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성법맨작성시간09.08.29
고구려 패망 시기만 해도, 아마, '민족은 달라도 우리는 태왕의 신하로써 같은 고구려인'이라는 개념이 모든 고구려 인들에게 있었을 겁니다. 또한 대걸(걸)중상의 위치가 적어도 사극 이상은 되어야 '후고구려'로써의 국가 부흥운동을 이끌 수 있습니다. 훨씬 지위가 높았을 터인 대형 검모잠도 한성에서 부흥운동을 했으니까요.
답댓글작성자聖君 仁宗大王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9.08.30
당에서 걸걸중상을 진국공 걸사비우를 허국공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지요..걸걸중상이 존재감이 없었다면 당에서 그를 공에 봉할 이유가 없지요..대조영은 기록상으로도 걸걸중상이 죽은 후 대업을 계승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