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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지리(漁父之利)

작성자jdkwon|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1

권중달 교수의 역사칼럼(91)

어부지리(漁父之利)

권중달(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정치는 본질적으로 경쟁이다. 서로 다른 가치와 정책,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으로 변질되는 순간, 정치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아니라 공동체를 소모시키는 힘으로 바뀐다. 서진(西晉) 말기의 팔왕의 난(八王之亂)은 이러한 내부 분열이 국가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서진 혜제(惠帝) 때 일어난 팔왕의 난은 황후 가남풍(賈南風)의 전횡과 황태자 사마휼(司馬遹)의 폐위·살해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지적 장애가 있었던 혜제는 국정(國政)을 주도할 능력이 부족했고, 그 빈자리를 황후와 외척, 황족들이 메우면서 황실 내부의 권력 균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남풍이 후계 구도마저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 하자, 여러 제후왕은 “황실을 바로잡고 역적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왕 사마륜(司馬倫)은 가남풍을 제거한 뒤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라 명분을 잃었고, 이를 토벌한 제왕 사마경(司馬冏) 역시 권력을 독점하려 했다. 이후 하간왕 사마옹(司馬顒), 성도왕 사마영(司馬穎), 장사왕 사마예(司馬乂), 동해왕 사마월(司馬越) 등은 연합과 배신을 반복하며 서로를 공격했다.

이 싸움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도 최종적인 승자가 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 곧바로 다른 세력이 “정통성을 회복하겠다”거나 “역적을 제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봉기했다. 승리는 곧 다음 전쟁의 출발점이 되었고, 정치적 명분은 원칙이 아니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황실의 권위는 급속히 추락했다.

이 과정에서 형주자사 유홍(劉弘)은 황실 내부의 다툼이 가져올 파국을 정확하게 내다보았다. 그는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결국 제3자가 이익을 얻는다”는 변장자호(卞莊刺虎)의 고사를 들어 제후왕들을 경고했다. 이는 황실 내부의 권력투쟁이 외부 세력의 성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었다.

유홍의 경고는 곧 현실이 되었다. 황실 내부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끊임없이 뒤바뀌었고, 중앙정부는 지방을 통제할 능력을 잃었다. 황제는 정치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전락했으며, 실제 권력은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이 행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치열한 권력투쟁 속에서 황실 내부의 뜻밖의 승자가 나타났다. 유력 제후왕들이 서로를 제거하는 사이, 비교적 정치투쟁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던 예장왕 사마치(司馬熾)가 새로운 후계자로 부상한 것이다. 성도왕 사마영이 황태제(皇太弟)로 책봉되었다가 몰락하자, 사마옹은 그의 지위를 폐지하고 사마치를 황태제로 세웠다. 이후 혜제가 사망하자 사마치는 회제(懷帝)로 즉위했다.

그러나 사마치의 즉위는 승리라기보다 폐허 위에서 얻은 명목상의 권력에 가까웠다. 이미 황실의 권위와 국가의 통치 기반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진 뒤였다.

더 큰 문제는 진정한 수혜자가 황실 밖에 있었다는 점이다. 황실이 내부 투쟁에 몰두하는 동안 흉노계 유연(劉淵)은 한(漢)을 건국해 훗날 전조(前趙)의 기반을 마련했고, 촉 지역에서는 이특(李特)이 세력을 키워 성한(成漢)의 토대를 닦았다. 중앙 권력이 약화될수록 변방과 지방의 세력은 급속히 성장하며 새로운 질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진은 낙양(洛陽)과 장안(長安)을 차례로 상실했다. 회제는 유총(劉聰)에게 사로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서진은 사실상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사마예(司馬睿)가 남쪽 건업(建業)에서 동진(東晉)을 세웠지만, 중국은 오호십육국과 남북조로 이어지는 장기 분열의 시대로 들어섰다. 팔왕의 난은 단순한 황족 간의 권력 다툼이 아니라 통일 제국 서진의 붕괴를 촉진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오늘날 정치 역시 이 교훈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야 간 대립은 민주주의에서 불가피하지만, 그 대립이 정책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로 변질될 때 국정 운영 능력은 급속히 약화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각 진영 내부의 권력투쟁이다. 차기 권력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격화될수록 정치권은 국민의 삶과 국가적 과제보다 내부 경쟁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정치권은 종종 상대 진영의 실패를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팔왕의 난이 보여주듯,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데 몰두하는 순간 가장 큰 이익은 제3자에게 돌아간다. 그것은 해결되지 못한 경제·안보·사회 문제를 가지고 나타는 새로운 정치 세력일 수도 있다.

팔왕의 난은 분명한 경고를 남긴다. 내부 경쟁이 체제 전체를 소모시키는 수준에 이르면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실 내부에서는 사마치가 어부지리로 황위를 차지했지만,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진정한 승자는 황실 밖의 세력이었다. 그리고 유홍이 변장자호를 들어 경고했듯, 두 호랑이가 서로를 물어뜯는 동안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것은 언제나 싸움 밖에서 기회를 엿보는 제3자다.

우리는 이를 흔히 어부지리(漁父之利)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정치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세력은 누구인가. 야당 내부의 권력투쟁이 격화될 때, 여당 내부의 갈등이 증폭될 때, 여야가 협치의 가능성을 외면한 채 극한 대립을 이어갈 때 그 틈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그 답은 어렵지 않다. 정치적 갈등이 격화될수록 가장 먼저 이익을 얻는 것은 상대 진영의 실수를 기다리며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경쟁 세력이다. 그러나 더 큰 수혜자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일 수 있다. 기존 정당들이 정책 경쟁보다 정쟁에 몰두할수록 유권자들은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대안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제3지대나 비주류 정치 세력이 성장할 공간이 넓어지며, 국가적 분열이 극심해질 경우에는 외부 세력이 개입할 여지도 커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를 알면서도 정치가 같은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는 데 있다. 팔왕의 난이 보여주듯 내부 경쟁이 통제되지 않으면 체제 전체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국민은 정치의 승패가 아니라 성과를 원한다. 그러나 정치가 성과보다 정쟁에 몰두할수록 국민의 피로감과 냉소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정치를 외면한다. 정치인들이 서로를 이기는 데만 몰두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무력해 보일 때, 정치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교훈은 반복해서 우리를 찾아온다. 팔왕의 난이 남긴 가장 큰 경고는 분명하다. 내부의 적을 이기는 데 몰두하는 순간, 공동체 전체가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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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낙암 (정구복) | 작성시간 06:13 new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우리사회의 잘 낮은 니전투구에 어부지리를 얻는 자 누구일가, 현재 검찰청을 없애고. 삼 사관학교를 통폐합하교. 간첩을 잡는 방첩시를 해체한다면 국가의 존립에 큰 우려가 생긴다. 어부지리는. 바로 중국세력 침투를 염려해야할 것 아닌지요? 인구. 북중러의 연합세력. 더구나 오랜 전통문화의 공통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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