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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진짜 기도!? 기도가 기도가 되려면?(예레미야 37장 3절, 1~3절, 마가복음 11장 24절, 빌립보서 4장 6절)

작성자김광수|작성시간20.09.02|조회수121 목록 댓글 0

본문 : 예레미야 37장 1~3절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의 아들 ①고니야를 대신하여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유다 땅의 왕으로 앉혔다. / ①일명 '여호야긴' 그런데 왕이나 그의 신하들이나 그 땅의 백성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주님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전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 때에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서, 자기들을 도와 그들의 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달라고 청하였다.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표준새번역>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표준새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yrXxjf0QBek

(더 깊은 묵상 238편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설교 준비를 하면서 위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보았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라는 주제의 더 깊은 묵상에서 나온 동영상입니다. 그런데 주제가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인데도 불구하고 그 주제와는 다르게 저는 자꾸 다른 부분에 감동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순수한 믿음도 물론 많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기도한 후에 행동, 즉 기도를 마친 후 문 앞에 앉아서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지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서 감동을 받는 동시에 또한 왜 그런지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바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한 후에 어린 아이가 취했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스쳐지나가고나니 영상 속 어린아이의 믿음에 질투마저 느껴졌습니다.

저와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은 이 어린아이보다 분명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이 어린 아이보다 더 멋진 어구의 기도들을 만들 수 있으며, 조금만 손을 더 보자는 마음으로 더 멋진 성경 글귀를 넣으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제 기도는 어린 아이의 그 짧은 기도에 미치지 못할 만큼 형편없고, 아니 더 솔직히 기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느덧 기도한 후에도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 잃어버리고 나의 생각, 방법, 경험을 의지해 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모습이 바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37장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사람들을 보내며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시드기야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알았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는 사람이 부탁한 기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건 일종의 재물을 바치고 복을 비는 이방인의 그 무엇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분명히기도를 부탁하긴 했지만 그 기도의 내용은 진짜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가 아닌 목적없는 단지 안위와 평안만을 비는 '주문과 같은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무엇을 행하 시기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하는 시드기야의 모습 속에서 저는 어느새 제 자신의 목적만을 위한 기도로 가득찬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내가 기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한 진심없이 왜 이토록 눈물 흘리며, 애타게 기도하고 있는가?

언제부터 난 기도를 거짓말로 소리칠 수 있는 외침으로 만들었는가?

답답한 마음에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어 그저 답답하게 꽤 많은 시간을 묵상과 침묵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읽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답답함의 근원을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말씀의 부재”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하시지 못하니 무엇을 구하는지 모른 채 중언부언하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2절 말씀에 기록한대로 시드기야 왕은 말씀에 철저히 귀를 닫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마태복음 6장 7-8절 말씀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여기서 중언부언은 단순히 똑같은 말의 반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여 주신 것들을 모르기 때문에, 믿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기 때문에 필요 없는 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8장 11절의 말씀도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이라"는 말씀처럼 말씀의 부재가 바로 가장 중요해야만 하는 기도의 목적을 상실하게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답답함의 근원은 “나를 위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찬양으로든, 묵상으로든 얼마나 많이 고백했습니까?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첫번째 답답함의 근원이었던 말씀의 부재가 결국 저를 '이기적인 기도자'로 변질 시켰습니다. 모든 기도가 하나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아니라 나의 사역과 나의 생활과 나의 일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 머리로알고 있지만 나의 지금 이 바빠 보이고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이 일들을 빨리 처리해버리고자 저를 위한 기도만으로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는 말씀이 가슴아프게 떠올랐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아닌 나의 뜻만을 구하고 있던 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뜻을 위하여 나의 방법, 경험, 생각을 동원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께서는 어떠십니까? 혹여나 기도로 인해 답답함을 느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무엇인가를 두고 지금 기도를 하고 있지만 실로 오랜 세월동안 기도해 왔지만 변화되는 것도 없고, 평안도 없고 자꾸만 더 답답해지는 마음만 커지시는 분들혹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 그냥 하나님, 아버지만 부르고 다시 발길을 돌리시는 분은 계시지 않으십니까? 모두가 경험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여서 영적 무기력증에 빠져 계신 분은 없으십니까? 분명히 '말씀의 부재'와 '나를 위한 기도'는 기도가 아닌 기도를 만들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 기도의 목적을 빼앗아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찌보면 사탄이 노리고 있는 것! 바로 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냥 기도의 행위만 하게 하는 삶. 그런 행위만 있는 종교생활 후 찾아오는 공허함으로 인한 신앙생활 가득한 무기력증과 불신앙!!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어찌보면 너무도 심오해 보이고, 막막해 보이고 답이 없어 보이는 이 질문에는 오히려 쉬운 해답이 있습니다. 너무도 쉽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구절에서 이미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나와있겠지만 저는 특별히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통하여 2가지를 생각해보면서 함께 기도하며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할 때 내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에 대하여 분명하게 결정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누구냐?" 하고 물어보셨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분명한 대상에 대한 고백은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허락하심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은 언제나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치료자이십니다. 그는 능력자이시며, 승리자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은 언제라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친히 우리를 위하여 보혈을 흘려 영원한 승리를 주신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은 성령님입니다. 위로자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결코 나, 당신을, 우리 모두를 절대 고아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구하라 주실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이신가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 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 말씀하신 분은 아바아버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사람의 일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자신의 죽으심을 언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야만 한다고 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멱살까지 붙들며 절대 안된다고 반대를 했습니다. 바로 전까지 칭찬을 하시던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한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원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사람의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강조하는 사람은 사람의, 현실의 일은 소홀히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우선순위에 대한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사람의 일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하는 줄 하늘 아버지께서 다 아시느니라"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온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것에 소홀한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간절히 소망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길 소망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 바로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결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28-29절에 친절하게 질문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을, 세상을, 나 자신을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보혜사 성령님을 더 신뢰하시고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시길 소망합니다.

다시 처음 봤던 영상을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말씀을 읽고나서 혹여나 기도하는 시간에 영상 속 그 어린 아이의 기도의 모습을 함께 따라 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마음을 품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분명한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께,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며 기도하겠습니다.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가 오늘도, 내일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응답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더욱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기도가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3lqcOmaRxI(새벽기도)

https://www.youtube.com/watch?v=h3mhv70Zd4I(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자)

https://www.youtube.com/watch?v=2hetyvPqxtY(어린아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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