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한단고기의 흉노 관련 기록들

작성자武寧王|작성시간07.03.31|조회수299 목록 댓글 4

단군세기

 

30세 단군 내휴 (재위 35년)

- 병진 5년(기원전 905년)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

 

북부여기 상

 

시조 단군 해모수 (재위 45년)

 

- 병오 45년(기원전 195) 연나라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무리인 위만은 우리에게 명망을 요구했으나 단제께서는 이를 허락치 않으셨다. 단제께서는 병으로 인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번조선의 왕 기준이 크게 실수하여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 하 운장을 떼어서 위만에게 봉해주었다. 이 해 겨울에 단제께선 붕어하시고 웅심산 동쪽 기슭에 장사지내니 태자인 모수리가 즉위하였다.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

 

누사가 죽으니 을미년에 아들 이벌이 즉위하였다. 병신년에 한수 사람 왕문이 이두법을 지어 바치니 천왕께서 좋다고 하시며 삼한에 모두 칙서를 내려 시행하였다. 기미년에 상장 고력을 파견, 회군과 합쳐 주나라를 치게하였다. 이벌이 죽으니 신유년에 아들 아륵이 즉위했다. 병인년 주나라의 이공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아륵이 죽이니 을축년에 아들 마휴가 즉위하였고, 그가 죽은 뒤 병진년에 아들 다두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기축년에 아들 나이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기미년에 아들 차음이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을사년에 아들 불리가 즉위하였고, 그도 죽고 을사년에는 아들 여을이 즉위하였다. 그가 죽으니 갑술년에 엄루가 즉위했다. 무인년 흉노가 번한에 사신을 파견하여 천왕을 알현할 것을 청하여 신하로 봉함을 받고 공물을 바치고 돌아갔다. 엄루가 죽으니 아들 감위가 즉위했고, 그가 죽으니 무신년에 아들 술리가 즉위했다. 그가 죽으니 무오년에 아들 아갑이 즉위했다. 경오년에 천왕은 사신 고유를 파견하시어 먼저 한웅, 치우, 단군왕검의 삼조의 상을 나누어 주시더니 이를 관가에서 모시게 하였다. 

 

ps .. 흉노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전국시대 중기인 기원전 318년 한, 위, 조, 연 제의 다섯 나라가 연합하여 진(秦)을 공격했을 때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 때 흉노는 5개국 측에 호응하여 싸웠습니다만 패주하여 북으로 갔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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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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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KEN SHAMROCK | 작성시간 07.03.31 그렇다면 한단고기의 시각에서 본다면 , 환국과 배달국까지는 통일된 나라였다가 , 조선과 흉노로 갈라진 것인가요? 그리고 , 조선상고사를 저술한 단재 신채호 선생도 환국 -> 배달국 -> 조선으로 역사를 서술하셨나요? 혹시 , 조선상고사에는 흉노에 대한 기록이 있나요?
  • 답댓글 작성자武寧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3.31 제가 본 바로는 한단고기에서는 흉노하고 조선을 엄밀히 구분하는 것 같았습니다만 .. 제가 조선상고사가 없어서 조선상고사 부분까지는 어떻게 말씀을 못드리겠네요..
  • 작성자이즈러브 | 작성시간 07.03.31 다르게 보셨습니다. 근원쪽으로는 같은 알타이어족으로 보셨지만, 민족적 개념으로는 이민족으로 보셨습니다. "우리의 옛 말로써 참고하면, 왕성을 해라고 함은 태양에서 뜻을 취한 것이고, 왕호를 불구래라 함은 태양의 빛에서 뜻을 취한 것이며, 천국을 환국이라 함은 광명에서 뜻을 취한 것이니, --- 중 략 --- 지금의 백두산을 해와 달이 드나드는 곳, 곧 광명신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알아 그 부근의 토지를 조선이라 일컬으니, 조선도 옛날의 광명이라는 뜻이다." <-- 출처 일신서적출판사 (조선상고사)
  • 작성자강감찬 | 작성시간 07.04.03 퍼갈께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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