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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원이 작성시간12.08.19 다른곳에서 논파당하는걸 봤다...
제가 네이버부흥 카페원이었는데, 환단고기 단어를 넣은 작은 글하나를 올리니 바로 강제영구탈퇴시켜버리더군요. 몇년간 열심히 활동하고 했는데, 얼마나 기가차던지...
토론을 아예 막아버리는것이 논파했다고 말할수 있는걸까요? 다른카페들은 잘 모르겟으나, 네이버부흥카페는 아예 입밖에도 내놓지 못하게 하는게 그 카페 규정입니다. 다른 카페에서 논리 펴봐라구요? 그런 카페에선 여기서 토론되는 얘기들이 불문율로 정해진 카페들입니다. 알고나 말씀하세요. 그런 카페에선 토론자체가 안되는 구조라구요. 그 카페들 공지사항 먼저 읽어보시길 바랄께요. 아예 토론을 원천봉쇄하는 카페들인데.. 웃음 -
답댓글 작성자 원이 작성시간12.08.19 님이 말씀하신 카페들의 운영진을 전 탐탁치않게 보는데, 강단사학계에 물이 듬북든 사람이거나 환단고기등을 부정적으로 다룬 글들에 너무 노출되어 혐오증이 걸린 사람일거라 의심이 됩니다. 싫어도 터놓고 열린자세로 받아들여서 들어보고 갑론을박 토론도 해보고 그렇게 지식을 넓혀가고 공유하는게 카페나 뭐나 이런류의 공간의 의의일텐데... 참 안타깝고 답답하지요.
남들이 뭐라고하는 부정적인 의견, 비난조의 글들 아무리 읽어봐야 지식과 판단력이 넓혀지기는 커녕 삐딱한 고정관념만 고착화됩니다. 따라서 누가 뭐랬더라에 현혹되지 마시고 원문들 관련 원서들 번역책들 구입하거나 빌려서 우선 읽어보실것을 권해드립니다. -
작성자 구산(九山) 작성시간12.06.13 中國님/토론중에는 상대방의 질문에 합당한 답변을 주는게 좋습니다.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는 경유지에 나타난 소위 낙랑군이란 대목에 이의를 제기한 문제는 외면하고 최리의 낙랑국과 한사군의 낙랑군을 먼저 공부하라니 핀트가 많이 벗어난듯 합니다.구산은 수나라의 공격루트에서 좌군 12군의 경유지에 들어있다는 낙랑군을 낙랑도의 오기가 아닌가 물었습니다.과연 심백강박사의 저서에 낙랑군으로 표시되어있는지를 확인하시고 만약 확인이 되었다면 그 사실만 대답하시면 됩니다.그리고 아랫글이란 어떤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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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中國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3 좌12군 누방, 장잠, 현도, 부여, 옥저, 낙랑도에서 떠나고, 우 12군은 점제, 훈미, 임둔, 제혜, 숙신, 갈석, 동선, 대방, 양평도를 떠나서...
이것은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쳐들어올 때 좌 12군, 우12군을 합해서 24군 2백만 대군이라는 군사가 출할한 장소를 기록한 것입니다. 낙랑등도라 했는데 그 당시는 물론 낙랑군은 멸망하고 평양이 고구려 수도라고 할때, 평양을 치러 오는 군사가 출발 지점이 낙랑등도라니 식민사학자들 말대로 낙랑이평양이라면 평양에서 출발하여 평양을 치러 왔다는 말밖에는 안됩니다. 누방은 낙랑군 속에 있는 현입니다. 장잠은 현도에 속하는 현이고, 현도가 함남, 평북 일대라면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구산(九山) 작성시간12.06.13 中國님/그러니까 수군 12군의 경유지에 등장하는 낙랑은 낙랑군이 아니었고,낙랑도(樂浪道)였다는 대답으로 알겠습니다.바쁘신 직장생활중 시간을 쪼개어 이만큼 참가하시기도 어렵습니다.고맙습니다.그러나 한무제에 의해서 침략당했던 왕험성을 찾으려면 이정도의 논리로는 어림도 없습니다.이책의 저자는 한나라시대의 낙랑군위치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몇가지의 사례를 제시하며 한반도의 낙랑군설을 부정하고 있지만 《사기》<고제본기>의 주서 색은에서 설명한 창려현이 갈석산지역에 있었다는 정도입니다.다음 곁가지로 등장하는 후대의 낙랑군 지명들은 왕험성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창려현은 25개 현중의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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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8.24 <한서/지리지>외 지리지 등에서는 요하가 대체적으로 남류한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지금의 란하는 크게 보아 동남류합니다.
<수경주/난수濡水>를 비정하자면 지금의 란하 상류와 동일하고 중.하류는 지금의 란하 서쪽을 관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사고/지리지>에는 <수경주>의 난수 흐름을 정확히 지목하여 2100 리라 하였고, <한서/지리지>에서는 밑도끝도 없이 염난수가 2100 리라고 하였으며 대요수를 1250 리라 하였지요.
저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대요수는 염난수의 동쪽 지류라 할 만 하고,
지금의 란하는 <한서/지리지>의 염난수라 할 수 있겠지요.
염난수鹽難水는 현토.요동군을 경유하여 바다로 흘러들고,
난수濡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