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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한국일보 연재 34회 - 고구려와 유목민족들과의 만남.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4.12.10|조회수412 목록 댓글 1
고구려 유목민족들과의 만남
각기 다른 삶의 방식 존중… 적국과의 전쟁 땐 서로 도와

우리가 생각하는 고구려인들은 대륙을 호령하며 활보하는 용감한 모습입니다. 이 같은 이미지는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며 양과 말을 키우며 떠돌아다니는 유목민과 많이 닮았습니다. 고구려 주변에는 흉노ㆍ선비ㆍ거란ㆍ유연ㆍ돌궐ㆍ실위를 비롯한 여러 유목민이 시대를 달리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와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럼, 고구려와 유목민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 선비족은 후한과의 전쟁 때 활용

(사진)

백암성. 고구려군과 돌궐군이 싸웠던 역사의 현장이다.

고구려 2대 유리명왕은 서기 전 9년에 선비족을 공격해 이들을 굴복시킨 바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이후 서기 49년까지 농경 국가인 후한과 전쟁을 할 때 선비족을 활용했습니다. 고구려가 후한 땅 깊숙이 쳐들어가고, 포로를 많이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기동성이 뛰어난 선비족 군대를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은 395년 유목민인 거란족 부락을 공격해 이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이후 거란족에 대한 고구려의 통제력은 매우 강해졌습니다. 고구려는 거란족을 이용해서 북중국을 지배했던 북위의 변방을 수시로 공략하기도 했습니다.

또 600년 경에는 거란족을 이용해 수나라의 해안 기지를 공격하기도 했고, 거란족에 대한 통제력을 놓고 당나라와 650년대에 치열하게 전쟁을 했습니다.

거란족의 일부는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운명을 같이하기도 했습니다.

▲ 유연과는 북위 견제하며 힘 합쳐

사냥과 가축 키우기가 중요한 생업이었던 말갈족은 건국 직후부터 꾸준히 고구려인이 포섭해왔던 대상이었습니다. 영양대왕은 말갈군 1만 명을 이끌고 수나라 전진 기지인 영주를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갈 장수 생해는 고구려를 위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고구려의 석대자산성. 유목민들은 심양시에 있는 이 성처럼 튼튼한 성벽을 결코 넘을 수 없었다.

실위족은 고구려가 부여를 통합하면서 만나게 된 북쪽에 사는 유목민 입니다. 이들은 자체에서 철이 생산되지 않아 고구려에게 철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고구려는 실위족뿐만 아니라 거란족에게도 철을 수출하면서 이들을 고구려를 돕는 세력으로 만들었습니다.

백제와 신라ㆍ가야 그리고 왜국과 같은 남쪽의 나라와 후한ㆍ위ㆍ북위ㆍ수ㆍ당과 같은 서쪽의 나라들은 고구려와 많은 관련을 가졌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북서쪽의 흉노ㆍ선비ㆍ유연ㆍ돌궐ㆍ설연타ㆍ철륵 등과도 시대를 달리하며 고구려와 깊은 관련을 가졌습니다.

특히 유연은 5∼6세기에 고구려의 우방으로 북중국의 북위를 견제하는데 서로 힘을 합쳤습니다. 고구려는 유연과의 평화관계를 기반으로 초원길을 말을 타고 달려 멀리 서역의 나라와 교류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서로 협력하여 양국 사이에 좋은 말을 생산하는 지두우를 분할하여 서로 나누어 갖기도 했습니다.

돌궐은 고구려와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수나라가 등장하자 서로 사신을 왕래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것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돌궐인이 남긴 비석에는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두 나라간의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려 주기도 한답니다.

645년 당나라와 전쟁을 하던 고구려는 설연타에 사신을 보내 당나라를 견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설연타는 곧 대군을 보내 당을 공격했고, 당나라는 이들을 막기 위해 서둘러 고구려에서 군대를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철륵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661년 고구려와 당나라가 전쟁을 하는 도중, 철륵은 당나라와 전쟁을 시작합니다. 따라서 고구려를 공격하던 당나라 군대의 일부가 철륵을 막기 위해 급히 철수를 하게 됩니다.

▲ 유목민의 탁월한 기동력 이용

고구려는 이처럼 유목민들과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일부 부족들을 세력권 안에 두고 활용해 적국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특히 유목민 기병은 탁월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서쪽의 수ㆍ당과 싸울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구려가 강했던 것은 단지 고구려 혼자의 힘만이 아니라, 이웃들의 힘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인들은 유목민이 강대해져서 고구려를 위협할 것에 대비해 말 타고 활쏘기를 열심히 훈련하기도 했습니다. 우씨왕후의 사례에서 보이는 형사취수제라는 결혼 풍습,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나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신을 맞이하는 제천 행사, 윗옷을 왼쪽으로 여미고 바지를 입는 복장 등은 모두 북쪽 유목민과 비슷한 풍습들입니다.

또 동복ㆍ각배 등 유목민이 사용하던 식기류가 고구려에서도 발견됩니다.

고구려와 유목민의 관계에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구려가 거란 등을 억압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 주고 공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고구려의 편에 서서 끝까지 고구려를 도운 것입니다. 만약 고구려가 이들을 억압하기만 했었다면, 이들은 고구려에게 등을 돌리고 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김용만(고구려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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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만남뒤엔이별이 | 작성시간 05.05.04 역시 고구려는 위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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