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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룡혈-좌의정 권상하묘

작성자올미|작성시간08.02.23|조회수342 목록 댓글 0

기룡혈 좌의정 권상하묘

 

답산일자 ; 2008년 2월 17일

위치 ;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

 

1. 답산 안내문

 

기룡혈 좌의정 권상하 묘  :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

서울출신. 아버지는 집의 격(格)이며, 우참찬 상유(尙游)의 형이다.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득세하여 송시열이 다시 제주에 위리안치되고 이어서 후명(後命)을 받게 되자,

유배지에 달려가 이별을 고하고 의복과 서적 등 유품을 가지고 돌아왔다.

송시열이 죽음에 임하여 남긴 유언에 따라 괴산 화양동(華陽洞)에 만동묘(萬東廟)와 대보단(大報壇)을 세워 명나라

신종(神宗: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견하였음.)과 의종(毅宗:나라가 망하자 자살함.)을 제향하였다.

숙종 재위 중에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고 그뒤 1689년에는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

1694년에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득세하는 등 서인과 남인간에 당쟁이 치열하였으나 이에 초연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1703년 찬선, 이듬해 호조참판에 이어 1716년까지 13년간 해마다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며,

그밖에도 1705년 이조참판에 이어 찬선, 1712년에는 판윤에 이어 이조판서, 1717년 좌찬성에 이어 우의정·좌의정,

1721년(경종 1)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나가지 않았다.

 

2. 답산내용

2004년에 사초를 하였다고 한다. 신후지지를 잡아 두었는데 아들이 먼저 죽어 바로 아래에 썻다. 그래서 아래 위로

봉분이 두개가 붙어 있다. 계좌정향, 내 산자락이 가서 안산을 만들었다. 기룡혈이다. 안산이 한번도 아니고 따블로

된 곳이다. 매우 특이하다. 말 안장에 해당한다. 앞에 안산은 목덜미 같고 다음의 안산은 머리같다. 두번째 안산에

오르니 파묘해 간 자리가 남아 있다. 제위치가 아니어서 이장한 것일까? 자리가 길죽 할 때에는 뒤가 명당이다.

우측에도 변형된 기룡혈 묘가 보인다. 쭉 가다가 솟았다. 기룡혈, 하도 힘이 쎄서 반역자가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내룡이 꺽어지고 있다. 반듯하게 오지 않았다. 꺽어진 곳이 결인이다. 타원형도 뒤에 혈이 있다. 기룡혈-말 안장

같이 보여야 한다. 내려가면서 이곳을 다시 쳐다보면 안장같이 보인다. 그리고 이곳을 거팔내팔이라고 하는데

실제는 거팔내인이라야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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