망할 때 대소의 종제에게 성을 낙씨로 하사해서 연나부 땅에 봉해서 그것을 연나부부여라 한다. 연나부 부여는 AD 22년~ 494년까지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이 되죠. 낙씨부여라고도 한다. 성이 낙씨기 때문에, 등에 낙문이 있었다 그래요. 연나부부여 또는 서쪽에 있어서 서부여라고 한다.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가 있는데 남부여는 성왕이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를 하고 국호를 일시적으로 남부여라고 했어요. 부여라고 호칭을 한 것은 그 원뿌리가 온조왕인데 온조의 아버지가 고주몽 성제고 고주몽 성제의 원뿌리가 북부여이기 때문에 부여의 뿌리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남쪽에 있는 부여라 해서 남부여라고 호칭을 했던 것입니다.
부여를 정확하게 개념을 잡을 수 있죠? 대부여 원시부여부터.
2004년 12월 증산도 대학교 대전대 윤창렬 교수 환단고기 강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