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에게는 부루(夫婁)외에도 부소(夫蘇), 부우(夫虞), 부여(夫餘)라는 아들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의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사서(?)가 무엇인지 궁금하며 원문도 보고 싶습니다.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작성시간 09.03.11 그 외에도 마취약을 추출하는 석산石蒜(수선화과의 식물) 등의 한국 자생 알뿌리 식물도 '蒜' 글자를 써서 표기하는 예도 있는 듯하니, 마늘 도입 이전에 蒜 이라 불리는 식물이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특히 마늘의 경우에는 종래의 蒜 과 구분하여 따로이 '대산'大蒜 이라 불렸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단군신화> 에 마늘 도입 이전에 蒜 이라 불리는 어떤 자생의 산나물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상할 게 없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sorgai 작성시간 09.03.11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여전히 국민들은 마늘로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이제까지 왜 단군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계몽하지 않는지 궁금하군요. 역사에서 1900년 중에서 860년의 오차가 나는 기록을 이해하라는 건 심한 듯하고...
-
답댓글 작성자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3.11 sorgai님/ 세종실록이나 동국통감, 삼국사절요는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이고, 동국통감과 삼국사절요는 시작부터 단군조선이 나옵니다만...
-
답댓글 작성자sorgai 작성시간 09.03.11 단군이 나오는 것을 찾아보니 그렇다는 것인데 뭐 다 부질없는 일이긴 하죠. 어차피 단군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의 역사와 관련이 있느냐의 여부인데 정작 단군에 가까운 시기로 올라갈수록 단군은 사라지고 만다는게 문제니까요. 단군에 기록된 시기의 왕조는 정작 단군을 몰랐다고 밖에 할 수 없으니...한편의 개그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들은 가장 이른시기의 단군은 '古平檀君'으로 泰康2년 즉 AD 280년경의 벽돌파편이라던가...고평지역의 제후라는 것은 증명되었다지만 우리가 아는 단군과는 2천년 이상의 시차가 있을 뿐 아니라, 한민족의 나라도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
작성자신농 작성시간 09.03.09 흥미롭네요... 좋은 정보 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