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이 20년에 걸쳐 집필하고 있는 대하소설 '신·인간혁명'. 소설 '신·인간혁명'을 제1권부터 새롭게 공부하는 데 이 연재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9회에서는 제2권 '용무'의 장에서 소개한 창가학회 삼대 회장과 나가노의 역사에 대해 배운다. 제2권 '용무'의 장 삼대(三代) 회장과 나가노의 인연(因緣) 나가노는 소설《신·인간혁명》을 집필하기 시작한 곳으로 창가학회 삼대 회장과 각각 깊은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되짚어본다. 소설《신·인간혁명》은 1993년 8월 6일, 나가노연수원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올해는 그로부터 21주년의 가절에 해당한다. '사제유연(師弟有緣)의 천지'를 긍지로 여기는 나가노현 창가학회의 역사는 학회창립(193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훗날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는 애제자인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제2대 회장)와 함께 1925년과 1927년, 1928년, 이렇게 세번에 걸쳐 가루이자와를 방문했다. 지리학자이며 교육학자이기도 한 마키구치는 교육의 현(縣)으로, 아름다운 산하로 둘러싸인 나가노현을 눈여겨 보았다. 마키구치 회장은 그 후에도 몇번인가 나가노를 방문했다. 1936년에는 1주일에 걸쳐 스와, 이나, 마쓰모토, 나가노, 우에다를 차례로 방문하고 각지 에서 좌담회도 개최했다. 또 '용무'의 장에도 나와 있듯이, "나가노현은 도다 조세이가 마지막 여름을 보낸 추억의 땅"이기도 하다. 서거(逝去) 전해인 1957년 8월, 도다가 가루이자와에서 보낸 날들은 소설《인간혁명》 제12권 '양풍'의 장에 그려져 있다. 젊은 시절의 이케다 회장도 발걸음을 옮겨 사제 (師弟) 대화의 한때를 가졌다. 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다 조세이가 저술한 소설《인간혁명》이 화제에 오르자 이케다 회장도 또한 스승의 생애를 전해 남길 소설《인간혁명》집필을 마음속으로 굳게 결의했다. 이케다 회장은 그 이전에도 몇번인가 소설《인간혁명》의 집필을 결의한 바 있다. 예를 들면 1951년 봄, 세이쿄신문 창간에 즈음해 도다가 연재소설《인간혁명》의 원고를 재빨리 읽게 했을 때 등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막연한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양풍) 명확하게 집필할 결의를 다진 때는 1957년 8월 가루이자와에서였다. 속편《신·인간혁명》이 같은 나가노의 땅에서 집필이 시작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 자기답게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학력이 없는 내가 남자부 리더로서 지휘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괴로워하는 멤버에게 "학력이 없다고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자신이 있는 장소 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에 승리하는 길입니다."라며 엄하 고도 따뜻하게 격려했다. 또 도다 선생님 슬하에서 일하며 촌음을 아껴 공부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계속 공부하는 것이 '힘 있는 민중의 리더'가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신이치는 '민중 속에서 태어난 진정한 민중의 리더'를 육성하려고 했다. (나가노) "동지는 간부의 신심을 따르는 법입니다. 인품을 따릅니다. 안간힘을 쓰며 허세를 부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 진지하게 성장을 바라는 진심 어린 지도 "어떤 일에도 겸허하게 진지하게 힘쓰는 것입니다. 그 다기진 모습에 감동을 받아 사람도 일어서고, 주위 사람도 협력합니다." 신이치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존경 받는 리더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여자부 리더에게 엄애(嚴愛)의 지도를 한다. 신이치가 말하는 리더의 참모습에,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겸허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신이치는 옆에 있던 장년부 리더 에게 "그녀는 성실합니다. 앞으로는 이 사람을 내 여동생이라 생각하고 협력 하고 응원해주세요. 부탁합니다." 하고 머리를 숙였다. 자신의 약점을 지적 받은 그녀는, 한때 당황하면서도 신이치의 진심에 크게 감동을 받아 성장을 새롭게 맹세했다. (도야마) "책략이나 방법이 아닙니다. 진지함입니다. 성실함입니다. 제목을 끝까지 부르며 모두를 행복하게 하자고 몸으로 부딪혀 나아갈 수 있는가, 없는가입니 다." ● 광선유포를 위한 노고는 모두 자신의 재산으로 임명을 받았지만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역직 사퇴를 자청한 부인부 리더에게 야마모토 신이치는 힘차게 말했다. "한번 임명된 이상, 당신에게는 지부부인부장으로서 모두를 행복하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신심도, 자신의 인간혁명도, 광선 유포의 사명을 자각하여 투쟁을 일으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투쟁하려는 의지가 있는 곳에 반드시 그 마음을 빼앗으려는 마(魔)가 작용한다. 따라서 자신의 일념이 정해지지 않으면 마에 지고 만다고 차근차근 말했다. "그것을 깨는 것이 제목이고, 미동도 하지 않는 강성한 신심의 일념입니다." 부인은 신이치의 격려를 받고 상쾌한 마음으로 새로운 전진을 시작했다."(지바) "광선유포를 위한 노고는 모두 자신을 빛내는 재산이 됩니다. 그러므로 학회 조직 속에서 열심히 노고하는 것입니다." ● 평소의 행동이 곧 신심 "저의 어머니는 신심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 하면 환희가 없어집니다." 신이치는 여자부 리더의 질문에, 자신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불법이란……' 하며 아무리 입으로 잘난 듯이 말해도, 어머니 쪽에서 보면 딸은 언제까지나 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말보다 어머니가 참으로 감동할 수 있는 상냥하고 사려 깊은 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회합에 상경할 때는 선물을 사가지고 가는 마음 씀씀이, 솔직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세 등 구체적인 행동을 통한 진심 어린 행동이 절복(折伏)으로 통한다고 가르쳤다. (고후) "신심이라고 해도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일상생활 자체가 바로 신심 입니다. 어머니가 보고 '내 자식이지만 정말 바르게 잘 자랐다. 훌륭하다.'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딸이 된다면 어머니도 반드시 신심을 할 것입니다." 소설《신·인간혁명》명언집(제2권) 어떤 조직이나 사회도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 다음 세대의 발전을 위해 또 커다란 목적달성을 위해 중요하다. 청년의 성장을 진심으로 염원하며 행동하는 야마모토 신이치와, 그 마음에 부응해 자기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에는 인재육성의 요체가 아로새겨져 있다. ● 연마. _한사람 한사람에게 맞춘 '지도'와 '격려'를 인재를 육성하려면 상대에게 맞는 임기응변의 대처가 필요합니다. 타성에 빠진 경우에는 각성을 촉구하고 경종을 울리는 지도도 필요하겠지만, 긴장한 사람에게는 편안함과 희망의 선율이 될 수 있는 격려가 없으면 안 됩니다. ● 연마. _도전과 체험이 진실한 힘을 기른다. 사람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주어 실제로 시켜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책임을 자각하고 진지해지면서 힘을 늘려가기 때문입니다. ● 연마. _인재를 발굴하는 것은 장점을 발견하려는 관점 인재를 찾아내는 안목이란, 남의 장점을 꿰뚫어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자기의 경애를 열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려면, 연마하는 쪽도 다이아몬드이지 않으면 안 되고, 몸이 가루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재산맥'의 원동력 '시나노대학교' 소설《신·인간혁명》의 완독을 통해 사람을 육성하는 '대학교'의 선구 '시나노대학교'. 그 진척에 관여했던 분들의 증언으로 되돌아본다. '읽음'을 통해 성장한다 소설《신·인간혁명》완독 운동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교'는 바야흐로 전국 각지의 학회조직으로 넓혀졌다. 그 선구적인 역할을 맡은 것이 나가노현 창가학회의 '시나노대학교'였다. 1977년 4월, 소설《인간혁명》완독 그룹으로 발족한 시나노대학교는 올해로 37년째를 맞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또 시나노 대학교에서 고안한 운영조직인 교장과 권책(卷責, 각 권 별 책임자)을 중심으로 한 운영과, 월 1회 정기모임의 내용 등 대부분은 각지 대학교에서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 틀을 만든 것이 시나노대학교였다. 1977년 4월부터는 새롭게《신·인간 혁명》을 완독하는 '창가시나노대학교'로 발족해 지금까지 졸업생은 족히 4만명 을 넘는다고 한다. 그 대부분이 지금 가정과 지역을 비추는 존재가 되어 활약 하고 있다. 시나노대학교에서는 멤버를 선발할 때 신입회원과, 새롭게 신심에 눈을 뜬 멤버 를 우선 선발했다. 그리고 대학교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완독'을 목표로 삼았다. 약 1년에서 1년 반을 거쳐 대학교를 수료할 무렵, 소설《인간혁명》을 통해 창가학회의 역사와 역대 회장의 사제(師弟)정신을 배운 멤버 대부분은, 스스로 자진해서 홍교에 힘쓰게 되었다. 소설《인간혁명》을 공부하면서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인간혁명에도 도전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교장'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교에 관여해 온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가자들의 소감 중에는 '작품 속에 그려진 체험에 감동했다.'는 말이 많았다. 소설《인간혁명》에는 학회 역사 속에서 태어난 감동적인 체험이 곳곳에 아로 새겨져 있다. 그렇기에 온갖 괴로움을 안고 있던 멤버가 같은 괴로움을 이겨 내거나, 고난에 도전한 체험담을 읽고 용기를 얻어 자연스럽게 극복해 가는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캠퍼스 없는 민중대학'에서 진심어린 육성 시나노대학교 초기에는 출석표, 완독표, 개최 알림 등도 일률적이지 않고 각 교장과 권책이 머리를 짜내 하나하나 손수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한 멤버가 완독할 때까지 가정방문을 거듭하며 계속 격려했다. 어느 리더는 졸업할 때까지 한 멤버에게 50통이나 되는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권책이나 교장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날마다 시나노대학교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 습니다." 하고 경험자가 이야기할 정도로 열심히 힘쓰는 사이에, 상대방을 생각 하며 쓴 편지가 자연스럽게 그만큼의 숫자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진심으로, 행사 진행요원과 대학교생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에는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있는 유대가 생겼다. 개중에는 처음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참석했지만 '학회라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조직이었구나.' 하고 느끼고 바뀐 사람도 있었다. 직접 관련이 있는 행사 진행요원뿐 아니라 조직의 모두가, 시나노대학교를 중히 여기고 응원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참가하는 여성이 많은 경우 에는 공부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기 모임 동안에 부인부원이 다른 방에서 아이를 대신 돌봐주었다. 또 글을 읽지 못하는 고령의 참가자가 손자에게 조금씩 글을 배워 마침내 소설《인간혁명》을 완독한 예도 있다. 시나노대학 교는 실로 '캠퍼스 없는 민중대학'이기도 했다. 부인부뿐 아니라 장년부와 청년 부도 하나가 되어 시나노대학교를 추진하는 가운데 각부가 서로 촉발할 기회도 많았다. "부모와 자녀가 각각 참가한 경우에는 어머니가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 에 딸이 분기해,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완독을 추진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교장 경험자) 인재를 육성하는 쪽도 또한 '학생들'에 의해 성장해 가는, 이상적인 배움의 터가 된 시나노대학교가 바로 나가노현을 '인재산맥'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나는 소설《인간혁명》을 집필하면서 은사와 대화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소설《인간혁명》을 통해 여러분과 대화하는 심정으로 써나갔습니다. 여러분은 부디, 여러분의 흉중에 자신의 《인간혁명》을 쓰십시오. 이것이 나의 진심 어린 바람입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이 시나노대학교 개교식에 보낸 메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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