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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과 부패(2026.6.5)

작성자알모|작성시간26.06.07|조회수15 목록 댓글 0

500글쓰기 32-5 성숙과 부패(2026.6.5)

    유럽인문아카데미 봄학기에는 쉴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한 편지> 원전강독 강의를 듣고 있다. 시작한지 몇 학기 째인데 지난 학기부터인가 줌 강의로 바뀐 덕분에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렵지만 번역본도 있는데다 강의를 맡은 이재영 교수님이 천천히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기 때문에 모르지만 흥미롭게 듣는다.
    <간계와 사랑> <빌헬름 텔> 등 몇 개의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괴테와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이끈 쌍두마차였던 쉴러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한 편지>는 미학 이론서이자 인간에 대해 고찰하는 철학서이기도 하다. 평소에 안삼환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선생님은 어떻게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철학을 가질 수 있는 건가 궁금했는데 쉴러 역시 그렇다. 그의 문학은 곧 역사요 철학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쉴러도 안삼환 선생님도 문사철(文學 歷史 哲學)이 따로도 선택도 아니었던 시대에 공부한 분들이어서 그런 것 같다.
    오늘 강의 내용 중에 교수님께서 "인간의 이성은 평생 성숙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셨다. 인간 정신의 이성적 영역과 감성적 영역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은데 '성숙'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성숙과 부패는 한 끗 차이인데 누구나 평생 성숙 과정을 겪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생 성숙 과정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이성은 어느 정도 지점에 도달하면 성숙을 멈추고 퇴화하거나 부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래 존경하던 분들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보고 놀란 경험이 몇 번 있다. 육체적인 노화로 인한 치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에 갇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결과 더 이상 신선하지 못한 상태가 되고 심지어 부패하는 경우를 봤다. 그런가 하면 아예 일찌감치부터 이성의 성숙이 아닌 부패가 시작되는 사람도 있다. 이성이 성숙을 멈추고 부패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다른가? 내 이성은 평생 성숙 과정을 멈추지 않을 것인가. 나 또한 다른 사람과 그닥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연민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성의 성장과 숙성은 끝나고 정신은 몸보다 먼저 부패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내 곁에는 70살이 넘어서도 80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숙성(성숙) 중인 멋진 선생님들이 있다.
    그분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누리면서 나는 "인간의 이성은 평생 성숙 과정을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 역시 그분들처럼 살고 싶어서 읽고 배우고 쓰고 나눈다. 오늘 마음에 새겨진 쉴러와 이재영 교수님의 말 몇 구절 역시 나를 위한 좋은 향신료가 되어줄 것이다. 이성의 성숙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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