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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書 & Speech

한국은 문화 대은의 나라 (847호 4p)

작성자로즈캐슬|작성시간09.10.13|조회수40 목록 댓글 0

"구국의 소녀가 평화와 행복의 초석이 되는 승리의 열매를 우리에게 가져왔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걸작 오페라 '오를레앙의 처녀(잔 다르크)'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세상에서 정의로운 신념을 지니고 꿋꿋이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만큼
강하고 고귀하며 아름다운 소리는 없다.

15세기에 프랑스에는 잔 다르크가 등장했다.
20세기에는 한국에 류관순이 등장했다.
시대의 밝고 환한 빛은, 소중한 사명에 춤추는 여성의 생명에서 발한다.
그리고 지금 창가(創價) 화양(華陽)의 멤버들이 인류가 우러러보고 칭찬하는
평화와 정의로운 연대를 확대하고 있다.

류관순 동상은 이제 막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서울 장충단공원의 한 모퉁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치마 저고리를 입은
차림으로 큰 횃불을 들고 발을 내딛고 있었다.
이 얼마나 자긍심과 용기에 불타는 모습인가!
'한국의 잔 다르크' 류관순의 눈동자는 서울의 맑은 하늘 아래, 
                                          머나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1990년 9월 22일,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도쿄후지미술관 소장 
'서양회화명품전'이 성대하게 개막했다.     이 '서양회화명품전'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본격적인 서양미술전이었다.    그 전날, 나는(이케다 선생님)
도쿄후지미술관 창립자로서 소년시절부터 동경하던 한국에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뎠다.
문화대은의 나라에 예술교류를 통해 적으나마 보은하는 길을 열 수 있어서 
내(이케다 선생님) 가슴에 만감이 서리는 심정이었다.

개막식 후, 저녁에는 귀국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그런 속에서 숙소 앞에 있는 가까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이 류관순 동상이었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류관순을 기리는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다.

삼월 하는 가만히 우러러보며 / 류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
푸른 하늘 그리다 숨이 졌대요 / … …  … … / 지금도 그 목소리 들릴 듯하여 / 
푸른 하늘 우러러 불러봅니다.

사랑하는 조국이 가장 큰 고난의 폭풍우를 맞고 있을 때 목숨을 바쳐 일어선 여성.
두려움 없는 그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지금도 깊이 울려 퍼지고 있다.

류관순은 1902년(다른 설도 있다.)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삼형제와 함께 토끼를 쫓고 밤을 줍거나 버섯을 캐며 야산을 뛰어다닌 활발한 소녀였다.
어머니 이소제는 이웃의 가난한 집에 음식을 나눠주는 자애 깊은 여성이었다.
류관순도 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들고 심부름 가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서 '배려하는 마음'을 이어받은 류관순은 이웃 아이들을 자주 돌봐주는
마음씨 고운 젊은 여성이기도 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의 은혜와 의리를 짓밟고 한국을 합병한다.
그 이전부터 악역무도한 지배가 류관순의 집안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버지 류중권은 높은 뜻을 품은 용감한 교육자였다.
지역 유지와 독립을 목표로 '민중 계발'에 힘썼다.    '교육이 곧 조국 독립의 기반'이라는
신조로 사재를 털어 흥호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경영이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체에서 돈을 빌린 아버지는 매정한 빚 독촉에 시달리다
스스로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으로 학교를 지켰다.
아버지의 이러한 불요불굴한 '신념 어린 불꽃'은 사랑하는 딸 류관순의 생명에 활활 타올랐다.

시대는 크게 변했다.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독립운동의 불길이 타올랐다.
이를 계기로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운동이 들끓었다.
이 운동은 단숨에 지방으로 확대됐다.   만세운동은 학생이 선구를 끊은 운동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여성이 결연히 일어선 각성운동이기도 했다.
봉건제도에 얽매여 있던 여성들이 태극기를 만들어 차례로 몸을 던졌다.

"만세."     이것은 불합리하게 유린 당한 조국을 단호히 지키고,
       인간 존엄을 나타내는 목숨을 건 정신적인 승리의 함성이었다.
사명에 불타는 류관순의 열성적인 호소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마을 사람들은 분기했다.
류관순의 진지한 대화가 마음을 열고 마음을 사로잡고, 마음을 움직였다.
류관순은 20일 동안 수백리를 걷고 또 걸으며 끝까지 말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이는 곧 운동의 확대에 집념을 불태운 류관순이 세운 신조였다.
마침내 천안군에서 가장 큰 장이 서는 아우내장터에서 궐기하기로 정해졌다.

                   <역사의 거인을 말한다,  2009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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