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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샛별교회

감정의 노예가 되면 무너지는 것들

작성자당진샛별교회ㅡ이손치과병원ㅡ소박한거인|작성시간26.06.22|조회수8 목록 댓글 0

[감정의 노예가 될 때 무너지는 삶의 세 가지 기둥]

 

첫째, 일관성을 잃어버려 신뢰의 자산을 파산시킵니다. 인생의 성패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기분에 따라 사는 사람은 삶의 기준이 외적인 환경과 내적인 감정의 변화에 수시로 요동칩니다. 성경 속 사울 왕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는 다윗을 사위로 삼고 축복했지만, 시기심이라는 어두운 기분이 몰려오자 단숨에 창을 던져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처럼 기분에 지배당하는 리더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되며,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줍니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오는데, 기분에 따라 원칙이 바뀌는 사람 곁에는 결국 진심 어린 동역자가 남지 않게 됩니다.

 

둘째, '훈련된 실력'이 아닌 '일시적 충동'에 인생을 맡기게 됩니다. 모든 위대한 성취는 '하기 싫을 때도 해내는' 절제와 훈련의 산물입니다. 다윗이 들판에서 사자와 곰을 막아낼 때, 그의 기분이 항상 용맹했을 리 없습니다. 두렵고 피곤한 기분이 들었을지라도 '양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원칙이 그의 몸을 움직였습니다. 반면, 기분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허락할 때만 움직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명을 외면하고,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공적인 자리를 이탈합니다. 이러한 삶은 결코 전문성이나 영적 깊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감정은 날씨와 같아서 수시로 변하지만, 인생의 항로는 변하지 않는 나침반(원칙)에 의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기분에 삶을 맡기는 것은 조종사 없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찰나의 감정적 만족을 위해 영원한 가치를 희생하게 됩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뼈아픈 실책이었던 밧세바 사건 역시 '순간의 기분과 욕망'에 눈이 멀어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을 망각한 결과였습니다. 기분은 대개 '지금 당장(Now)'의 만족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망가뜨리는 대부분의 유혹은 달콤한 기분의 탈을 쓰고 다가옵니다. 분노라는 기분에 휩싸여 쏟아낸 말 한마디가 평생 쌓아온 관계를 무너뜨리고, 나태함이라는 기분에 굴복해 보낸 시간들이 미래의 기회를 앗아갑니다. 기분은 우리를 자극에 반응하는 '동물적 존재'로 전락시키지만, 원칙과 신념은 우리를 사명을 완수하는 '영적 존재'로 격상시킵니다.

 

결론적으로, 기분은 '손님'이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시편을 통해 자신의 슬프고, 괴롭고, 억울한 '기분'을 하나님 앞에 가감 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쏟아낸 뒤에는 반드시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며 자신의 기분을 하나님의 '약속' 위에 재배열했습니다.

삶이 망가지지 않으려면 기분(Feeling)을 따라가는 삶에서 벗어나 기준(Principle)을 세우는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기분은 당신의 삶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결코 당신의 삶을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신념의 닻을 깊이 내릴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다윗과 같은 견고한 인생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창규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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