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학가에는 참 별의 별 일이 많았다. <응답하라
1988>에 비치는 흐뭇하고 정겨운 모습들도 삶의 일부이긴 했으나 쇳소리나게 살벌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비열한 풍경들도 엄연히
존재했다. ‘프락치’라는 단어도 그 영역이었다.
프락치란 경찰이나 정보기관 등 당국의 밀명을 받고 대학가나
노동 현장에 침투하여 소위 ‘불온분자’의 활동을 염탐하고 정보를 캐내는 이들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말로 하면 밀정쯤 되려나. 이 프락치 사업이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진행됐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몇십년 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정도에서나 나온다면
모를까.
달포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간만에 이 프락치 얘기가 나왔다. 화제의 중심이 된 건 법대 사회부장까지 지냈던 학생회 간부 프락치였다. 법학과는 사람이 많아서 누가
A반이고 B반인지 잘 가리지 못하는 특성이 있었고 또 상대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할 만한 이들은 적어서 누군가 학생회 활동을 하겠다고 나서면
기꺼이 받아들여지곤 했다. 문제는 법대 학생회 사회부장까지 하던 이가 학적(學籍)에 없음이 뒤늦게 밝혀진 거다. 이 사실은 이전에 그가 보였던
여러 의심스런 행동과 결부돼 곧 프락치라는 혐의로 굳어졌고 나도 이제껏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한 친구가 고개를 저으며 처음 듣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너보다는 그 사람을 잘 알고 교류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프락치는 아니었을 거야.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친구는 내쳐 이렇게 말했다.
대학생 행세를 한 거지. 그러니까. 대학생이 되고 싶었던 거지. 대학생이 돼서 수업도 듣고 캠퍼스에서 연애도 하고 데모도 하고 싶고. 근데 형편은 안되고. 우리가 프락치라고 불렀던 애들 상당수는 아마 그런 애들이었을 거야. 너희들 우리 때 대학 진학률이 몇 퍼센트였을 것 같냐. 30퍼센트가 안됐을 거야. 우리 또래 중 열 명 중 일곱 명은 대학생이 아니었다고.
그
말을 들으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종횡으로 가로질렀다. 또래를 만나면 학번을 따지는 습관이 얼마나 우스우며 486이니 586이니 하는
말이 어느 정도로 폭력적일 수 있는지 등등의 감회가 스치고 지나간 다음으로 그 프락치들이 떠올랐다. 걸핏하면 ‘백만학도’ 운운하던 시절 그
백만에 끼지 못했던 사람들, 무슨 사정으로든 대학 문턱에 들어서지 못했던 이들, 그 틈에 끼고 싶었으나 허락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면면이 눈 코
입 없이 허청이며 지나갔다. 그 가운데 몇 명은 가짜로라도 대학생이 돼 보고 싶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었을 터다.

당시 '가짜 대학생'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흔하게 등장하던 주제였다.
80년대의 날선 분위기 아래에서 학적 없음이 밝혀지고
가짜라는 것이 판명되고 나면, 그들은 프락치의 오명을 쓰기도 했고 비참하게 고개를 숙인 채 자기 학교 아닌 자기 학교의 교문을 나서야 했을
것이다.
며칠 전 천안에서 서른
살 난 공무원 지망생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곧바로 그 가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떠올랐다. 부모에게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월급을 받는 것으로 행세에 오다가 결국 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청년.
서른 살이면 아무리 줄여 잡아도 수험생 노릇을 4~5년은 했을 것이고 그 기간의 좌절과 고통을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백차만
보면 황홀해요. 저 차는 누가 탈까.” 노량진에 사는 경찰 시험 준비생의 가슴저린 인터뷰 내용처럼, 그 청년도 관공서를 출입할 때마다 분주히
움직이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공무원들을 황홀하게 바라보았을지 모를 일이다.
얼마나 그 자리에 서고 싶었을까. 결국 청년은 가짜로라도
공무원이 돼 보는 막다른 선택을 했다. 거짓으로라도 주위에서 던지는 축하와 환호를 들으며 현실을 잊고 싶었던 것인지, 밝혀지기 전에 취직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발버둥을 쳤던 것인지 죽은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미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2%로, 청년 9명 중
1명이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통계 기준이 변경이 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성별로 따져 봐도 남자는 10.6%, 여자
7.8%로 역대 최고이며 단순 노무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숨은 실업자'를 포함하면 체감실업률은 20%를 넘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런데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며 정부가 주창하는 노동
개혁의 핵심은 더 쉬운 해고다. 아무리 귀를 세우고 들어도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을 올리겠다는 것이고 청년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고를
보다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로 들린다. 아마 수삼년 뒤에는 저성과자로 해고된 후 새로운 직장에 취직했다며 1년간 가족들을 속여
온 가장이 모텔방에서 목을 맸다는 기사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앞서 말했던 프락치였는지 무엇이었는지 모를 가짜 학생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학교 앞 술집이었다. 술을 마시러 왔던 길에 한 동기가 가게 안에 있는 그의 존재를 눈치챘고 팽팽한 눈싸움(?) 끝에
그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동기 하나가 돌아서 나가는 그를 불렀다.
형.
그가 말없이 돌아보았다.
왜 그랬어요?
동기가 재차 물었을 때, 그는 딱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용의자 박해일의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분노 같기도 하고 후회 같기도 하고 실망 같기도 하고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한 그런 얼굴로.
거기에 좀 축축해진 눈망울까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건 정체를 들킨 프락치의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스스로
삶을 버린 공무원 지망생 청년의 마지막 얼굴은 어땠을까. 내 기억과 그의 얼굴이 자꾸만 겹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