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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와 나의 세기, 1959년

작성자알모|작성시간25.07.31|조회수94 목록 댓글 0

1959년
Wie wir einander, Anna und ich - das war dreiundfünfzig - , im januarkalten Berlin auf dem Tanzboden der <Eierschale> gefunden hatten,......
안나와 내가─1953년의 일이었다─1월의 차디찬 베를린의 <달걀 껍질>이라는 댄스 홀에서 서로를 발견했던 때처럼, 우리는 그때 춤을 추고 있었다.

(양철북이 출간된 해.
그라스 부부가 루흐터한트사에서 마련한 파티에서 춤을 춘다.)


<그라스의 세기>
- 그러나 안나와 나는 오래 전부터 늘 춤을 춰왔고, 나중에 우리가 사실 명성을 얻긴 했지만 춤을 추면서 점점 더 할 말이 적어졌을 때도 춤을 추었다. : 귄터 그라스의 첫번째 아내 안나 마르가레타 슈바르츠는 무용수였다.<양철북>이 나오고 문학계에서 성공 예감의 축배를 들 때도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춤을 추었다는 귄터 그라스. 사람에게는 세상의 시끄러움 속에 자신을 지키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영)
- 결과적으로 우리는 둘이서 이 성공을 체험하고 맛보며 시식을 하고 또다시 그 뒷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삶의 희노애락, 굽이굽이를 마음 맞는 배우자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절반 이상은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현)
- 그것은 친구네 집에다 어린 쌍둥이 아들인 프란츠와 라울을 맡겨놓고 파리에서부터 여기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춤을 연습하고 있던 안나와 나를 말하는 것이었다.: 귄터 그라스 안에 '오스카 마체라트'가 있었듯이, 오스카 마체라트 안에도 '귄터 그라스'가 있다.(알)
- 그러나 안나와 나는 오래 전부터 늘 춤을 춰왔고, 나중에, 우리가 사실 명성을 얻긴 했지만 춤을 추면서 점점 더 할말이 적어졌을 때도, 춤을 추었다.(미. 숲)
- 안나는 내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파리 클리쉬 광장 주변에 있는 마담 노라한테 가서 매일같이 발레의 바를 잡고 비지땀을 흘렸다. 마침내 나는 마지막 쪽까지 타이프를 끝내고 루흐터한트 출판사가 있는 노이비트로 교정쇄를 보냈다. 책의 표지도 다 그려져서 오스카의 두 눈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 책보다 먼저 TV를 통해 알게 된 영화 <양철북>, 오래전에 봤음에도 주인공 오스카의 얼굴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잊히지 않는다. (공)
- 안나와 나는, 늘 춤을 추면서 서로를 찾고 발견했듯이, 우리 젊은 날들의 리듬을 간직하고 있는 「딕시랜드!」라는 음악에 맞추어서 발바닥이 뜨거워지도록 열심히 춤을 추었다.: 《양철북》이 출간된 해의 이야기. 파리의 구멍 같은 축축한 방 안, 물이 흐르는 벽 앞에서 한장 한장 소설을 써 나가며 그 고난의 길을 부부는 함께 걸어왔고 서로 발바닥이 뜨거워지도록 열심히 춤을 추었다니 멋지다.(반)
- 딕시랜드 음악과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가 그 소리들보다 더 쳤고,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으며, 무중력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두툼한 730쪽짜리 책에 대한 마음의 짐이 춤추는 중에 모두 사라졌버렸고...(희)
- 안나와 나는 늘 춤을 추면서 서로를 찾고 발견했듯이 우리 젊은 날들의 리듬을 간직하고 있는 '딕시랜드'라는 음악에 맞춰서 발빠르게 뜨거워지도록 열심히 춤을 추었다.: 그라스 부부가 루흐터한트사에서 마련한 파티에서 춤을 춘다.(촌)
- 마침내 나는 마지막 쪽까지 타이프를 끝내고 루흐터한트 출판사가 있는 노이비트로 교정쇄를 보냈다. 책의 표지도 다 그려져서 오스카의 두 눈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그 출판업자가(이름이 라이퍼샤이트였다) 우리를 프랑크푸르트의 서적 박람회에 초청하여, 결과적으로 우리는 둘이서 이 성공을 체험하고 맛보며 시식을 하고 또다시 그 뒷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옥)
- 안나는 내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파리 클리쉬 광장 주변에 있는 마담 노라한테 가서 매일같이 발레의 바를 잡고 비지땀을 흘렸다. 마침내 나는 마지막 쪽까지 타이프를 끝내고 루흐터한트 출판사가 있는 노이비트로 교정쇄를 보냈다. 책의 표지도 다 그려져서 오스카의 두 눈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탱)


<나의 세기>
- 미국 마텔에서 바비인형이 출시되었다.할리우드에서 영화 <벤허>가 제작되었다. 어린 시절 마론 인형을 가지고 놀며 가족들과 함께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벤허> 를 본 기억이 난다. (영)
-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공식 개관했다.: 구겐하임 가문도 유명하지만,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운 페기 구겐하임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귄터 그라스나 구겐하임 같은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업적을 남기라고 신이 내린 선물같다. (현)
-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2001년 12월에 우리 가족은 난생 처음으로 여권과 비자를 만들어 하와이와 미서부 패키지 여행을 떠났다. 그때 만난 다슬이 가족과는 20년 넘게 왕래하며 잘 지내고 있다. 2025년 6월 카셀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에서 조셉이라는 하와이언 음악가를 만났는데 괜히 반가웠다. 덕분에 <Go Ask Picasso>라는 그의 앨범을 알게되어 잘 듣고 있다. 하와이는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다시 가기로 한 곳이다.(알)
- 9월 12일 추석 발생한 태풍 사라호는 3등급 세력으로 한반도를 관통했다. 17일까지 계속된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후 복구 시기에 불어닥쳐 국민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특히 경상도 지역의 70대 노인들은 사라호 태풍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한다. (공)
- 남부 지방에 태풍 '사라'가 불어닥쳐 약 9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반)
- 1959년 1월 10일 충북선 조치원역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지난주 남편숙소 이전으로 세종시 조치원역을 갔었다.서울ㅡ대전ㅡ청주를 잇는 교통 요충지이며, 경부선과 중앙선의 분기점 역할을 한다.(희)
- 1인당 국민소득이 $79로 최저 수준으로 "잘 살아보자"라는 경제 개혁과 성장에 매진했다.
진보당수 조금 조봉암을 간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시키는 이승만 독재 정치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태풍 '사라'가 올라와서 최악의 시설 파괴 및 사망자가 발생했다.
격동의 50년대를 마치고 60년대를 준비하고 있다. (촌)
- 7월 31일, 조봉암 사형 집행으로 생을 마감하다. :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11년 1월 대법원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리며 사후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승만의 정적 죽이기가 만든 사법 살인이었다. (옥)
- 소련 최초 달 탐사 우주선 루나 1호가 발사되었다. 루나 1호는 달 충돌을 목표로 했으나 실패하고 오히려 현재까지도 지구와 화성 사이의 태양 궤도를 돌고있다.
(탱)
- 1월 25일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태어났다.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늙지도 않는 모양이다.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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