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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존재하던 시기 대중상의 지위는?

작성자聖君 仁宗大王| 작성시간09.08.29| 조회수32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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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밀리터리 작성시간09.08.29 사극정도의 직위에서 시작했을 것이라 봅니다. 최소한 그정도 위치가 아니고서는 조직리더로서 그것도 고구려인 전체 대표를 맡는다는건 어렵죠.
  • 답댓글 작성자 聖君 仁宗大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8.29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발해의 인구 대부분이 말갈이었다면 부흥운동에 참여한 사람의 대부분도 말갈인가요? 지배층이 고구려인이라고 하던데..
  • 답댓글 작성자 밀리터리 작성시간09.08.29 그 말갈이 바로 고구려에 속해 있는 고구려인들로 압니다. 말갈 따로 고구려인 따로는 나중에 작성된 신당서나 구당서의 기록의 인식이 아닐까 합니다. 그때는 고려인따로 말갈인따로 봤잖습니까?
  • 작성자 성법맨 작성시간09.08.29 고구려 패망 시기만 해도, 아마, '민족은 달라도 우리는 태왕의 신하로써 같은 고구려인'이라는 개념이 모든 고구려 인들에게 있었을 겁니다. 또한 대걸(걸)중상의 위치가 적어도 사극 이상은 되어야 '후고구려'로써의 국가 부흥운동을 이끌 수 있습니다. 훨씬 지위가 높았을 터인 대형 검모잠도 한성에서 부흥운동을 했으니까요.
  • 작성자 minamjun11 작성시간09.08.30 글쎄요. 대조영은 고구려의 옛 장수라곤 하지만, 걸걸중상은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민을 이끌던 리더에 대해선 대조영에게 집중해서 살펴보는게 낫지 않나 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 신농 작성시간09.08.30 걸걸중상이 죽은 뒤 그 리더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 아들 대조영입니다. 그러니까 걸걸중상 역시도 그 지위가 어느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지요.
  • 답댓글 작성자 聖君 仁宗大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08.30 당에서 걸걸중상을 진국공 걸사비우를 허국공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지요..걸걸중상이 존재감이 없었다면 당에서 그를 공에 봉할 이유가 없지요..대조영은 기록상으로도 걸걸중상이 죽은 후 대업을 계승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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