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를 찾아서

보통 사람은 못가는 곳을 갈 수 있는 것이 PD의 즐거움이요, 보통 사람들이 구태여 안가도 될 곳을 굳이 가야 되는 게 PD의 숙명이지요. 얼마 전에는 흉가 체험을 다녀왔습니다. 무슨 연유에선지 버려진 지 오래인 집, 비라도 오는 밤이면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도 하고 간혹 그 집에서 귀신을 본 사람의 오싹한 체험담을 수십 개쯤은 휘감고 있는 곳, 그 집에 얽힌 무시무시한 전설과 소문이 꼬리를 물고 새끼를 쳐 종내는 그 앞을 지나치기조차 꺼리게 만드는 장소, 흉가 말입니다.
벼락치기로 섭외한 흉가체험단 대학생들과 함께 찾아간 곳 가운데 충북 제천의 한 갈비집이었습니다. 건평 300평이 넘는 3층의 우람한 식당이 완벽한 흉가가 되어 몇 년째 버려져 있다는 겁니다. 가정집도 아니고 갈비집에서 말이지요. 그를 둘러싼 소문은 대략 처녀귀신에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손님들이 밥 먹으러 와서 여종업원에게 음식을 시켰답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음식이 오지 않길래 주인을 불러 따졌다죠. 그런데 주인 왈, “우리 집은 그런 종업원 없는데 누구한테 시키신 거예요?” “하여간 밥먹고 있는데 이상한 처녀가 옆에 와 앉더래요. 그리고 빤히 둘러보다 나가버리고..... 주인은 그런 아가씨 없다고 하고....” “밤중에 설거지하는 소리가 나더래나? 가보면 아무도 없는데 소리는 밤새 나더래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덕분에 예상 밖으로 쉽게 찾아간 늘봄갈비집은, 가로등도 몇 없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만 휙휙거리는 그 어두운 길가에 귀신의 성처럼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성한 유리창은 하나도 없고 간판은 떨어져 있고 과거 식당의 잔해와 유리 조각, 그리고 누가 했는지 모를 섬뜩한 낙서들로 공포를 자아내는 외경 앞에서, 체험 여학생들은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 뒷모습을 촬영하다가 우스워 죽는 줄 알았지요. 떤다 떤다 해도 발목부터 엉덩이를 거쳐 어깨까지 똑같은 진동으로 덜덜거리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저도 떨리긴 합디다. 정말이지 귀신이 무더기로 나와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풍경이었지요.
식당 내부는 더 귀신스럽더군요. 화장실 소변기까지 박살이 나 있고 주방이었던 듯한 공간의 벽은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갔을 때 하얀 불빛이 우리 앞을 휙휙 스쳐가 머리털이 서기도 했는데 그건 곧 앞으로 난 중앙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임을 파악했지요. 귀신아 놀자~~를 맘속으로 외치며 무서운 마음을 달래면서 이곳저곳을 누비는데 마침 서울의 우리 팀 작가가 섭외해 보낸 ‘퇴마사’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행은 유감스럽게도 들어오시자마자 저와 체험단 학생들에게 신뢰를 잃고 말았습니다.
“어 저거 봐라... 휙휙거리는 거 보이시죠? 아주 이젠 얘들이 대놓고 나오네. 우린 이 집에 두 번째 오는 건데 오늘은 카메라에 귀신 잡아 보려고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휙휙거림은 우리가 초저녁에 파악했던 자동차 불빛의 잔상이었지요. 체험 대학생이 제 귀에 대고 “저 사람들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에요?”라고 물을만큼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촬영 분위기는 흉가처럼 썰렁하게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퇴마사님은 진지하셨습니다.
“지난번에 저 위치에서 처녀귀신이 저를 공격했어요. 나이는 스물 둘? 하얀 치마에 하얀 상의를 입고..... ”
정작 공포에 질려야 할 학생들은 하품을 하고 민망해진 저만 열심히 촬영을 하는체 하고...... 분명한 것은 그 분들은 진짜로 이 집에 귀신이 있다고 확신하고 계셨고, 저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귀신의 실체를 잡겠노라며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오죽하면 촬영 끝내고 이동 중이던 제게 “우물에서 귀신이 나오는 모습을 찍었다”며 빨리 돌아오라고 긴급 핸드폰을 때릴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늘봄갈비의 처녀귀신은 실체였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였고, 그를 몰라 주는 사람들이 애석하기 그지없는 무언가였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또 한 곳은 경상북도 영덕의 흉가였습니다. 그 일대의 영덕 군민들도 그집을 모르는 분들이 드물더군요. 원래는 횟집으로 지어진 듯, 허물어진 수족관 흔적이 보였고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2층은 귀신쫓는다는 팥죽 자욱이 선연한 가운데 깨진 유리창과 산더미같은 쓰레기,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괴기한 분위기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1층에는 뜻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부처님의 계시로 보따리 싸서 이 집에 들어왔다는, 무속인인 듯 보이나 완강히 그 호칭을 거부하며 ‘불자’를 자처하는 부부였지요.
“이 집에 들어와서 제가 보름 전에 전기를 넣었어요. 그런데 전기공 하는 얘기가 이 집은 12년 동안 전기가 끊겨 있었대요.” 그러니까 사람의 발길이 끊긴 것이 12년은 족히 된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궁금한 건 왜 그렇게 됐을까? 그리고 당신은 무섭지 않은가? 그 질문을 했을 때 부부 중 아내가 담담하게 하는 이야기에 저는 소름이 돋고 말았습니다.
“지금 선생님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지요? 하지만 지금 이 집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우리랑 함께 있어요. 저는 부처님 원력 의지하니까 괜찮지만 보통 사람들한테는 이 집이 끔찍한 집이지요. 내가 왜 사람이라고 하냐면, 정말 사람처럼 이 집을 들락거려요. 수십명 수백명이.....”
대체 그 ‘사람’들은 왜 이 집을 드나든답니까? 그 질문에는 마을 사람들이 더 그럴 듯한 대답을 줍디다.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이전의 양동작전, 즉 진짜 작전을 적에게 숨기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몇 군데 해안 지역에 상륙작전이 펼쳐진 적이 있답니다. 이 집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사 해수욕장이 그 현장이었다지요. “그 LST에 탄 거는 국군이 아이라 학도병이었다카대. 훈련도 안받은 그 어린 아~~들이 상륙을 하다가 인민군들한테 몰살을 당했다 카더라고. 그 학도병들을 떼로 묻은 기 그 집 터라 카대. 그 언덕 전체가 묘지였다카거덩. 공사한다고 땅 팔 때 유골이 많이 나왔다 카더라고.....”
서늘해지는 등골을 감싸안으면서 분위기를 돌려 보려고 옆에 있던 대학생 체험단의 리더격인 학생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주 냉철한 듯한 어투로 말이죠. “넌 귀신 같은 거 믿냐?”
그러자 그 학생은 제 속을 들여다보듯이 말을 되받았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으니 결과가 생기겠죠.”
“이유?”
“PD님은 그 학도병들이 귀신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억울해서라도?”
“......”
“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귀신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요.”
“........”
또 한 곳의 흉가는 경산 일대의 대학생들에게는 꽤나 유명하다는 경산의 안경공장 폐허였습니다. 정말 안경공장이었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우리 체험단의 리더 학생은 그 음침하고 괴기스런 공장의 폐허에서 여러 번의 흉가 체험도 가졌다지요. 하지만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찾은 안경공장 폐허는 번듯한 무슨 병원의 신축 건물로 탈바꿈해 있었습니다. 낙심천만이었습니다만 또 다른 장소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공장 폐허의 옆에 자리잡은 수상한 동굴이었지요. 그 동굴의 입구에는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 피학살자 합동위령제”를 알리는 검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구요.
“6.25 때 이 지역에서 민간인들이 이 동굴에 끌려 와서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해요. 안경공장도 이 동굴 전설 때문에 더 무서워진게 아닌가 하는데....”
“대구도 공산군이 쳐들어왔나요?”
“아니오 대구는 공산군이 안들어왔지요 아마?”
“그럼..... 누가 죽였어요?”
“..........”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다가 말이 막혔습니다. 대체 수천 명씩이나 되는 민간인들을 누가 왜 죽였는가. 그들은 바로 대구 교도소의 수감자들과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던 ‘이적혐의자’들이었습니다. 아니 ‘(학살자가 보기에) 이적 행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었고 보리쌀 서말이라도 얻으려고, 또는 과거를 씻고 (보도..라는 말은 그릇된 길을 벗어난다는 뜻이라죠) 자유대한의 품에서 새출발하라고 윽박지르는 경찰에게 떠밀려 이름 석 자 올린 양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며칠 전 내린 비로 물이 괸 동굴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보았던 무질서한 흉가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정돈된 진열장과 사건의 기록이 A4 코팅 용지에나마 우리를 맞았으니까요. 그 진열장 안에는 54년 전 황망히 죽어간 사람들의 백골이 죽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두개골 한가운데 뚫린 총탄 자욱, 뭔가에 맞아 부러져 나간 다리뼈, 칠십 노인에서부터십대 아이들에 이르는 폭넓은 세대의 ‘이적혐의자’들의 뼈들이 반세기의 어둠을 걷고 나는 이렇게 죽었노라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진열장에 들어가지 못한 뼈들은 지금도 동굴 바닥에 널려 있었습니다. 백골에 뚫린 두 눈의 흔적이 저와 마주쳤을 때 느꼈던 공포감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겠죠. 체험단 여학생이 짜내듯 힘겹게 말을 내뱉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동굴 안에서 저는 귀신을 믿고 싶었습니다. 아니 귀신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50년간 동굴 속의 어둠에 묻혀 왔습니다. 자기 피붙이의 시신이 동굴 속에서 고스란히 썩어가고 있음에도, 세상 사람들은 마치 늘봄갈비에서 퇴마사의 “귀신 습격” 소리 듣고 코웃음쳤던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 피해자의 피울음을 박해하고 외면하고 무시했습니다. 퇴마사의 눈에만 보이는 처녀 귀신이 아니라, 실제 지금도 손에 잡히고 눈에 박히는 수천 구의 시신을 100미터 앞에 두고도 우리는 눈을 감고 있었던 겁니다. 귀신이라도 있었으면, 그래서 사람들 앞에 출몰하여 공포라도 안겨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 분명히 일어났습니다. 대구를 사수하는 참호의 이면에서, 전쟁의 광기에 미쳐버린 사람들은 자기들하고 다를 것이라고는 쌀에 뉘만큼도 없을 사람들에게 총알을 퍼붓고 칼로 찌르고 그 시신들을 폐광의 동굴 속에 차곡차곡 개고 있었습니다. 학살자들 가운데는 누구보다 교양도 있고 인간적 정리도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이웃집 아무개가 학비가 없어 대학을 못간다면 쌈지돈 털어 보태고도 그를 굳이 숨기려는 맘씨 좋은 반공청년단원도 있었을 겁니다. “ 빨갱이라고 다 나쁘겠느냐”며 이야기하다가 괜히 치도곤 맞은 선량한 경찰관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날 모두 악마가 되었습니다. 동네 아저씨가 몸서리치며 회고하던 대로, “올 때는 트럭 만땅, 갈 때는 두 세 명의 총든 사람” 중의 하나로, 수천 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악마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악마가 아니었지만 결단코 악마였습니다. “빨갱이들은 이것보다 더해~”하는 악마들끼리만 통하는 면죄부를 서로에게 발부하면서 자신들의 총질과 칼질을 합리화했을 겁니다.
미국의 럼스펠트라는 작자가 곤혹스럽게 고백한 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 행위”가 이라크 포로들에게 행해졌습니다. 그 주인공으로 지극히 선량한, 그래서 친구들이 가혹 행위 사실 자체를 믿기 거부한다는 잉글린드라는 여군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전쟁의 광기를 전쟁터에서 겪으면서, “쿠르드족을 독가스로 학살한 후세인의 개들” 따위는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임신 4개월의 몸으로 발가벗은 남자의 국부 가지고 장난을 치는 마녀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녀를 그리 만든 자의 입으로부터 “지극히 비 미국적인 행위자‘로 지탄을 받게 되었겠지요. 미국 대통령 부시가 그렇게도 쓰기 싫어했던 ’I'm sorry"를 ‘두 번이나’ 했다고 뉴스에 났더군요. 그 지경으로 여러 사람의 인격을 파탄낸 자에게 영어 회화의 기본인 I'm sorry는 그렇게 어려웠나 봅니다. 그나마 부시는 I'm sorry.라고나 했습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아직제대로 된 그 아임 쏘리를 들어 본 적이 없지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통령 사면권 제한에 대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와중에 또 하나의 법안이 역시 거부권 발동으로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그 법안은 ‘거창 사건 등 관련자 명예 회복 특별 조치법’이었습니다. 경산의 코발트광산과는 달리 그나마 빨리 세상에 알려졌던 거창 양민 학살, 국군 화랑부대 11사단 9연대에 의해 자행되었던 지리산 골짜기의 대학살의 희생자에게조차 명예 회복과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한국전쟁 중 민간인 희생에 대한 보상의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접하고 저는 그 어떤 흉가보다도 무서운, 커다란 흉가에 제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무섭고, 떼려야 떼어지지 않는 귀신이 살고 있는 흉가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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