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4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6월 설교 시리즈 – 필작어세(必作於細)>2.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본문 : 창세기 7장 1절(1~6절)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보니,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이라고는 너밖에 없구나. 너는 식구들을 다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새번역>
며칠 전 ‘가보로 파텍 필립 보관중인 남성’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로 치면 진품명품 같은 TV 프로그램에 한 남성이 증조부 유산이라며 가문의 보물인 고물 시계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물 시계가 아니라 시계 끝판왕 ‘파텍 필립’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파텍 필립이란 시계가 얼마나 비싼지 보려고 찾아보았더니 ‘시계 계급도’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거기 계급도에 당당히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시계가 바로 파텍 필립이었습니다. 가격을 검색하니 ‘억’소리 나게 비싼 시계였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그 남성은 보존이 완벽히 되어 있는 100년이 넘는 보증서까지 풀세트로 보관해 왔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파텍필립 시계의 전문가가 그 시계를 꼼꼼히 살펴보자 시계 끝판왕답게 바늘만 여러 개인 초정밀 수동 시계였다고 합니다. 거기다 그 옛날에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리피터’ 기능까지 탑재한 시계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대박인 건 시계 뒷면에 있었는데 달 모양에 날짜까지 나오는 ‘퍼페추얼’ 버전이었던 것입니다. 우주가 담겨 있는 시계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계 주인인 그 남성은 그래서 한 60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냐고 소박하게 꿈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자 전문가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정색을 하더니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이건 당장 3억 3천만원부터 시작이니깐 정신차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가지고 온 남성은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최종 가치는 40억을 찍었고, 아마 이게 몇 십년 된 이야기인지 현재 시세로는 백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도 오늘 당장 집에 가셔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시계가 있나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지점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저 물건을 가지고 왔을 때 사기꾼이라도 만나게 되었다면 그래서 정말 60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니, 사기꾼은 그 마저도 주지 않았을 게 뻔합니다. 저 남성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냥 고물시계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받을 수 있는 금액만 받고는 그냥 저 시계에 대해서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인 것은 ‘전문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가 전문가의 눈으로 본 그대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전해 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가 없었다면, 저 시계의 가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없었다면 저 시계는 그냥 하나의 고물시계로 인식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시계가 명품시계라는 전문가의 판단을 시작으로 저 시계는 이제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가보였지만 고물 시계인줄 알았기에 막 다루었다면 이제는 아마 엄청난 보호 장비 속에서 안전하게 보관되었을 것이고 너무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누가 보기에 따라 완전히 그 가치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았기에 40억이나 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여기 전문가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시작된 것처럼 우리의 신앙의 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볼 때 무슨 명품 같아 보이겠습니까? 무슨 가치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따라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명품’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내어주시고 얻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렇다고 인정해 주셨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하시기 전까지 살았던 400년에 대한 특별히 자세한 기록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등장하는 않은 기록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분명합니다.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창세기 6장 9절, 새번역>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보니,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이라고는 너밖에 없구나. 너는 식구들을 다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창세기 7장 1절, 새번역>
적어도 이 땅을 400년 이상 지켜본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노아’ 외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 없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말 의인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어느 정도 의인만 되어도 의인 취급을 해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노아 외에는 정말 의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의인이었는가? 3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롭다는 단어는 주로 이런 상황에서 많이 사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재판할 때에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두둔하거나,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들어서는 안 된다. 이웃을 재판할 때에는 오로지 공정하게 하여라. <레위기 19장 15절, 새번역>
공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공정이 불편하고 차별이 가득했던 시대를 따르지 않고 공정했고, 차별이 없었던 의로운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둘째, 노아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5절, 새번역>
온전하고 순결한 사람, 빛과 소금과 같은 사람으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만들어가던 사람이 노아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딱 한 명 ‘노아’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여기에서 왜 노아가 하나님이 딱 하나밖에 없는 희망이 된 줄 알게 하는 구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꼭 그대로 하였다. <창세기 6장 22절, 새번역>
노아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창세기 7장 5절, 새번역>
위에 3가지도 대단한대 거기다 한 가지 더 노아는 ‘순종’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명하신 대로 한 노아! 꼭 그대로 한 노아! 하나님은 이런 노아를 어찌 사랑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노아를 무려 400년 이상 지켜 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자 노아를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400년?! 그 긴 시간 동안 노아는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변함없이 동일했을까요? 저는 결코 큰일의 반복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차별 없이 대하는 삶, 평화를 만들어가던 삶, 하나님이 먼저 발을 내딛으시면 그 길을 따라걷던 동행의 삶, 그리고 순종의 삶,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이 삶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게 좋은 400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00년간의 평범한 삶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이제 노아를 아주 특별한 사역에 쓰고 계신 것입니다. 아주 작은 삶에서부터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노아의 나이 400살이 훨씬 넘은 시점이었습니다. 인생을 살았다면 제법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얼마나 자리 잡고 있었겠습니까? 그냥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마음먹었다면 얼마나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400이 넘게 살아온 인생에 찾아와 방주를 만들라는 그 말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도 오지 않는데 방주를 만들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주변에서 얼마나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들었겠습니까? 때로는 미친 사람 취급도 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노아는 꾸준히, 묵묵히 120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방주를 완성하게 됩니다. 어느덧 그의 나이는
땅 위에서 홍수가 난 것은,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이다. <창세기 7장 6절, 새번역>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모든 점들이 하나하나 의인이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은 노아를 바보로 취급했을 것이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을지도 모릅니다. 마른하늘에 무슨 방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말씀에 순종했던 노아는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위대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노아의 식구들은 노아 덕분에 큰 은혜를 입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달라 보였던 노아의 삶은 완전히 180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것이 너무도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시금 ‘Coram Deo’를 묵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묵상하며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은,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과 아닌 삶이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코람 데오를 묵상하는 자라면, 인정하는 자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방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생에게 선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분명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의롭게, 공평하게, 흠이 없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것이 동행하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작은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묵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삶, ‘순종’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말씀대로’ 사는 삶, ‘말씀이 삶’이 된 살아감입니다. 말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입기를 원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은 그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창세기 1장 4, 10, 12, 18, 21, 25, 31절>
모두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마가복음 1장 11절, 새번역>
왜 사랑하시며 좋아하셨습니까? 말씀대로 사셨던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하여,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요한복음 17장 4절, 새번역>
마리아는 어떻게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까? 저는 이 말 한마디로 표현되어진 마리아의 깊은 믿음을 하나님이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누가복음 1장 38절, 새번역>
그래서 야고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믿음이 되도록 이렇게 우리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듣기만 하여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보서 1장 22절, 공동번역>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사는 삶! 4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노아는 그런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내가 보기에 좋고, 사람이 보기에 좋은 신앙생활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건 나의 영광과 사람의 기쁨을 위한 신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눈치를 보는 안타까운 상황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본적 자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노아는 그 삶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롭고 흠이 없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노아! 그런 삶을 믿음의 후배들인 우리들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오늘 우리에게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사는 삶! 말씀이 삶에 대한 도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시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 삶은 어떤지 내 삶의 현주소를 돌아보며 노아라는 믿음의 선배가 보여준 그 ‘본’을 오늘 우리 모두도 배워감으로, 2026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 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주 말씀 내 삶 비출 때 + 부르신 곳에서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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