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전5:1-5
제목: 방관 죄
본문은 근친상간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기독교 공동체의 연대책임성을 강조하며 죄와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고 방조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 행위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본문 1절에서 아버지의 아내와 간음한다는 말은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와 간음한다는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나 혹은 숨겨놓은 아내를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두 번 음행한 것이 아니고,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했으니 데리고 산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륜의 음행이 아무 꺼리김 없이 통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도 교인들이나 혹은 선생이나 사도가 된 것처럼 스스로 교만해진 거짓교사들은 이 일에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죄짓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죄를 방관하는 사람을 책망하려는 것이다.
죄를 보고 방관하는 사람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방심부주의 해서 방관하게 된다. 내 일이 아닌데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고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예 자기 일 밖에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른척 할 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차를 몰고 가다가도 길 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전화를 받는다거나 자기 볼일을 다 보고 가는 사람이며, 이권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따지고 덤벼 여러 사람을 번거롭게 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별로 필요치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남의 죄도 용납하고, 자기의 죄도 용납하며 죄가 세상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통해서 염병처럼 죄가 세상에 펴지기 때문에 방조죄는 죄짓는 사람과 똑 같은 사람으로 취급을 하고 책망을 받아야 한다. 죄를 보고 침묵하는 것은 죄이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들보를 가진 사람이 티를 가진 사람의 죄를 비판하지 말락 했지 죄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바리세인들은 죄는 다 짓고 살면서 예수님을 비판하고, 자기들 보다 죄가 없는 사람을 비판하니까 들보를 빼고 티를 비판하라는 말씀이다. 만약에 죄짓는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하루아침에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건전한 비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건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통상적인 지식이 없거나 성령 충만 하지 않으면 비판할 능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성령과 말씀이 충만하면 죄를 미워하게 되고, 싫어하게 된다.
그 결과 죄짓는 사람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와 같은 건전한 비판을 통해서 이 땅에 은혜와 평화 그리고 참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다. 두 번째로 교만해져서 방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 짓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죄를 미워하고 싫어해야 하는데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죄를 용납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죄를 용납하는 사람을 교만해 졌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죄를 보고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된다. 교회가 죄 진자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처 주셨다. 죄진 사람을 혼자 조용히 찾아가서 회개를 권하고 듣지 않으면 두 사람이 가서 권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 앞에서 죄를 설명하고 출교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교회)를 거룩하게 하고 그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죄짓는 사람을 보고만 있으면 교만 죄를 짓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어쩌든 죄는 물리처 야 한다. 죄를 물리치지 않는 것은 교만해져서 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3절에 보니 바울은 몸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 죄짓는 자를 판단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찾아가서 죄짓는 사람을 판단해도 될 텐데 그 소식을 멀리서 듣자마자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같이 죄짓는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신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죄는 염병과 같아서 방관하면, 특히 교회 지도자가 방관하면 온 교회로 퍼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죄를 판단하는 것은 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성경을 떠나서 사는 것도 판단을 받아야 하고, 성경대로 목회를 하지 않고 인본주의와 물량주의로 목회하는 것도 판단을 받아야 한다. 이들은 교만해저서 하나님의 뜻과 은혜는 말하지만 실은 자기의 뜻과 자기의 아이디어 와 노력을 더 믿고 행하며,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고 그저 잘 하든 못 하든 사랑만 하는 무골호인 바보로 하나님을 만들어 교회와 나님의 나라를 물량의 경쟁지로 어지럽히고, 세상을 어둡게 하는 무리들이 도처에 꽉 차 있음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4절에 보면 죄짓는 사람을 주 예수의 말씀과 능력으로 징계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범죄자를 사사로이 판단하거나 감정에 치우치거나 편파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되고 말씀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정죄 할 때는 주님의 능력으로 정죄해야 한다. 오늘날은 교회가 정죄를 해도 다른 교회로 가면 그 교회에서 특사처럼 모셔드리고 직분으로 감투까지 씌어주기 때문에 범죄자를 다를 수도 없고 주님의 능력과 권능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범죄자가 착각하지 말 것은 그 교회를 떠난다 해도 자기가 진 죄는 여전히 살아서 따라다니며 자기의 영혼과 육체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5절에 보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라고 했다 다른 교회를 떠나서 환영을 받아도 쓸데없는 일이다.
차라리 그 교회에서 근신하고 회개하면 죄와 사단의 올무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회개치 않으면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육신을 멸한다고 했으니 병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죽게 한다든지, 혹은 가난하거나 여러 가지 문제로사는 것이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받은 사람은 주님이 재림 하실 때 부활해서 천국에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