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수말갈에 대해서 고려 조선시대 여진족의 전신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있는데 발해멸망후 대대적으로 남만주 간도일대로 남하했다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흑수말갈이라도 세부적으로 따지면 여러 세력 여러 부족들이 병립했을것이 확실한터, 제 생각에는 고구려 후기 북부여를 병합하고 흑룡강성까지 고구려 세력권이 확장되면서부터 흑수말갈의 일부분은 서서히 고구려 지배하에서 남하해서 예맥계와 습합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전체가 다 그런것은 아니고 고구려에 동화된 흑수말갈과 그렇지 않고 독립성을 이룬 흑수말갈이 병립했슬 것이고 발해시대에 와서도 일부 흑수말갈은 지속적으로 발해 고구려계 사람과 습합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얼마전 흑룡강 중류에 발해유적이 발견되었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지역이 발해영토일 경우 흑수말갈의 상당수가 발해민으로 흡수동화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고려시대 이후 여진족에 대해서는 그에 앞서 이미 흑수말갈의 상당부분이 예맥계 종족(발해유민)과 습합을 이루었슬것이기에 딱히 여진족이 흑수말갈의 후예냐 발해 예맥계의 후예냐를 따질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여진부족들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북쪽 송화강 하류 및 흑룡강성 일대거주민들은 순수 흑수말갈정체성을 유지한 사람들의 후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수 있죠.
허나 금청건국세력의 주류인 여진인들은 아무래도 예맥계종족이 주가 이룰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분명 금청건국기반에는 발해문명에서 배우고 기반을 닦은 여력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