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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칼럼

평가의 민낯 드러내기와 걸어서 걸음 배우기

작성자(사)한국평생교육사협회|작성시간23.03.20|조회수26 목록 댓글 0

 

교육현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면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에 으레 평가를 한다. 이 평가를 바탕으로 다음 프로그램의 방향과 내용을 재설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가방법은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평생교육기관 내부의 자체 평가,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외부 평가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설문조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 평가에서 따져볼 부분이 꽤 있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설문조사의 내용이 공허하거나 실제와 다르게 구성된다. 예를 들어, 교강사는 학습자에게 진정성있게 강의를 하였는가, 강의실의 조명은 적절했는가, 강의 내용이 도움 되었는가 등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평가를 통해 다음 프로그램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해당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위해 그리고 학습자 집중과 참여를 위해 준비한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문항에 이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 시작 전에 참여자들의 긴장을 풀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심리적 여유를 만들기 위해 노래를 들려주었다면, 과연 그 노래가 의도된 효과를 가져왔는지, 그 노래에 대한 느낌은 어떠했는지 등을 물어야 한다. 토론에 앞서 토론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학습안전지대를 구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그 방법이 실제로 어떻게 토론 참여 분위기를 만들었는지를 짚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현행 설문조사 항목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해 준비한 장치에 대한 물음이 없는 것이다.

  설문문항이 실제 평생교육현장에서 수행되는 프로그램과 관련되어 진행된 내용을 짚지 않고 다소 프로그램 운영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프로그램 별로 설문문항을 제대로 구성하지 않고 이전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여 사용하는 것을 주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평생교육현장에서 사용하는 설문지는 수십 년 전의 설문지의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설문문항을 만들 때 설문의 목적을 명확하게 수립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내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부터 있었던 설문지를 인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설문문항이 이전에 사용했던 설문지를 기반으로 구성되는 이유를,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우선, 담당실무자가 운영한 프로그램별로 설문문항을 만드는 것이 부담스러운 탓이 있고, 다음, 굳이 새로운 문항을 만들지 말고 이전 것을 참고해서 설문지를 작성하라는 내부 문화와 직간접적인 지시 등이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설문항목으로 설문조사가 이루어지고, 이 설문조사 내용을 근거로 향후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설정하거나, 프로그램 내용의 개선하는 등이 진행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평가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설문문항을 사용해서 나온 결과를 근거로 프로그램 방향성을 설정하고 내용을 개선한다면 그것이 적절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문항목이 으레적으로 만들어 지고, 그 설문항목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논하고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평가의 시점도 짚어봐야 한다. 대부분의 설문조사 등 평가는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에 이루어진다. 그 평가항목의 내용이 괜찮고 평가가 잘 이루어진다면 다음 프로그램이 개선되고 다듬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다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정작 해당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은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수정이 안 된, 다듬어질 부분이 많은 프로그램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평가는 프로그램의 끝부분에서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평가를 프로그램의 초기 단계에서 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프로그램 평가의 시점을 탄력적으로 하면 된다.

  설문문항과 평가 시점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프로그램 평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그리고 평가를 별도 영역으로 구분하는 관점이 많은데, 사실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과 평가하는 일은 서로 분리된 활동이 아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평가하는 일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실천 과정에서의 평가를 통해 수정될 수 있고 수정되어야 한다. 평가한다는 것은 재조정하고, 다듬고 깁고, 재프로그램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평가는 어떤 프로그램의 최종 단계에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운영 전반에 걸쳐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개발, 운영과 평가가 연리지이며 들숨과 날숨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평가는 프로그램이 ‘왜 하는가, 누구와 더불어 하는가, 무슨 내용으로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만들고, 구현하도록 하는 기반이며 방향타이다.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졌고 원활하게 운영되었는지를 따지고 시비걸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살피면, 평가는 평생교육 활동가들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때, 매 단계마다 자신의 목표, 프로그램의 목표가 잘 달성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진행된다. 이는 평가가 평생교육의 꿈을 프로그램이라는 실천을 통해 구현하도록 지원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맥락에서 프로그램이라는 평생교육의 실천에서 평가는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평생교육 현장에서는, 평가가 평생교육 활동가의 실천인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대신에, 평생교육 활동가를 평가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평가가 프로그램의 개선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평생교육 활동가의 실천을 질책하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평생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책하기 위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프로그램 범주에 속한 것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 활동가에게 강제되는 부분도 있다.

  첫째, 프로그램에 대한 계량적 실적 평가이다. 지방정부 산하 평생학습원의 경우 투입된 예산이 얼마인데, 얼마나 성과를 올렸는지를 평가하도록 요구받는다. 이런 성과 평가는 대부분 프로그램 당 참여자가 몇인가 하는 계량적 평가로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참여자의 다소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배제된다. 이런 배경 때문에 평생교육 현장에 수십여 년 간 쌓여온 폐단이 있다. 우선, 개인의 이익 추구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게 했고, 다음, 참여자들이 이에 익숙하도록 만들었으며, 끝으로, 평생교육은 개인 이익, 일자리, 역량강화 등등으로 인식되는 것이 굳어지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프로그램 중에 삶과 사회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있고, 공공선을 다루거나, 시대적으로 반드시 다뤄져야 하는 프로그램들은 속된 말로 ‘파리날리기’ 일쑤이다. 비록 참여자가 부족하고 당장의 호응이 없다 할지라도 해야하는 프로그램은 해야 한다. 그러나 계량적 성과 위주의 평가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둘째, 평생교육사에 대한 행정적 평가이다. 평생교육 활동가에 대한 평가내용이 지극히 부적절하고, 마땅하지 않다. 지방정부 산하 평생학습원 등에서 일하는 평생교육 활동가 즉 평생교육사들은 정기적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이 평가는 대부분 일정 기간 동안 계약직으로 일을 하는 평생교육사들에게는 자신의 활동내용과 활동기간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런데 이 평가 내용이 대부분 일반 행정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달리기 선수를 평가하는 항목으로 역도 선수를 평가할 수 없다. 종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반 행정직 공무원과 평생교육사들은 하는 일과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형태가 다르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현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주목한다면, 평생교육사는 새로운 것을 꿈꾸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의 행태와 내용, 목표가 다르다. 평생교육사에게 일반 행정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 내용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까닭이다.

  평가는 프로그램을 다듬고, 깁고, 재조직하여 평생교육의 뜻과 가치를 구현하는데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평생교육 활동가의 실천을 지원하고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교육 현장에는 평가가 오히려 평생교육의 뜻과 가치 구현을 방해하고, 평생교육사의 꿈의 실천에 장애가 되는 부분이 있다. 평생교육사들을 얽매고 구속하는 색깔이 너무 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가 강제되고 지속되는 여러 가지 배경과 원인이 있다.

  개별 평생교육사가 개별적으로 평가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평가 문제의 배경과 원인을 소멸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당연하지도 않다. 함께 느끼고 판단하여 방안을 만들며 같이 실천하면 해결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를 냉철하게 짚어보고, 그 무엇을 만들어 내야 한다. 선후와 완급, 경중을 가려서 무엇을 추진해야 한다. 여기서 잊지 말고 잃지 말 것은 생각과 행동을 새롭게 해야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은 내가 한 번 가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계속 가야 한다. 더불어 가야 한다. 그래야 길이 된다. 걸어봐야 걸음을 배울 수 있다. 글을 써 봐야 글쓰기를 익힐 수 있다. 너무 생각만 하고, 그러면서 위축되고, 무기력해지고, 스스로 만든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길가의 돌멩이 하나도 말을 하는 것만으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떠올려야 한다.

평가만이 아니다. 세상사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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