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4월 12일 화요일, 비 그리고 오후에 맑음. 서늘함.
*걷기-둘째 날
*론세스바에스에서 수비리(Zubiri)까지.
*이동거리 23km.
새벽에 창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날도 어둡다. 한기가 느껴지는 비다. 아침은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식사를 한다. 햄과 소시지 종류들, 그리고 하몽을 빵에 얹어 커피우유와 함께 먹는다. 든든히 먹었다.
우비를 입고 출발한다. 우비를 처음,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고 가는 것 같다. 전에 중국 만리장성 위를 거닐 때 일회용 우비를 입고 땀을 흘려 벗어 던진 적이 생각난다. 아침 8시 30분 출발이다.
론세스바에스, 작은 마을을 금방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간다. 주변에 높이 솟은 나무들만 줄서서 있고 넓은 벌판이 나란히 간다. 지그재그로 S자를 그리며 오르내리는 길이지만 비옥한 평야를 가로지르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출발지인 론세스바에스가 해발 950m이다. 우비를 입고 빗길을 걸어가니 분위기는 무겁고 차갑지만 기분은 재미있다. 톡톡 떨어지는 빗물이 달콤하게 얼굴에 부딪쳐오고, 고개 숙인 모자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신발로 향한다.
오솔길은 물이 듬성듬성 고여 있고 풀들은 축축이 젖어 빛이 난다. 빗소리에 앞서서 걷는 이도 조용하다. 그저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숲길로 들어서기 전에 14세기에 만들어 졌다는 순례자 십자가가 보인다. 비가 내리는 숲길은 신비롭고 차분하다.
3km 정도를 걸으니 숲길이 끝나고 마을이 나타난다. 부르게테 마을이다. 나바르의 전통마을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종종 머물렀다는 부르게테 호텔이 마을 어귀에 있다. 평범해 보이는 호텔이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머물렀다는 표식을 갖고 있다.
이 마을은 헤밍웨이가 머물면서 송어 낚시를 즐기는 가운데<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혼자 은둔하며 낚시를 즐기던 그는 이곳을 천국으로 묘사하는 편지를 피츠제럴드에게 보내기도 했다.
또 이곳에는 그가 1923년 7월 25일에 사인을 남긴 피아노가 아직 있다는데 들어가지는 않았다. 물이 줄줄 흐르는 우비를 입고 들어가기는 좀 그랬다. 좀 더 걸어가니 중심지에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있다. 성 니콜라스는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수호자란다.
비로 인해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다. 좀 더 마을길을 걷다가 우로비 강을 건너 농장 길로 접어든다. 작은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숲으로 들어선 다음, 언덕을 올라간다. 언덕 꼭대기 부근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래로 뻗은 다른 넓은 숲길을 간다.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 농장 언덕길로 들어서니 왼쪽에 조그만 마을이 뒤에 있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멋진 교회가 우뚝 솟아 있다. 예쁜 농장 초지를 왼쪽에 두고 걸어 언덕을 올라간다. 칼라 풀한 우비를 입은 젊은 순례 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다.
길은 흠뻑 젖어있다. 목장의 말들은 그대로 비를 맞고 있다. 우비를 그대로 입고 비를 맞으며 걷는데 우비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날개 같다. 비를 막아주지만 냉기도 막아주어서 포근하고 편하다.
비에 젖어 무겁게 고개를 숙인 노란 꽃들이 싱싱해 보인다. 비 내리는 숲속 길은 살짝 안개가 끼어 참 운치가 있다. 언덕길을 간다. 질퍽대는 길이다. 길가의 무덤, 묘비 석도 축축하게 젖었다. 멈춤이 없이 계속 길 따라 간다.
수비리(Zubiri) 13.1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반갑다. 길에는 갑자기 나무로 만든 문이 닫혀있다. 살짝 당겨보니 문이 열린다. 아마도 동물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계속 이어지는 숲속 길은 아름답지만 서늘하다. 언덕을 오르고 내린다.
방수 카바를 씌운 배낭에 원색 우비들이 예쁘다. 서양의 젊은 아가씨들과 앞 서거기 뒤서거니 하면서 걸어간다. 스쳐가는 아가씨들의 재잘대는 웃음소리가 시끄럽다. 오솔길의 낮은 곳으로 물이 가로질러 흐른다.
개를 데리고 순례 길을 걷는 젊은이도 있다.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가니 식당이 우리를 환영한다. 잠시 쉴 겸 들어가 오렌지 쥬스(2유로)를 마셨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떠나고 새로 오는 이는 꼭 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자동이다.
우비를 잠시 벗었다가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우비를 입었다. 그래도 세요(스템프)는 받았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산티아고로 간다는 화살표가 예쁘게 만들어져 있다. 양떼들이 몰려온다. 마을에서 큰 길로 향해 온다.
핸드폰을 오른손에 들고 막대기를 왼 손에 든 젊은이가 대장 같이 양 무리 앞에서 양들을 끌고 온다. 마네크(Manech)라는 검은 양들이다. 길을 가득 매우고 물결같이 오는데 소리와 냄새도 함께 온다. 마을 교회 앞에서 동키를 만났다.
누군가 걷기 힘들어 동키를 타려고 하는 것 같다. 동키를 타면 가까우면 10유로, 먼 거리는 20유로씩 낸단다. 칼라 풀한 쓰레기통이 마을 광장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집들이 예쁘다. 헤레디아인(Gerediain) 마을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마을로 예쁜 성당도 있다. 거리 곳곳에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을 알리는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질 문양만 가득하다. 마을에는 돌로 된 집들이 비슷한 느낌이지만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개성을 뽐내고 있다.
또 숲속 길로 들어간다. 거의 1km를 걸어 린소아인(Linzoain)마을에 도착했다. 언덕을 오르니 만나는 마을이다. 수비리(Zubiri) 6.9km, 알토 데 에로(Alto de Erro) 4.3km라는 이정표가 반갑다. 오르고 내리는 숲길을 또 걸어간다. 오솔길이 예쁘다.
파소 데 롤단(Paso de Roladan)이라는 숲길이다. 이정표를 보고 알았다. 정신없이 가다보니 비가 그친 줄도 몰랐다. 어쩐지 좀 덥더라. 우비를 벗어서 배낭 안에 우겨넣었다. 큰 길 옆에는 간이 Bar가 설치되어있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우거진 잡목림 쪽 좁은 길로 오른다.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는 숲길은 산등성이를 따라가는데 에로 봉이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에로 봉(해발 810m)을 보면서 가파른 바위로 난 길로 내려간다. 뾰족하게 길게 드러난 바위 길은 위험해 보인다.
비에 젖은 길은 미끄러워 더욱 위험하다. 드디어 수비리(Zubiri)다. 마을로 들어서는 아르가 강이 입구를 막고 있다. 두 개의 반원형을 가진 아주 멋진 다리, 라비아(Rabia)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아르가 강에 놓여 있는 중세풍의 다리다.
공수병에 걸린 동물을 데리고 가운데 아치 주위를 세 번 돌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Rabia는 공수병을 뜻한다. 숲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작지만 깨끗하다.
다리를 건너 N-135 도로를 들어서니 오른쪽에 성 스테파노(San Esteban)교회와 시계탑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바로 우리의 숙소 Palo de Avellano 알베르게 간판이 보인다. 반가웠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알베르게 요금은 18유로로 좀 비싸다.
알고 보니 아침 식사 제공이란다. 오후 3시 30분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파란색 철재 2층 침대는 깨끗하다. 천장에 창문이 있어 실내가 밝다. 하늘색 담요가 하나씩 놓여있다. 창 밖에는 노란색과 흰색으로 핀 민들레꽃이 잔디밭에 가득하다.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시내를 둘러보러 나갔다. 물과 먹거리가 없어서 슈퍼를 찾아 나섰다. 도로는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있는데 넓어 보인다. 조용하다.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
체육관으로 보이는 건물에도 인기척이 없다. 주황색 지붕에 흰색을 칠해진 집들은 아주 예쁘다. 가짜로 만들어 놓은 커다란 새집 위에는 모형으로 만든 새들을 발견했다. 계속 걸어가 마을 끝에서 주유소를 만났다. 주유소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작은 것이 1유로다. 저녁에 먹을 것 하나, 내일 갖고 갈 것 2개, 물을 3개 손에 쥐니 마음이 놓인다. 마을 구경 할 것도 없다. 다시 라비아 다리를 보려고 마을 뒷길로 간다. 검은 고양이만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다.
다리는 강가에서 다시 보니 높아 보이고 참 멋지다. 성당의 시계탑은 오후 4시 5분을 가리킨다. 성당 마당에 있는 급수 대는 말라있다. 노란 우체통이 늙어 보인다. 성당 건너편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한다.
돼지 갈비가 주 요리인데 감자에 레몬 죽, 그리고 야채도 나온다. 감자를 듬뿍 넣은 계란찜 또르띠야(Tortilla)도 한 조각 먹었다. 오믈렛하고 모양이 비슷하다. 13.5유로를 지불하고 나왔다. 숙소에 들어와 하루를 정리해 본다.
일기를 대충 쓰고 침낭을 폈다. 자리에 누웠다. 9시에 소등을 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이 들었나보다. 교회 종소리가 새벽 2시부터 들리기 시작한다. 스페인에 와서 누워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