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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단인 작성시간07.03.03 400년대와 고려시대 즈음에는 아무래도 상황이 같을 수가 없지요. 삼국시대 당시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주자가 계속 이주하는 것을 보면 경지면적에 여유가 있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리고 식량 수입에 관해서는 꼭 일본열도만 대상이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남조 국가들과 교역을 해서 대량으로 식량수입을 할 개연성도 있구요. 때문에 경지 면적 때문에 백제의 호구가 생각보다는 적고 그 때문에 원정병력 역시 보낼 수 없을 정도로 군대가 빈약하다는 설명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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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단인 작성시간07.03.03 또한 이 토론과는 상관없지만 토지 소유 관계가 어떻는가에 따라 경지면적에 상관없이 부양 인원의 차이가 결정됩니다. 농노제나 노예제의 경우 영주나 노예 주인은 이들이 먹고 살수 있는 최소한의 양을 제외하고 잉여생산물로서 식량부족지역에 팔아먹을 수가 있습니다. 농업 분화가 이뤄지지 않은 단계의 자영농의 경우는 자신이 먹을 분량을 생산하고 남는 잉여분을 팔지만 이 경우 식사량이 상대적으로 넉넉하기 때문에 잉여분도 적고 상대적으로 집약농업도 아니라서 단위면적당 생산량 차이가 발생합니다. 때문에 경지면적을 갖고(그것도 추정에 의거한) 부양인원을 계산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실제와 차이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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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부처 작성시간07.03.03 shaw님, 역사란 학문은 결국 기록을 원칙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삼국유사와 평제비에 다른 기록이 있지만 대다수 사서는 76만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76만호를 원칙으로 예외를 입증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원칙을 뒤집을 만한 예외적인 사유의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이상 76만호는 정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백제가 조선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생산력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수단을 통해서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이상 님이 말씀하시는 예외는 원칙을 뒤집을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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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단인 작성시간07.03.04 백제가 유럽식 농노제나 노예제 사회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이 토론과 상관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앞에 붙였지요. 단지 백제의 토지 소유관게나 생산방식의 양상이 어떠했는지 아직까지 명확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토지 소유관계에 따라 식량수급은 얼마든지 변동이 가능하다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 농노제와 노예제를 말했던 겁니다. 동양권에서는 농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원을 경영하는 대토지를 소유자가 가복을 통해 경작하거나(노예로 해석하거나 혹은 신분상 노예라고 보지 않는 해석이 난무하지만) 외부 빈농에게 소작을 주고 막대한 소작료를 받아먹는 식의 토지소유관계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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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단인 작성시간07.03.04 부족한 식량 수급을 남조에서만 동원한다고 한 적이 없을텐데요. 저는 경로는 다양할 수 있고 남조는 그 중 하나였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남조와 교역할 공우는 황해 횡단항로가 아니라 황해 사단항로입니다. (둘의 차이는 구분하실거라 생각하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오해없으시라는 의미에서 사족을 답니다.) 그리고 shaw님의 대체적인 사관은 역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한다는 진보사관에 가깝다고 생각되는데 맞는지요? 하지만 기술, 의식의 발전은 시기가 지날 수록 발전하는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퇴보도 하고 단절 되는 예는 많습니다. 백제가 조선보다 항해술, 조선술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