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 등의 소설을 쓴 세계의 문호 헤밍웨이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왔다.
헤밍웨이는 소설 쓰는 일에 열중해 있었는데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한참을 기다리다 못한 친구는 서재로 직접 그를 찾아갔다.
글을 쓸 때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는 헤밍웨이였기 때문에 그 친구는 처음으로 헤밍웨이가 글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헤밍웨이는 한쪽 다리로 선 힘든 자세로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친구는 깜짝 놀라 물었다.
"왜 한쪽 다리로 서서 그러는 거야?"
그러자 헤밍웨이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자세로 한참 글을 쓰다 보면 힘이 들어서 더 쓰고 싶어도 더 길게 쓸 수가 없거든.
쉽게 빨리 쓰여진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는 법이지."
헤밍웨이는 그렇게 한쪽 다리로 서서 한 번에 적은 양의 글을 신중하게 쓴 다음,
퇴고할 때는 의자에 편안히 앉아 천천히 다듬었다. 그것은 작가로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장인정신이었다.
-'좋은 글' 중에서-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루카 5,33-39)
단식은 분명 선물입니다.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단식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단식을 통하여 삶의 본질과 삶의 기쁨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물질에 대한 단식 시간에 대한 단식 사람에 대한 단식을 통해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단식은 참된 믿음을 열망합니다.
무엇을 믿느냐가 언제나 중요합니다.
헛된 것을 갈망하는 저에게 단식은 삶의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줍니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자기를 존중하게 만듭니다.
단식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배고픔은 영적인 배고픔입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많은 자극물로부터 벗어나
삶의 공허를 채워주시는 단식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랑의 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