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樹之嘆(풍수지탄) [자해(字解)] 바람 풍(風)/ 나무 수(樹)/ 갈 지(之)/ 탄식할 탄(嘆) [출전(出典)] 한시외전(漢詩外傳)) [동의어(同義語)] 풍수지비(風樹之悲) 풍수지감(風樹之感) [의미(意味)] 부모(父母)님 살아 계실 때 효도(孝道)하라. 돌아가신 뒤에는 효도하고 싶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말. 공자(孔子)의 제자(弟子) 중 한 사람인 중유(仲由)의 자(字)는 자로(子路)인데, 그가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부모를 섬길 때에 백 리 밖에 가서 쌀을 가져다가 봉양(奉養)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시고 저는 초(楚)나라 대부(大富)가 되어 곡식(穀食)을 쌓아 놓고 먹게 됐지만 이제 와서는 쌀을 져다가 효도를 하고 싶어도 되지 않는군요.” 어느 날 공자는 길가에서 울고 있는 우구자(虞丘子)라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까닭을 물었다. 우구자가 대답(對答)했다. “선생님,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子息)은 봉양을 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리지 않고 가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중유나 우구자의 경우를 보더라도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함에는 살아 생전(生前)에 해야지 돌아가신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漢詩外傳>에는 다음과 같은 시(詩)가 전한다.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아니하고)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코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리지 않으신다.) 중유에게는 백 리 밖에 가서 쌀을 지고 오는 것이 몸은 고달프더라도 부모를 위한 일이기에 오히려 즐거운 일일 수 있었고, 곡식 만석(萬石)을 쌓아 놓고 먹게 되었다고 해도 부모에게 봉양할 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슬픈 일이었던 것이다. 이는 슬프고 즐거운 것이 자기 한 몸의 궁(窮)하고 가득한데 있지 않고, 오직 부모가 계시고 안 계신 데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은 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죽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정작 그 죽음이 부모님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상상(想像)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병이 위중(危重)하여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부모의 죽음은 언제나 자식에게 있어서는 갑자기 찾아오는 기습(奇襲)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시에 기습을 당하고 나서야 땅을 친다. 땅을 치고 후회(後悔)를 하며, 불효(不孝)를 한탄하고 울어도 다 소용(所用)이 없는 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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