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나는 사람 사이에 혈연, 지연, 그리고 인연(人緣)이는 것이 있다. 인간의 만남에 자기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려운일이고, 소중한 것이다. 다음은 고전산문에서 옮긴 글이다. 저자의 진솔한 인간에 대하여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를 읽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만남은 많이 달라졌다. 유니세프를 보면 나이지리아 기아를 위해서 기부해달라는 광고가 뜬다. 이는 인간관계가 통신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만남을 상정할 수 없다. 더구나 유교는 현실적인 인연을 소중히 했을 뿐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만남의 장을 넘어서는 가름침을 주고 있으나 그런 소중함을 강조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이글은 여러분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 기른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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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어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워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남자가 낳은 아이와 기른 아이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과 사랑에 대해 깨달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는 비록 허구지만 그 안의 고민과 깨달음의 모습들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의 선택보다 기른 정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쪽으로 생각이 쏠리게 된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에게 있어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진 질문은 애초에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본 신정하의 글은 기른 정, 자신의 아이가 아님에도 친자식 이상으로 살뜰하게 키워준 유모의 삶과 그에 대한 신정하의 고맙고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다. 신정하가 3살 되던 해에 생모인 조씨가 세상을 떠났다. 조씨는 아직 어렸던 신정하의 양육을 집안의 종이었던 김옥선에게 부탁했고, 김옥선은 유모로서 몸이 약한 신정하를 친자식 이상의 공을 들여 키웠다. 신정하는 13세 되던 해부터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농암 김창협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했고, 김창협에게 그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친자식처럼 키운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유모도 뿌듯했을 것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앳된 목소리로 책을 읽던 아이가 어느새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이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올라 명성을 날리고 가문을 빛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정하는 연이어 과거에 떨어졌고 그때마다 유모는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는 아들의 계속되는 좌절을 바라봐야 했던 안타까움과 혹시나 자신이 못 해준 것이 많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미안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신정하는 25세 되던 해에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다. 하지만 유모는 이미 1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는 신정하가 눈물을 흘렸다. 유모에 대한 고마움과 살아 있을 때 아무런 보답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유모의 혼을 위로하고 자신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삭이고자 이 글을 써서 유모의 무덤 옆에 묻었다. 당시의 그에게는 이것이 유모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었다. 유모에게 그리고 신정하에게 두 사람이 피를 나눈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모에게 신정하는 아들이었고 신정하에게 유모는 어머니였다. 이 글을 보며 다시 한번 영화를 보며 생각했던 것을 떠올린다. 기른 정이란 무엇인가. 부모 자식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고, 안다 해도 몇 마디 말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이 글을 쓴 뒤 신정하는 몇 차례 부침(浮沈) 속에서도 예문관, 성균관, 홍문관 등 고위 관직에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할 청직(淸職)들을 연이어 맡았다. 하지만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한창 정국이 혼란스럽던 1716년에 탄핵을 당해 파직되었고 한 달 뒤 36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하에서 다시 만난 어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너무 일찍 온 아들을 보며 또 눈물을 흘렸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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