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Die Nachricht von der Ernennung überraschte uns mittags, als ich mit Bernd, meinem jungen Mitarbeiter, in der Galerie einen Imbiß nahm und dabei mit halbem Ohr Radio hörte.
수상 임명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들은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나는 젊은 부하직원 베른트와 함께 화랑에서 간단히 식사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중이었다.
(히틀러가 제국 수상이 된 해. 화자는 어느 화랑 주인. 그른 막스 리버만 부부와 부란덴부르크 성문을 통과하는 나치의 행렬을 지켜본다.)
<그라스의 세기>
- 그 광경, 그 광포한 자연의 그림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깊은 감동을 느꼈음을 나는 마지못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그림으로부터는 우리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이 보이는 일종의 의지가 발산되고 있었다. (숲)
- 구역질나는 천민들의 대열! 하지만 점점 더 커지는 외침 소리는 흥분을 자아내기에 족했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나는 그 당시에 자신이 매료되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한 순간의 전율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시절을 겪은 브레히트는 끊임없이 외친다. "네가 본다구! 뭘? 너는 아무 것도 못 봐. 단지 멀뚱히 쳐댜볼 뿐이야. 그건 보는 것이 아니야. Du siehst! Was siehst du? Du siehst gar nichts. Du glotzt nur Glotzen ist nicht sehen. "(<갈릴레이의 생애>에서/이승진 옮김)
- 마치 니스칠로 번쩍이는 싸구려 역사화(歷史畵)로부터 고개를 돌리듯이, 그 역사적 광경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선생님은 베를린 방언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구역질이 올라올 때꺼정 밥을 처먹을 수는 없갔지."(미. 영. 반)
- 벌 써 몇 달 전부터 나는 히틀러의 장악을 예감하고, 특히 불순한 것으로 여겨지는 그림들의 일부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놓았는데, 키르히너, 페히슈타인, 놀데의 몇몇 그림들이 그것들이었다.: 나치는 퇴폐미술로 분류된 작품들을 없애고 작가들을 탄압하거나 처단했다. 키르히너는 1차 세계대전 참전후 트라우마를 겪고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나치의 합병 소식을 듣고는 두려움과 절망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키르히너와 달리 페히슈타인과 놀데는 나치의 시대를 (숨어서든 피해서든 ) 결국 살아내고 제 자리를 찾았다고한다. 나치아래 억압받은 예술가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싶다.(현)
- 아, 가죽끈 장식을 하고 있는 그 젊은 얼굴들에 담긴 그 경악스러운 진지성이라니!(탱)
- 그와 동시에 10만여 개의 햇불에서 치솟아오르는 연기와 악취가 우리들한테로 훅 끼쳐왔다.
이 무슨 수치인가! 그 광경, 아니 그 광포한 자연의 그림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깊은 감동을 느꼈음을 나는 마지못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희)
- 벌써 몇 달 전에 나는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예감하고 특히 불순한 것으로 여겨지는 그림들의 일부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겨놓았는데 키르히너, 페니슈타인, 놀레의 몇몇 그림들이 그것들이었다.: 히틀러가 제국 수상이 된 해. 화자는 어느 화랑 주인으로 막스 리버만 부부와 브란덴부르크 성문을 통과하는 나치 행렬을 지켜보았다. (촌)
- 선생님께서 자신의 저택 옥상을 나서시자, 마르타 여사가 그분의 팔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노부부가 망명을 떠나도록 설득하기에 적합한 단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소용이 없었다. 그분들을 다른 땅에 옮겨 심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
<나의 세기>
- 10월 29일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 공표했다.
1. 한글 마춤법(철자법)은 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
2.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3.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위의 말에 붙여 쓴다.
마춤법(1933)-----> 맞춤법(1940)(숲)
- 1월 30일,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취임했다.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있었다. 이 일을 빌미로 히틀러는 반대세력 숙청작업에 들어갔다. 브레히트가 상황 파악을 하고 다음날 독일을 떠났다.("그 후 히틀러는 방화를 공산주의자의 소행이라고 몰아가면서 대대적인 좌파인사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브레히트가 즉각 떠나지 않았다면 1933년 이후의 브레히트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에요." 이승진 선생님 증언) 3월 5일, 바이마르 공화국 마지막 총선거가 치러졌다. 3월 22일, 다하우 강제수용소가 세워졌다. 4월 26일, 독일에서 게슈타포가 결성되었다. 5월 10일, 나치당이 조직한 단일 노동조합 독일노동전선 창립. 베를린 훔볼트 대학 앞 광장에서 책을 불태웠다. 7월 14일, 나치당을 제외한 정당을 법으로 금지했다. 10월 14일, 독일이 국제연맹을 탈퇴했다.
히틀러와 나치당의 궤적을 보니... 할 말이 없다. 리버만은 틀렸다. 구역질이 올라오면, 토하고, 소화제 먹고라도, 다시 또 다시... 쳐먹었을 놈들이고 그렇게 했다.(알)
- 나치들이 베를린의 광장(“분서광장”)에서 수백명의 작가들과 학자들의 책을 불태워 없앴다. 1933년 분서사건은 기원전 212년 진시황의 분서갱유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파묻음)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를 위해 작가와 학자들뿐 아니라 대중을 파묻은 것이다. (현)
- 히틀러가 독일 수상으로 취임했다. 나치들은 예술 작품들을 불태웠다. 이태준은 <꽃 장수>를 1933년 어린이 잡지에 발표했다. 좋은 문학작품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 남는다. 예술가들은 세대를 넘어 희망과 저항의 메시지를 전한다. 역사는 이렇게 계속 쓰여간다. (탱)
- 4월26일 독일비밀경찰 게슈타포 창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독재를 위해 앞장서서 잔인한 고문과 탄압을 한 것으로 악명 높은 조직이며 홀로코스트에서도 직접적으로 가담한 전쟁범죄 집단이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주요 책임자들은 체포되어 단죄되었으며 수장 하인리히 뮐러를 비롯한 일부 게슈타포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주. 죄질이 경미하거나 이용 가치가 있을 경우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에 채용되기도 하였다(희)
-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하고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가 이 철자법에 따라 신문을 발행하였다. 이광수가 <유정>을 발표하였고 <킹콩> 영화가 상영되었다. (촌)
- 1월 30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국가인민당과 나치가 연정에 합의, 대통령 지명에 의하여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에 취임했다. 3월 5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총선이 치뤄졌는데, 나치당은 43.9% 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3월 24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수권법이 가결되었다. 이로 인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졌다. 4월 26일 나치 독일에서 비밀경찰의 대명사인 게슈타포가 창설되었다. 7월 14일 나치 독일에서 나치 당을 제외한 정당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 숨이 막혀온다. (영)
- 우리 아빠 이기식 님이 태어나신 해. 살아계시면 92세 되었을 텐데 1986년 1월 아빠 나이 53세에 돌아가셨다. 대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대전사범학교를 다녔고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일찍 퇴직하셨다. 그림 잘 그리고 글씨 잘 쓰고 시를 좋아하고 한자를 많이 알고 백과사전 같았던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돌아가시기 전에 너무너무 형편이 어려워 고생을 많이 하셨다. 지금도 아빠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내가 아빠를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반)
- 3월 일본은 국제연맹이 만주 침략을 문제 삼자 탈퇴하였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나치 독일이 세워졌으며 10월 국제 연맹에서 탈퇴한다. 37년 일본은 중일 전쟁을, 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