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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의 바이올린

작성자유노바교|작성시간14.05.05|조회수107 목록 댓글 0

타이타닉의 바이올린 

날나리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가 무엇입니까 류의 질문을 받으면 하나 꼽는 노래가 있긴 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지. 이건 개신교 찬송가 제목이고 가톨릭에서도 동일한 가락의 노래가 있더라. 곡조는 아일랜드 민요라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매우 우리 정서에 맞아. 옛날 3.1절 특집극 같은 거 할 때 수원 제암리 교회에서 사람들이 타 죽어 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던 것이 강렬하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7년쯤 전 타이타닉이 개봉했을 때 이 노래는 또 한 번 감동으로 메아리치게 되지. 

영화를 안 보지는 않았을 테니 당연히 기억할 거다. 기울어져가는 배의 갑판 , 비겁한 몸부림과 의연한 용기가 엎치락뒤치락하던 아수라장 위의 갑판 위에서 울려 퍼지던 현악 4중주. 오르페우스의 천당과 지옥 서곡 등을 노래하던 악단이 연주를 마치기로 하고 헤어지던 순간 수석 연주자가 가볍게 바이올린을 퉁긴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어떤 이의 기억에 의하면 감리교 찬송가 ‘가을’이라고도 함) 이었지. 영화 속에서 연주 동료들은 문득 멈춰 서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지. 그리고 시작된 감동의 연주. 

그 연주가 흐르는 동안 선장은 선장실에서 최후를 맞고 가난한 이민자 엄마는 침대 위에서 아이들의 마지막 잠을 재우며 노부부는 이미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선실에서 꼭 끌어안고 최후를 기다리게 되지. 기억나니? 그 암담할만큼 부드럽던 현악의 선율들.. 이건 유명한 실화로서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악단은 뱃전이 기울어 중심을 잡을 수 없을 때까지 연주를 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무엇이 위로가 되었으리오마는 그래도 그 음악 앞에서 사람들은 마지막 경황을 차렸을지도 몰라. 그리고 가망 없는 삶에 대한 집착으로 추해지기보다는 침착한 죽음을 맞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이 악단의 수석 연주자는 월리스 하틀리라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사실은 네 명이 아니라 여덟명이었다는구나. 그들은 모두 구명 보트에 타지 않은 채 죽었지. 타이타닉이 가라앉은 뒤 시신 수습을 위해 파견된 배들은 328구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 월리스 하틀리의 시신도 있었어. 그는 바이올린을 넣은 가방을 목에 걸고 있었지. 바로 그 부력 때문에 하틀리의 시신이 물에 떠올랐던 게 아닌가 추정한다니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바이올린이 그 캄캄한 바다 속이 아닌 고향에서 그를 묻히게 해 준 셈이지. 이미 그의 이야기는 유명해서 고향 콜른에서 그의 장례식이 열릴 때는 4만 명의 인파가 운집해 그를 기렸다고 해. 

그런데 그에게는 약혼녀가 있었어. 마리아 로빈슨이라는 여자였지. 그래서 처음에 하틀리는 갓 약혼한 그녀를 두고 배에 타기를 꺼렸다고 해. 하지만 세계 최대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이라는 이름에 매혹돼 배에 탔던 것이지. 그리고 그 바이올린은 바로 약혼녀 마리아 로빈슨이 그에게 선물한 것이었어. 바이올린의 명품 마찌니 라벨이 붙어 있긴 했지만 복제품이었지. 로빈슨도 부자가 아니었을 테니까. 돌아온 바이올린 가방에는 월리스 하틀리의 이름의 이니셜 W,H,H가 새겨져 있었고 바이올린의 몸체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For WALLACE, on the ocassion of our ENGAGEMENT from MARIA" 월리스에게 우리의 약혼을 기념하며....... 서로의 이름과 ‘약혼’ (ENGAGEMENT)을 달콤한 연인을 떠올리며 대문자로 또박또박 써 놓은 한 여자의 흔적.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바이올린으로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다가 몸에서 떼지 않기 위해 목에 동여매고서 검고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 한 남자의 유물. 

바이올린은 약혼녀 마리아에게로 돌아왔고 그 사실은 그녀의 일기장에 남아 있지. “I would be most grateful if you could convey my heartfelt thanks to all who have made possible the return of my late fiance's violin." 즉 ”제 약혼자의 바이올린을 돌려 주는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마리아는 평생 혼자 살다가 1939년 예순 살을 앞두고 죽어. 그 뒤 유품은 자선단체에 넘어갔고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넘어갔다가 그 연주자의 제자에게로 넘어갔다가 그 제자의 아들이 발견하고 2006년 세상에 다시 나오게 돼. 그리고 7년간의 엄밀한 심사 끝에 이 바이올린은 진품으로 밝혀져. 바이올린 자체도 시기적으로 맞고 함유하고 있는 염분도 다른 타이타닉 유물들과 유사하고, 바이올린이 약혼자에게 돌아갔다는 사실도 입증돼 있고. 

무려 90년만에 다시 세상 밝은 곳으로 나온 하틀리의 바이올린은 15억원에 낙찰됐어. 복제품 아닌 진품 마찌니 바이올린보다도 더 비싼 가격으로. 하지만 나는 그것도 싸다고 생각해. 비록 소금물 먹고 파손돼서 연주할 수 없는 악기긴 하지만 세상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악기가 어디 있겠어. 지금쯤 저승에서 행복하게 재회하여 살고 있을 마리아와 하틀리 커플이 자신들의 사랑을 기억해 달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떠밀어 보낸 바이올린이지 않을까? 

이 바이올린을 처음 받았을 때 하틀 리가 멋지게 만들어낸 선율은 뭐였을까. 엘가의 “사랑의 인사”였을까.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었을까. 타이타닉 호에서 하틀리는 무려 3시간 동안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는데 그는 마리아와 함께 했던 노래도 능수능란하게 연주하지 않았을까. 그 바이올린이, 그 역사와 사랑을 흠뻑 먹은 바이올린이라면 15억 싸지, 헐값이지. 

호주의 내륙도시 브로큰 힐, 이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약혼 남녀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하틀리의 기념비가 서 있다고 해.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에서 인용한다. 감동이란 또 하나의 인류 공통 언어. 

“20세기 초 은과 아연 등을 채굴하는 광산으로 경기가 좋았던 이 도시는 스포츠 말고 별 다른 오락거리가 없었지만 네 개나 되는 밴드가 있어 나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어느 날 멀리서 전해온 타이타닉호 악사들의 미담에 감동한 이곳 밴드의 악사들이 기념탑 건립기금을 위한 모금운동에 앞장서게 되었고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1913년 12월 21일에 마침내 추모탑 제막식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제막식에서 네 개의 밴드가 참여한 연합악대는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악사들이 연주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찬송가 “Nearer, My God, to Thee"(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했고 기념비에는 그 찬송가의 가사와 함께 오선지에 그려진 네 소절의 악보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1912년 4월 10일 영국을 떠나며 우렁찬 기적을 울리던 타이타닉 호 안에서 약혼자가 선물한 바이올린을 턱 밑에 대고 가볍게 활을 움직이면서 대서양의 밤하늘을 매만지던 하틀리의 바이올린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닷새 뒤 그가 차가운 북대서양 위에서 사람들의 아우성을 배경음악으로 하고 연주하던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그리고 바이올린을 가방에 넣어 자신의 목에 걸면서 마리아 안녕. 하고 중얼거렸을 한 남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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