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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그림형제민담]1년 365일 <그림 형제 민담> 읽기: 138 크노이스트와 세 아들(2026.6.7)

작성자알모|작성시간26.06.10|조회수7 목록 댓글 0

138 크노이스트와 세 아들(Knoist un sine dre Sühne)
 
<키워드>
장님, 절름발이, 벌거숭이(영) 바닥 이 없는 배, 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 복(씨) 장님이 토끼를 쏘고, 절름발이가 뛰어가 가져오고, 벌거숭이가 주머니에 넣었다(반) 크노이스트, 세 아들의 모험, 복을 받으려면(알) 바닥이 없는 배로 물을 건너, 서나무 성당지기, 키작은 관목 신부(현) 장님은 보고, 절름발이는 뛰고, 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는 복을 받고(결) 한 척은 물이 새고, 한 척은 가라앉고, 한 척은 바닥이 없었다 (인) 세아들, 커다란 강물, 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육) 세 아들,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 복을 받으리로다(희) 크노이스트의 세 아들, 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 복을 받으리로다(공) 138 장님 절름발이 벌거숭이, 서나무 성당지기, 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뿐)
 
<'크노이스트와 세 아들(Knoist un sine dre Sühne)'을 읽고: 2026.6.7>
- 이 이야기는 세상은 논리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는 걸까. 이 이야기속 등장인물들은 이상하게도 각자의 결핍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님이 사냥을 하고, 절름발이가 달리고, 벌거숭이가 주머니를 갖고 있다. 마치 인간은 모두 부족하지만, 세상은 꼭 논리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말해주듯이. 강과 배 부분도 흥미로웠다. 한 척은 물이 새고, 한 척은 가라앉고, 한 척은 바닥이 없었다. 그리고 세 형제는 바닥 없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현실에서는 가장 불가능한 선택. 그런데 그 배가 오히려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상상력 속에서는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가. 세상의 법칙이 멈춘 것 같은 이야기.(씨)
- 이 이야기는 너무 신난다. 장님이 토끼를 발견하고, 절름발이가 뛰어가 잡으며, 옷을 안입은 벌거숭이가 주머니에 토끼를 챙겨온다. 천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땅에서 일어난다.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너고, 큰 나무 속에 성당이 있고 그 성당 안에서 신부가 몽둥이로 성수를 뿌리며 "성수를 피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고 외친다. 그러나 삼형제가 불평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나 안보이는데 어떻게 쏴?" 라든지 "바닥이 없는 배를 어떻게 타?" 그들은 서슴지 않고 그냥 한다. 성수를 뿌리는 몽둥이를 피하느라 이리저리 허둥대겠지만 장님은 어떻게 피하지? 아, 참 장님도 볼 수 있지.오늘처럼 기분이 꿀꿀한 날에 읽기는 딱 좋은 유쾌한 이야기다.(인)
- 크노이스트의 아들 셋은 장님.절름발이, 벌거숭이 아들이다. 들판에서 토끼를 보고 장님이 토끼를 쏘고, 절름발이가 가져오고, 벌거숭이가 주머니에 넣었단다. 모두 장애를 가졌는데, 불가능한일들을 해내고 있다. 또한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넜단다. 숲속의 커다란 나무안에는 있는 큰성당안에는 신부가 몽둥이로 성수를 뿌리고 있는데, 이 몽둥이 성수를 피하는 자는 복을 얻는단다.성수와 몽둥이는 반대되는 의미인데, 성수를 뿌리는것은 죄를 사하여 주는 의미인건 같은데, 몽둥이 성수를 피해야 복을 받는다니 ... 아마도 크노이스트 아들 셋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고 불결하다고 외면한자들만이 몽둥이 성수를 피할수 있을것 같다. 이들보다 죄지은 자들이 더 많을테니~. 정말 내용이 어렵다.(희)
 
<'크노이스트와 세 아들(Knoist un sine dre Sühne)'을 읽고: 2024.12.8>
- 장님이 토끼를 쏘고, 절름발이가 뛰어가 가져오고, 벌거숭이가 주머니에 넣었다./세 형제는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넜다./성당 안에는 서나무 성당지기와 키작은 관목 신부가 있었다.: 말이 안되는 말이 재미있다. 그러니까 크노이스트의 세 아들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들인가 보다.(현)
- “장님이 토끼를 쏘고, 절름발이가 뛰어가 가져오고, 벌거숭이가 주머니에 넣었다.“: 크노이스트의 세 아들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보이지 않아서 보이는 사람보다 더 뛰어나기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을까. 절름발이가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보다 더 잘 뛰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벌거숭이가 옷 입은 사람보다 더 물건을 잘 간수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얼핏 보면 불가능한 일을 한 것 같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것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바닥이 없는 배를 탔으니 강물을 건너는데 더 철저한 긴장감으로 임했으리라. 바닥이 있는 배를 탔다면 오히려 방심하기 좋았을 것이다. 성당에서는 성수를 받지 않고 피함으로서 스스로 복을 받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했으리라. 그만큼 굴러들어온 복은 가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은)
- 장님이 쏘고, 절름발이가 뛰어가 가져오고, 벌거숭이가 주머니에 넣었다.: 살다살다 이 웃기는 이야기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게될 줄은 몰랐다. 크노이스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장님이고 다른 하나는 절름발이고 막내는 벌거숭이였단다. 들판에 나갔는데 장님이 쏘고, 절름발이가 뛰어가 가져오고, 벌거숭이가 주머니에 넣었단다. 돌아오는 여정도 만만치 않아 형제는 바닥 없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넌다. 전에는 읽으며 웃고 말았던 이 짧은 이야기를 읽는데 오늘은,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지르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고 여전히 말도 안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자들 생각이 난다. 키 작은 관목 신부가 몽둥이로 성수를 뿌리며 외친다. "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는/복을 받으리로다." 국민의 힘을 우습게 알고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 자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외치고 싶다.(미)
- 신부가 몽둥이로 성수를 뿌리며 말했다. “성수를 피할 수 있는 자는 복을 받으리로다.”: 크노이스트의 세 아들은 들판에 나가 토끼를 발견한다. 장님인 아들은 토끼를 쏘고, 절름발이 아들은 뛰어가 가져오고, 벌거숭이 아들은 주머니에 넣었다. 가다 보니 커다란 강물이 길을 가로막았는데,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넜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숲의 성당에 서나무 성당지기와 키 작은 관목 신부가 있었다. 당연히 세 아들은 신부의 몽둥이 성수를 피해 복을 받았을 것이다. 언제나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눈앞에 닥친다. 피해 간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쉬운 길을 찾는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니다. 믿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맞닥뜨리며 헤쳐가는 수밖에 없다. 그럼 어느샌가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 나의 부족함을 가리고 속이는 일이 있었다면 몽둥이를 피할 수는 없으리라. 순리대로 잘 살아왔다면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다.(공)
- 크노이스트에게 세 아들이 있는데 하나는 장님이고 다른하나는 절름발이고 막내는 벌거숭이였다.: 길을 떠나면서 점점 더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고 세 아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해결해간다. 어쩌면 세 아들들은 길을 떠나면서 마음을 비우는 것과 함께하는 방법을 습득해가는 것은 아닐까? 신부가 몽둥이로 뿌리는 성수를 피할수있는 자는 복을 받으리로다. 라는 마지막 글귀는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가벼운 삶을 꿈꿔본다.(빈)
- "세 형제는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물을 건넜다.": 크노이스트와 그의 세 아들 장님, 절름발이, 벌거숭이. 이 세 아들은 누구보다 용감했으나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힘을 모아 토끼도 한 방에 잡을 수 있고,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커다란 강물을 건널 수 있으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숲을 통과할 수도 있었다. 아마 그들은 누구보다 용감하니 성수를 피해 복을 받았을 것 같다. (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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