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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書 & Speech

신 인간혁명-명보(名寶) 54 ~ 59 중에서 (846호 13p)

작성자로즈캐슬|작성시간09.09.29|조회수64 목록 댓글 1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결의로 출발합시다."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참석자와 악수를 나누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부인부 다케시마 도시에가
달려와서 신이치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구레회관은 이쪽입니다.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다케시마는 신이치가 그대로 돌아가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틀림없이 모여 있는 모든 멤버들을 만나게 하려고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다케시마는 신이치의 팔을 잡아 끌며 걷기 시작했다.
"알고 있어요.  지금 갑니다."
신이치는 동지를 생각하는 다케시마의 진지함이 기뻤다.
오로지 스승을 끝까지 구도하는 마음에서 환희에 찬 전진이 시작된다.
다케시마는 몇 걸음 내딛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막무가내로 팔을 잡아
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며 팔을 놓더니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그건 그렇고 다케시마 부인부장은 자그마치 15년간을 힘든 속에서 잘 분투하셨군요.
고맙습니다."

다케시마는 15년간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문득 생각이 났다.   바로 1961년 야마모토 회장의
면접을 보고 구레지부 부부인부장을 맡고 나서, 부부가 함께 도쿄에서 열리는
본부간부회에 거의 매달 참석한 지 15년에 이른 것이다.
처음으로 그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조차 잊고 있던 일을 기억해준
신이치의 깊은 일념에 눈물지었다.

자기 일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의 존재가 인간을 분기시킨다.

구레회관 현관에는 둥근 박 모양의 장식물에서 '아버지 다녀오셨어요.'라고
쓴 현수막이 나와 있었다.  고등부원이 만들었다고 한다.  신이치는 모두의
깊은 진심에 합장하는 심정으로 현수막에 쓰인 글자를 응시했다.

신이치는 이곳에서도 모든 참석자와 함께 근행하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말을 
건네며 격려를 거듭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부인부원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모로 힘드시겠지만, 신심의 눈을 열어가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부인부원에게는 가족 사항을 물어보고, 자녀교육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자녀들 중에서도 특히 아들이 있으신 분은 분발해서 대학에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회에 나가 활약하는데에 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일은
자녀에게 신심을 끝까지 제대로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행복해지는 
근본적인 길은 신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자녀가 광선유포를 위해 싸운다면
이는 곧 부모의 복운으로도 이어집니다.   자녀가 신심에 눈을 뜨면, 절대로
부모를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참석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사이에도 8년 전에 남편을 여읜 부인과 자제를
대기실로 불러 격려했다.  그 남편은 공명당 시의회의원 스기무라 시치로였다.
지난 1967년 7월, 전국에서 365명이라는 사망자를 낸 집중호우가 규슈 북부에서
간토 지방을 덮쳤다.  구레도 고베 등과 더불어 큰 피해를 입어 88명이 사망하고
467명이 부상당했으며 절반 이상 파괴된 가옥도 557채를 헤아렸다.

이때 스기무라 시치로는 공명당 시의회의원 두명과 함께 산이 무너져 생매장된
한 가족들을 구출하러 갔다.   구출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대도
도착했다.   갇혀있던 4명 중 3명을 구출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여덟살 난 여자아이를
구출하는 데 다시 산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스기무라는 목숨을 잃었다.

스기무라 시치로는 
'대중과 함께 대화하고, 대중과 함께 투쟁하며, 대중 속에서 죽는다.'는 
공명당의 창당 정신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참으로 그 좌우명과 같은 삶을 살았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스기무라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즉시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또 다음달 오카야마에서 열린 회합에 스기무라의 가족들을 불러 격려했다.
스기무라에게는 자녀가 8명 있었다.  당시 성인이 된 자녀는 2명이었고, 막내는
네살이었다.  스미코 부인은 가업인 식당을 꾸미며 필사적으로 자녀들을 키웠다.

신이치는 언젠가 구레에 가면, 어떻게 해서든 스기무라의 가족들을 만나려고 생각했다.
신이치가 둘째아들과 함께 대기실로 들어온 스기무라 스미코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건강해 보이셔서 안심했습니다.   남편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습니다.
의원들의 귀감입니다.  진정한 공명당의 정신을 체현하셨습니다.
저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신이치는 또 구레회관 강당에서 근행회를 마치고 나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멤버를 격려하려고 계속 악수를 나눴다.   늦가을인데도 신이치의 이마에는 땀이 
배어나오기까지 했다.   신이치의 온몸에서 모두 분기시키고야 말겠다는 몹시 뜨거운
기백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불타는 정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타오르게 한다.

구레회관을 출발할 때도 각 방을 돌아보며 세심한 배려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금 제가 대기실로 이용한 방은 앞으로 부인부와 여자부가 쓸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제2 회합실로 쓰는 방은 남자부가 쓰면 어떨까요."
또 계단의 전등을 보더니 "조금 어둡군요.  사고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니, 
밝은 전등으로 바꾸지요."라고 조언했다.     큰 사고도 원인은 작은 일에 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에 주의하는 일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힘이 된다.

신이치는 회관 현관에 이르러, 놓여 있던 어항을 바라봤다.
도미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굉장하군요.  이렇게 살아있는 도미를
볼 수 있다니.  누가 준비했나요."      현지 간부가 이렇게 대답했다.
"청년부원들이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다며 잡아왔습니다."

신이치는 주고쿠방면 간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마운 일이군요.  어항을 쳐다보며 단지 '크고 근사한 도미구나.'라고만
생각해서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정말 고생한 분이
있습니다.  도미가 헤엄치는 모습에 배어있는 그런 노고 하나하나를 보지 못한다면,
진정한 지도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써야 하며,
음지에서 애쓰는 사람을, 그리고 그보다 더한 음지에서 묵묵히 분투하는 사람을 
찾아내어 한사람 한사람 온 힘을 다해 격려해야 합니다.  
간부가 그 점을 잊으면 이미 창가학회가 아닙니다.  냉혹한 관료주의입니다.
학회는 어디까지나 진정한 인간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야마모토 신이치가 탄 차가 서둘러 히로시마시로 향했다.
저녁 7시부터 히로시마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근행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도중에 열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꽃가게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으로
도로 쪽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부인들과 장년들 사이에 여자중학생과 
여자고등학생들 모습도 보였다.  신이치는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멤버'로군요.  잠시 차를 세워주세요."

그 사람들은 구레회관에서 열린 근행회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하다못해 이곳에서 야마모토 회장을 배웅하자.'며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곳에 검은색 자가용이 멈췄다.  차창이 열리며 신이치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환성이 일었다.   한 여자중학생이 안고 있던 백합 꽃다발을 건넸다.
신이치에게 주려고 준비한 꽃다발이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진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또 만납시다."
신이치는 이렇게 말하고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있던 멤버들에게 신이치가 보낸 과자가 도착했다.

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부인들이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지금 버스정류장에 '우리 멤버'가 5명 있지요.
염주와 염주보를 보내드리도록 하세요."
뒤따르던 차량에서 무전으로 신이치의 지시를 들은 동행간부가 염주 등을 들고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확실히 그곳에 있던 다섯명 모두 학회원이었다.
동행간부의 놀라움은 컸다. 

학회원은 모두 존귀한 불자(佛子)다.  모두 지용보살이다. 
그런 학회원을 찬탄하고, 지키고, 격려해야 광선유포라는 성업(聖業)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이치는 소중한 학회원을 한 사람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격려'의 
빛을 비추기 위해 온 생명을 완전히 불살랐다.   그렇기 때문에 학회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격려'는 창가의 생명선이다.
신이치는 그렇듯 회원을 엄호하는 정신을 어떻게 해서든 모든 간부에게
끝까지 전하겠다고 결의하고 있었다.

신이치는 히로시마문화회관에 도착해 근행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인사를 하며 이렇게 역설했다.     "진정한 불법은, 현란한 절 안에서
민중을 조아리게 하며, 승려가 가르침을 설하는 승려중심의 사원불법이 아닙니다.
대성인 불법은 민중불법입니다.  사회에서 분투하는 재가신도인 민중이 주역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생활하고, 상식 풍부하게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포교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지도까지 하며, 광선유포를 추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부처'의 생명을 갖추고 있다는 생명존엄 사상을 
널리 세계에 꿋꿋이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추진하는 이 운동은 전대미문의
불교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창가학회가 실천하는 광선유포 운동은
현대적 종교혁명의 새로운 조류이며, 인간불법과 민중불법의 개막임을
자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이치는 주고쿠방면 히로시마에서 있는 힘껏 격투하고, 이튿날 12일에는 
무대를 주부방면으로 옮겨 아이치와 기후에서도 온 힘을 다해 격려를 거듭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연말이 되어서도 전심전력을 다한 지도행(指導行)을 멈추지 않았다.

12월 3일부터 10일까지는 가고시마에 있는 규슈종합연수원(당시)에서
제1회 동계강습회를 지휘했으며, 나아가 24일부터 29일까지는 도치기와 군마에서
지도했다.

무너지지 않는 행복을 구축하려면 자기 생명을 연마해 빛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고자 신앙하며, 그 점을 가르치기 위해 지도한다.

톨스토이는 "생명은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졌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  모두 가슴을 활짝 펴고 행복하다고
잘라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정말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신이치는 세차게 불어대는 북풍 속을 달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도전하듯 새해를 향해 더욱 투지를 불태웠다.
끊임없는 도전과 투쟁 속에서만 생명이 환희하고 약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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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휘닉스 | 작성시간 09.09.30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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