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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설에서 말하는 북옥저와 동부여에 대한 반론(보강, 수정 함.)

작성자明治好太王| 작성시간10.08.06| 조회수45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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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낙랑후 작성시간10.08.06 발음상 비슷한면이 있다고 해서 치구루를 미구루로 단순화하고 책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발상인 것 같거든요. 오히려 북옥저를 치구루라고 했다는 것은 연해주에 있던 북옥저의 중심지가 치구루로 느껴지거든요. 동부여나 북부여는 중심지의 이동결과에 따라 고구려나 지나쪽에서 그렇게 명명한 것이 아닐까요?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8.06 사실 저도 치구루(매구)=책성으로 두는 것도 미심쩍기는 하나, 아직은 아니라고 볼 뚜렷한 증거를 찾기 어려워서요.^^; 부여 문제는 그렇게 보는 것이 현 통설이나, 위서에 의하면 두막루는 북부여의 후예라고 하고 두막루의 사신은 자신들을 북부여의 후손이며 북부여는 고려 즉 고구려에 의해 멸망당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가 자국을 중심으로 동부여, 북부여라고 명명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막루 사신의 말 속에 은연 중 북부여를 멸망시킨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이 보이는데, 이들이 고구려를 중심으로 북부여라는 말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8.06 또한 광개토태왕비문에 의하면 동부여는 북부여와는 다른 별개의 정치체제로 존재했습니다.^^
  • 작성자 김준수 작성시간10.08.06 나날이 진보가 있으시네요. 전공과는 거리가 있는 생활로 인해 뒷걸음질 치는 저와는 완연히 다른 듯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明治好太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8.06 에구... 과찬이십니다.^^; 오랜만에 한 번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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