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2021년 10월 10일 주일 설교
제목 :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회복?! 이미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9~23절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3절, 새번역>
얼마 전에 저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한 청년과 티타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계속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백신을 맞고 난 후 오랜만에 직접 만났던 터라 너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첫인사가 끝나자마자 이 청년이 갑자기 주저주저 하더니 저에게 굳은 표정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목사님, 정말 교회가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교회를 걱정하는 동시에, 원망하는 마음도 느껴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 자체만 보면 대답도 무거울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그럼요"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 대답에 대해서 별로 공감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땅에 추락해버린 교회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회복될 수 있느냐고 차마 다시 한 번 따져 묻지 못한 표정이었습니다.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믿기가 힘든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표정 그대로 교회에 대해서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최근 언론을 통해 등장한 교회의 여러 가지 모습을 예로 들면서 답답함을 토로해 왔습니다. 정말 최근 교회의 모습은 ‘백약이 무효’한 듯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화 내내 충분히 공감하면서, 마음 아프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내용 하나 틀린 말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청년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어떻게 하면 교회가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며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교회가 회복하긴 할 수 있을까'라는 절망 가득한 ‘답답함’이 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교회의 회복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시기까지 우리는 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예배 설교나 제 개인 블로그에 올린 칼럼을 통하여 몇 번이고 반복하여 말씀드렸지만, 교회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며, 당연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연하게 그 교회의 각 개체인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회복되어야 하며, 당연히 회복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저만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확신하며 선포합니다. “‘회복’될 것이다. 무너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아름다운 복음을 전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사랑하며, 섬기며, 일으킬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네. 말씀에 온전히 ‘아멘’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회복이 지금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가능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회복’되어야 한다는 외침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회복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순종함으로 지켜왔으며, 교회가 무너질 때마다 그 말씀을 의지하여 회복하였던 것을 긴 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하나님의 말씀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잘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꾸준히 해 온 결과가 2021년 10월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는 현재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금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여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깨닫고, 구분하여 사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부족한 죄인이기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쉽게 느껴지고, 해야 할 일은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이런 핑계야말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피해야 할 비겁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더 쉬운 존재들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부여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빌립보서 4장 13절을, 어떤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더 당당하게 외쳐야 하고, 삶의 고백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새번역>
하나님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결코 지킬 수 없는 말씀을 주시면서 순종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인이라 부족하고 연약해서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히 그리스도인들을 쓰러뜨리려고 하는 '유혹(temptation)'일 뿐인 것입니다. 언제까지 죄인입니까?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의 부족하고 나약함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아직 그리스도인과 죄인을 혼용하고 계십니까? 아직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셨다면 이제는 결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을 파고들어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말씀을 지키며 살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이 유혹을 지금 당장 시원하게 발로 차 버리셔야 합니다. 결코 우린 그런 무기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매일 매일 성장해 가고, 성숙해 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고 선포하며 완성해 나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다음의 성경 기록과 같습니다. 혹시라도 이 성경 구절을 보면서, 단어의 뜻이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의 단어,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당연히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열매인 것입니다. 조금 더 이해가 쉽게 해석되어 있는 공동번역으로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공동번역>
이 단어들이 영어로 어떤 단어이며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 헬라어 원어로 어떤 단어이고 어디서 유래했고, 어떤 뜻으로 쓰이지는 등등을 설명해야 할 이유도 아셔야 할 필요도 당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복잡한 묵상이 진짜 필요한 ‘실천과 행동’을 가로막는 벽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성령의 열매'를 통해 꼭 알아야 할 놀라운 사실은, 여기 나오는 단어가 9가지이지만, 한 단어 안에 나머지가 모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갈라디아서 5장 14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 새번역>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씀이지 않습니까? 네.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처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출애굽의 시기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성령의 열매 9가지'를 대표하는 "불문율"이었습니다.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레위기 19장 18절, 새번역>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될 때, 신앙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베드로전서 4장 8절을 통해, 한 걸음 더 우리에게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는 말씀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배드로전서 4장 8절, 새번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회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은 특별히 새롭게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장 핵심은 말씀의 반복을 통해 발견하신 것처럼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 예수님이 복음서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실천한 사랑, 우리의 어린 시절에 교회와 공동체가 보여주셨기에 경험했었던 사랑, 바로 ‘그 사랑’의 실천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누고, 베풀며, 섬기고, 보다듬고, 안아주고, 공감하고, 위로하며,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녹여주었던 그 사랑, 어쩌면 지금은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랑’을 이제 현실로 꺼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안에 샘솟는 허락되어진 '기쁨'과 '평화'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게 베푸신 대로 나도 '인내'해야 하고,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베풀어야 하기에 '친절'해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선'을 행하며, '진실'하며, '온유'함으로 삶의 기초를 쌓아갈 때 그것이 모든 관계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윤활유 역할을 하며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시키는지 깨닫는 삶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제'라는 녀석의 놀라운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하면 이렇게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조금씩 완성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핵심 키워드인 '십자가'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초이면서, 가장 쉬운 방법인 이 '사랑'으로부터,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회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성경은 이것을 ‘육체의 열매’,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이미 내다 버린 옛 습관으로 설명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버린 것을 뒤돌아 봐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나에게 필요 없기 때문에 버린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방해만 되기 때문에 버린 것입니다. 반드시 버려야만 했기 때문에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아보여도 필요가 없기에, 방해가 되기에, 버려야 하는 것이기에 버린 것에 대해서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 버린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바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0절, 공동번역>
마찬가지로 이 단어들을 보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 말씀과 같이, 깊이나 넓이나 범위에 대해서 고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범위에 대해서는 사실 스스로가 이미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말씀에 대해서 성경이 정해준 분명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양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모든 일을 선하게 하려고 하므로,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8절, 쉬운성경>
사실 개인적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과 같은 안타까운 상황에 이르기까지 드러난 문제점 중 가장 부끄러운 점이 바로 위에 언급된 부분입니다. ‘선한 양심’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신앙 생활에 파선을 당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 새번역>
안타깝게도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지 말아야 할 저 일들과 이상하리만큼 가장 많이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말씀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우선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즐기면서 살아온 것에 대해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다 버려야 합니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도록 내 삶에서 삭제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금 '회복'의 길을 걸어갈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요한복음 8장 11절, 새번역>
다시, 똑같은 일을, 고의로, 반복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미 저질러 버린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죄와 뉘우침과 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을 뛰어넘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하면서, '회복'의 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회개와 죄와 회개와 죄, ‘회개하고 죄를 짓고, 또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를 반복한다면 아마 멀지 않아 '회복'이란 단어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었고, 진리로 자유를 누리며 사는 존재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흔들림 없이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 1절, 새번역>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즉 오늘 말씀,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열매에 대한 비교를 보면서 발견한 '선택과 집중'이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회복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과 집중'을 하나님께서는 '순종'이라고 부르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 '순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회의감과 소홀함을 느끼면서부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순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저에게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 해야 할 일에 대해서조차 ‘당위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그 설명 대신에, 오늘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질문을 던지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같이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오늘 주님의 날에 천천히, 깊게 묵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옳은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12장 54~57절, 새번역>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고 있는 듯 보이면서, 동시에 회복의 길을 선택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을 우리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독려하는 바울의 선포를 나누면서 설교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10월 10일 주일 남은 시간으로부터, 시작된 한 주간도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씀으로, 옷을 입고 ‘회복하여’, ‘회복된 후’에 해야 할 일들을 멋지게 행하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을 풍족하게 해 줄 성령의 열매를 가득 맺게 되시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로마서 13장 9~14절,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