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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이 난하 유역에 있었음을 반증하는 여덟가지 근거

작성자中國| 작성시간12.06.11| 조회수592| 댓글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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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이자나기 작성시간12.06.13 왜 동북공정을 돕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나요? 고조선과 고구려를 요서로 옮겨놓으면 어떻게 되는지요... 그래서 계속 논파된 주장이라고 겨우 한마디 한게 논할 가치가 없느니 토론의 의미니 학술이니 하는 식으로 확장 해석이 됩니까? 이게 과민반응이 아니고 무엇인지요?
  • 답댓글 작성자 원이 작성시간12.08.19 다른곳에서 논파당하는걸 봤다...
    제가 네이버부흥 카페원이었는데, 환단고기 단어를 넣은 작은 글하나를 올리니 바로 강제영구탈퇴시켜버리더군요. 몇년간 열심히 활동하고 했는데, 얼마나 기가차던지...
    토론을 아예 막아버리는것이 논파했다고 말할수 있는걸까요? 다른카페들은 잘 모르겟으나, 네이버부흥카페는 아예 입밖에도 내놓지 못하게 하는게 그 카페 규정입니다. 다른 카페에서 논리 펴봐라구요? 그런 카페에선 여기서 토론되는 얘기들이 불문율로 정해진 카페들입니다. 알고나 말씀하세요. 그런 카페에선 토론자체가 안되는 구조라구요. 그 카페들 공지사항 먼저 읽어보시길 바랄께요. 아예 토론을 원천봉쇄하는 카페들인데.. 웃음
  • 답댓글 작성자 원이 작성시간12.08.19 님이 말씀하신 카페들의 운영진을 전 탐탁치않게 보는데, 강단사학계에 물이 듬북든 사람이거나 환단고기등을 부정적으로 다룬 글들에 너무 노출되어 혐오증이 걸린 사람일거라 의심이 됩니다. 싫어도 터놓고 열린자세로 받아들여서 들어보고 갑론을박 토론도 해보고 그렇게 지식을 넓혀가고 공유하는게 카페나 뭐나 이런류의 공간의 의의일텐데... 참 안타깝고 답답하지요.
    남들이 뭐라고하는 부정적인 의견, 비난조의 글들 아무리 읽어봐야 지식과 판단력이 넓혀지기는 커녕 삐딱한 고정관념만 고착화됩니다. 따라서 누가 뭐랬더라에 현혹되지 마시고 원문들 관련 원서들 번역책들 구입하거나 빌려서 우선 읽어보실것을 권해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 원이 작성시간12.08.19 아무리 날고 긴다 하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다 똑같은 원문보고 자기 생각 떠드는것에 불과합니다. 떠드는것들만 주워들으면 많은사람들의 감정에만 물들뿐이지 사실정보는 더욱 몽롱해지게되죠. 그렇게 휘둘리지 말고 본인이 직접 원문과 번역문을 읽어서 본인의 생각으로 역사의 줄기와 뿌리를 잇고 판단을 해본뒤 남의 견해를 들으면 그사람의 의도가 뭔지 어떤 자료를 두고 얼만큼 자기 생각을 피력한건지 명료해집니다. 똑똑한 역사보기가 되는거죠.
  • 작성자 구산(九山) 작성시간12.06.13 中國님/토론중에는 상대방의 질문에 합당한 답변을 주는게 좋습니다.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는 경유지에 나타난 소위 낙랑군이란 대목에 이의를 제기한 문제는 외면하고 최리의 낙랑국과 한사군의 낙랑군을 먼저 공부하라니 핀트가 많이 벗어난듯 합니다.구산은 수나라의 공격루트에서 좌군 12군의 경유지에 들어있다는 낙랑군을 낙랑도의 오기가 아닌가 물었습니다.과연 심백강박사의 저서에 낙랑군으로 표시되어있는지를 확인하시고 만약 확인이 되었다면 그 사실만 대답하시면 됩니다.그리고 아랫글이란 어떤것입니까?
  • 답댓글 작성자 中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3 좌12군 누방, 장잠, 현도, 부여, 옥저, 낙랑도에서 떠나고, 우 12군은 점제, 훈미, 임둔, 제혜, 숙신, 갈석, 동선, 대방, 양평도를 떠나서...

    이것은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쳐들어올 때 좌 12군, 우12군을 합해서 24군 2백만 대군이라는 군사가 출할한 장소를 기록한 것입니다. 낙랑등도라 했는데 그 당시는 물론 낙랑군은 멸망하고 평양이 고구려 수도라고 할때, 평양을 치러 오는 군사가 출발 지점이 낙랑등도라니 식민사학자들 말대로 낙랑이평양이라면 평양에서 출발하여 평양을 치러 왔다는 말밖에는 안됩니다. 누방은 낙랑군 속에 있는 현입니다. 장잠은 현도에 속하는 현이고, 현도가 함남, 평북 일대라면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中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3 우 12군은 점제에서 나와 숙신 갈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만리장성 모퉁이 갈석산에서 평양을 치러온 것입니다. 이처럼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새빨간 것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답이 되었습니까? 아랫글이라 함은 남낙랑과 북낙랑의 글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가정의 가장이고 퇴근후에는 글을 적지 못합니다. 회사에서 틈틈히 글을 적는 것이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구산(九山) 작성시간12.06.13 中國님/그러니까 수군 12군의 경유지에 등장하는 낙랑은 낙랑군이 아니었고,낙랑도(樂浪道)였다는 대답으로 알겠습니다.바쁘신 직장생활중 시간을 쪼개어 이만큼 참가하시기도 어렵습니다.고맙습니다.그러나 한무제에 의해서 침략당했던 왕험성을 찾으려면 이정도의 논리로는 어림도 없습니다.이책의 저자는 한나라시대의 낙랑군위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몇가지의 사례를 제시하며 한반도의 낙랑군설을 부정하고 있지만 《사기》<고제본기>의 주서 색은에서 설명한 창려현이 갈석산지역에 있었다는 정도입니다.다음 곁가지로 등장하는 후대의 낙랑군 지명들은 왕험성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창려현은 25개 현중의 하나였습니다.
  • 작성자 구산(九山) 작성시간12.06.13 그렇다고 하여 본인이 대동강 평양성의 낙랑군설을 동의한다는것은 아니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한사군의 연계선상에 있는 낙랑군의 기록은 《후한서》<군국지>에 나옵니다.글의 량이 많아 링크합니다.

    링크를 허용하지 않는구뇨.고조선 토론방 3391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alhc/ALGC/3391
  • 답댓글 작성자 中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3 결국은 요서에서 더 서쪽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말씀이시네요?

    고대 지명은 세력이 이동하면서 그대도 가지고 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 문제는 지도와 문헌상의 기록을 더 살펴봐야 겠지만 몇가지의 문제(지도의 지명등)만으로 그곳이 낙랑군이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그곳에 낙랑이 있다고 본 제하의 글중 윤복현, 성헌식등의 글을 본것 같긴 합니다만,...그런류의 글들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구산(九山) 작성시간12.06.13 의외로 성질이 꽤나 급하시군요.글의 어느대목에 낙랑군이 요서의 더 서쪽에 있다는 말이 있나요.좀더 깊히 관찰하시고 의견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설득력이 떨어지니 어쩌니 하는 말씀은 삼가하시는것이 좋을듯 합니다.희귀한 지도자료까지 동원하여 설명을 드렸는데 그런식으로 답글을 올리면 한마디로 김이 빠집니다.찬찬히 검토하시고 무엇이 설득력이 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하시고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6.16 한 낙랑군이 지금의 란하 유역에 있었다면 당시의 요동과 요하는 지금의 어느 곳과 어느 물길이어야 하는지요?
  • 답댓글 작성자 원이 작성시간12.08.19 당시 요하가 지금 난하입니다. 요동은 즉 난하 오른쪽 요서는 그 왼쪽이 되겠지요.
  • 작성자 원이 작성시간12.08.19 지금 난하가 당시 요하. 지금 강이름은 동으로 옮긴겁니다.
    지금 요하도 예전엔 압록강.
  • 답댓글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8.24 <한서/지리지>외 지리지 등에서는 요하가 대체적으로 남류한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지금의 란하는 크게 보아 동남류합니다.
    <수경주/난수濡水>를 비정하자면 지금의 란하 상류와 동일하고 중.하류는 지금의 란하 서쪽을 관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사고/지리지>에는 <수경주>의 난수 흐름을 정확히 지목하여 2100 리라 하였고, <한서/지리지>에서는 밑도끝도 없이 염난수가 2100 리라고 하였으며 대요수를 1250 리라 하였지요.

    저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대요수는 염난수의 동쪽 지류라 할 만 하고,
    지금의 란하는 <한서/지리지>의 염난수라 할 수 있겠지요.

    염난수鹽難水는 현토.요동군을 경유하여 바다로 흘러들고,
    난수濡水
  • 답댓글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8.24 (난수濡水)는 어양.우북평.요서군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갑니다.

    즉 지금의 란하는 <한서/지리지> 상의 2100 리 염난수와 요서군의 난수濡水가 복잡하게 섞여 설명된 것이니,
    요동군을 경유하고 1250 리 길이에 불과한 대요수일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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