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글쓰기 32-9 '제인 오스틴' 종강 그리고...(2026.6.9)
4월 7일에 첫 강을 시작했던 유럽인문아카데미 '망가진 세상에서 제인 오스틴 소설 읽기의 의미 찾기' 강의를 종강했다. 오사카 공항에 있는 카페에서 들은 첫 강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영소설'부터 <설득>을 읽고 들은 마지막 강의 '고립무원의 현실을 넘어 미지의 삶으로 나아가는 주인공'까지 9강이 모두 좋았고 내게 유익했다.
강의를 들은 덕분에 그동안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궁금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로맨스 소설인 것 같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학자들이 존중하는 이유가 궁금했고 작품에 담긴 제인 오스틴의 말을 좀 더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강의를 맡아주신 김명환 교수님이 조곤조곤 일관성 있게 설명해주신 덕분에 오랜 궁금함들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9주 동안 강의를 들으며 뜻밖에 얻은 것은 '책 읽는 방법'이었다. 내 멋대로 줄을 좍좍 쳐가며 책을 읽고 강의 때 교수님과 함께 책을 읽으며 '아, 이런 식으로 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구나' 생각하곤 했다. 책을 읽으며 또는 책을 다 읽고 정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강의를 들으며 점검하고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온라인으로 수강했기 때문에 교수님을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는데 훌륭한 강의 외에도 사소한 일로 이 분을 신뢰할 수 있었다. 공지한 대로 준비해서 읽었는데 교수님이 얘기하는 책과 쪽수가 달랐다. 나는 강의를 듣기 위해 새 책을 준비했는데 교수님이 갖고 있는 책은 구판이었다. 강의 중간에 어떤 학생이 말한 덕분에 본인의 책이 구판이라는 것을 알게된 교수님은 다음 시간부터 신판을 준비해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이게 쉬운 일 같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굳이 새 책으로 안 바꾸고 자기가 갖고 있는 책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분이 많다. 신판으로 바꿔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을 보면서 자기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과 수강생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9강 동안 교수님께 배운 '책(제인 오스틴) 읽는 법' 몇 가지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일단 책을 읽을 때는 마음에 남는 부분에 밑줄 치면서 메모 하기. 이건 아주 좋은 방법이다. 나도 이번 강의 때는 공책을 따로 준비하지 않고 아예 책을 공책으로 사용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마음에 남았던 부분을 소리내어 읽고 왜 그 부분이 마음에 남았는지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를 하곤 했는데 이렇게 밑줄친 부분을 함께 읽어나가는 방식도 무척 좋았다. 그런데 이건 토론을 주도할 뚜렷한 길잡이가 있어야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잘못 하다가는 우왕좌왕 중구난방할 수도 있다.
- 책을 다 읽고 이 책을 정의하는 제목을 붙여보자. 교수님의 경우에는 강의 제목과 같기도 했는데 독자들도 책을 읽은 다음에 이런 제목을 붙여보면 좋겠다. 교수님이 붙인 제목들이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여주인공을 창조하는 여성 작가의 자의식'(노생거 사원) '두 자매의 같고도 다른 사랑의 여정'(이성과 감성) '로맨틱 코미디의 배후에 도사린 냉혹한 현실'(오만과 편견) '얹혀 사는 처지인 볼품없는 여주인공의 인내와 성취'(맨스필드 파크) '에마와 주변 여성 인물들이 개척하는 삶'(에마) '고립무원의 현실을 넘어 미지의 삶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설득)
- 등장인물들에 대해 정리해보자. 등장인물들은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파악되는 거였는데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정리해주신 것이 뜻밖에 좋았다. 각각의 인물들의 역할과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작품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해에 도움을 줄 것 같다.
- 일단 책 속의 시공간으로 들어가자. 현재 또는 미래와 연결시키는 것은 책 속 시공간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충분히 경험한 다음에 할 일이다.
- 작가에게 다가가는 책 지도와 최선의 번역본이 필요하다. 귄터 그라스 책을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그의 대표작인 <양철북>을 집어든 사람들이 백전구십구패 하는 이유와 같은 거다. 그 작가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책, 그 작가가 쓴 최고의 책... 작가마다 다르다. 그리고 어떤 번역본을 읽느냐도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제인 오스틴처럼 저작권이 소멸된 작가의 경우에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 중에 골라야 한다. 교수님이 제시해준 제인 오스틴에게 가는 길은 <노생거 사원/을유문화사> <이성과 감성/민음사> <오만과 편견/민음사> <맨스필드 파크/민음사> <에마/민음사> <설득/민음사> 순서였다.
종강을 하고, 10년도 더 전에 했던 '제인 오스틴 북클럽' 기록을 찾아보았다. 2013년 5월에 책방에서 <제인 오스틴 북클럽> 영화를 보고 우리도 영화에서처럼 한 달에 한 권씩 읽고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누자며 만든 모임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동명의 북클럽 멤버들이 읽은 순서대로 책을 읽고 한 달에 한 번 만나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보고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 속 북클럽 멤버와 현실 속 우리는 <맨스필드 파크> <이성과 감성> <설득> <오만과 편견> <에마> <노생거 사원> 순으로 책을 읽었다.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스토리라인과 연관이 있는 순서였을 것 같다. 번역본은 현대문화센터라는 출판사 판본으로 읽었는데 지금은 안 나오는 것 같아 다행이다. 각자 한 권씩 책을 맡고 모임을 주관하는 방식으로 했는데 책에 대한 나눈 이야기는 잊었지만 모임 때마다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강의를 듣는 동안 언젠가 '제인 오스틴 북클럽 씨즌2'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권 한 권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모처럼 다시 읽은 제인 오스틴의 책의 세상은 2026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정했다. 괴테와 귄터 그라스와 브레히트와 쉴러의 틈바구니에서 만난 제인 오스틴은 따뜻했다. 강의 제목인 '망가진 세상에서 제인 오스틴 소설 읽기의 의미 찾기'의 의미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강의는 끝났지만 지금부터 읽어야할 책이 많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디어 제인 오스틴: 젊은 예술가의 초> <사랑을 담아,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게임이론가, 제인 오스틴>... 책방 매대에 쌓아둔 책이 수북하다. 이 책들을 얼추 다 읽고 다시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면 동네방네 방을 붙여야지.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읽을 사람 모이시오, 제인 오스틴 북클럽 씨즌2를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