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孝昌公園
□2026년 6월 17일 수요일
○ 효창공원은 조선시대 왕실 묘역이었던 효창묘에서 이름이 유래
효창원은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와 세자의 어머니 의빈성씨 묘가 있던 곳이다.
이 후 일제강점기에 서삼릉 권역으로 강제 이장 되었다.
효창원은 숲이 우거지고 경치가 아름다운 지역으로 조선시대 말 출입을 제한하는 하마비가 있었던 기록도 전한다.
효창공원 정문 창열문
효창공원 시계탑 아래에서 오후 두시에 모여 임정요인 묘역으로 이동한다.
중국 땅에서 순국한 이동녕,차리석 선생의 유해를 봉환 사회장을 치른 뒤
이 곳에 안장했고 귀국한 뒤 서거한 조성환 선생의 장례를 경성부민운동장에
서 사회장으로 치른 뒤 안장하였다.
이 곳이 예전 의빈성씨 묘역이다.
세분의 임정요인 묘역에서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는 소풍 회원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프래카드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삼의사 묘역으로 이동한다.
광복 후 김구 선생의 주도로 일본에 있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시고와 국민장을 치른 뒤 효창원 안의 옛 문효세자 묘역에 안장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유해를 찾지 못해 향후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기로 하고 세의사 묘 옆에 가묘를 만들었다.
이봉창의사는 김구 휘하 한인애국단에 들어가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했다.
윤봉길의사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천장절과 전승기념식에서 폭탄을 투척 의거를 성공시켰다.
丈夫出家 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나서는데, 어찌 살아 돌아 오리오)라는 말을 남기셨다.
백정기의사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로서 일본 천왕 암살 모의, 상해에서 일본 공사 암살 계획이 누설 되어 의거 실패 일본에서 순국 하셨다.
17만평 동양 최대 규모 동식물원 개원식에 참석하기로 한 이토히로부미는 나타나지 않고 순종 혼자 참석한 날이
1909년 11월 1일 오전 10시다.
이토히로부미는 10월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미 사살 되었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항거해 의롭게 돌아가신 삼의사께 묵념 하는 회원들
시원한 오미자 청을 나누어 마시는 회원들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는 회원들
백범 김구선생 묘역으로 오르는 돌계단 양 옆으로 반송이 줄지어 서 있다.
경교장 2층 방
이 방에서 백범 김구 선생께서 안두희의 총에 돌아 가셨다.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서 묵념 후
프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8분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 앞에서 필자와 소풍 밴드 유선종 동기
시원한 분수
작은 시냇물
무더운 6월
올해는 작년 보다 여름이 일찍오고 길어 진다는데 걱정이다.
문화탐방은 박물관 견학으로 한 여름을 보낼 생각이다.
화덕에서 구운 고르곤졸라 피자
정갈한 돈까스
까느보나라 파스타
문화탐방을 하면서 늘 뒤풀이 식당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운좋게 선배님 소개로 화덕구이 피자집을 찾게 되었다. 맛과 가격도 괜찮아 소개한다.
효창공원 근처에서 행사를 하게 되면 꼭 한번 찾아보시라고 연락처를 남긴다.
대광 동문 산악회를 월간 산에서 인정해주는 최고의 산악회로 만들어 주신 13회 최수남 선배님께 감사하며 프래카드를 들었다.
최수남 선배님 천국에서 영면 하소서~
효창공원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한 애국선열들의 유해를 모신 뜻깊은 장소에서 소풍동호회가 문화탐방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가 5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사랑하는 의빈성씨가 임신한 몸으로 세상을 떠났을때 정조의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 아니었을까
창덕궁에서 효창원까지 장례 행렬을 상상해보며 효창원 문화탐방기를 마친다.
대광31 소풍동호회
홍보
100명산팀
단장 박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