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한단인작성시간07.04.14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참고가 될 듯 하군요. 올라온 글을 편집해서 논문 파일로 카페에 올려두겠습니다. 아,,읽다가 한가지 의아한게 있어서 그런데,, 공문서를 개인 무덤에 넣는 경우가 다른 곳에도 있나요? 낙랑지역 말고 중국에서 공문서를 부장품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작성자역사님작성시간07.04.14
님은 낙랑지역이 한반도 북부를 다스리던 낙랑군이라는 가정으로서의 낙랑 토성 치소의 문제점을 이해해야 할것같군요. 왜 그래서 종래의 오늘날에서는 단순 무역 중계소니 하는 식의 실제 명목상의 그런 부분으로 나오지도 않는 주장으로까지 축소 이야기되어 지는지에 대한 공부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이글은 제가 요즘 바쁜 관계로 시간이 나며 추후 올리겠습니다. 평양 지역의 낙랑을 400년 존속의 낙랑군으로 단순 대입시키기에는 문제점이 분명하다는 점도 살펴 봐야 할것입니다.
작성자大欽茂작성시간07.04.14
고구려가 복속시킨 평안도지역의 낙랑국을 후한 광무제가 복속시킨 이후에 요서지역에 있었던 전한의 낙랑군의 행정문서들을 평양 낙랑군으로 옮겨온 결과가 아닐까요? 그러니깐 목간은 전한의 요서 낙랑군에서 인구조사한 것을 평양 낙랑군으로 가져온 결과 후에 매장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작성자신단수작성시간07.04.14
제가 알기론 한나라공문서로 쓰는 죽간은 각 용도마다 크기가 정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저 죽간은 어떤 용도로 쓰던 공문서죽간인지 전혀 정보가 없군요 게다가 공문서를 개인부장품으로 매장했다라....... 제가 보기엔 저 죽간이 공문서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즉 옛 공문서를 배낀 개인 자료용 죽간일지도 모르죠
답댓글작성자소요자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7.04.15
아...그렇군요. 확실히 출처를 표기안한건 저의 부주의입니다. 그렇지만 내용게재는 자료가 공개자료실에 있고 누구나 다운해서 볼 수 있게 한 점등으로 볼 때 큰 결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출처는 곧 게재하겠습니다. ^^
작성자소요자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7.04.15
위의 글의 출처는 한국고대사학회 공개자료실입니다. 거기 한글파일로 올려져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누구나 받아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주소는 http://www.koreaancienthistory.net/modules/bbs/index.php?code=pds&mode=view&id=11&page=&___M_ID=86&sfield=&sword=
작성자김 태환작성시간07.04.15
북쪽 학자분들의 자료를 참고하신 것 같은데 북한자료라고 난리가 나지 않는게 이제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남북한의 할발한 공동 연구와 역사 인식의 합일점을 찾는 일이 보다 많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자료 소개 감사드립니다.
작성자밸틴작성시간07.04.22
공문서를 무덤에 부장한 경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비록 진나라 시기 이긴 하지만 호북성 운몽현에서 발견된 진나라 현급 관리였던 '희'라는 사람의 무덤에서 진나라 법-진율에 대한 죽간 600점을 비롯 무려 1100점이나 되는 죽간이 출토 됬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